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서울 도심. 사진=연합뉴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내걸었던 대표적인 정치적 구호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였다. 이승만 정권은 1960년 4·19혁명으로 붕괴되었으나 이 구호는 이후 모든 정권에서, 때로는 시민의 일상생활에서 저마다의 필요에 따라 단합을 호소하는 구호로 애용됐다. 코로나19의 시대를 맞아 삶의 모습이 일변해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사는 세상’이 됐다. 남은 물론 나 자신조차도 코로나19에 감염됐는지 알 수 없다. 유령처럼 소리 없이 다가와 입으로 코로 스며드는 코로나19를 피하기 위해서는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사는 것이 상책이다.

사람들이 뭉쳐 있는 곳은 코로나19에겐 씨를 퍼뜨릴 비옥한 땅이다. 흩어져 살아야 그 땅은 척박해진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그 땅에 대한 소독효과이다. 붙어 살기보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는 게 편하고 안전해질 수 있다는 삶의 이치도 그 안에 있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백신 개발을 서두르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11일 러시아가 개발의 성공을 알렸다. 인간이 백신으로 대응한다면 코로나19도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다. 변종 바이러스가 속출하는 것으로 미뤄 더 치명적인 성능의 바이러스로 진화할지도 모른다.

코로나19가 잡힌다 해도 인간의 삶은 떨어져 살아야 할 운명의 연속일 것 같다. 코로나19의 출현 자체가 뭉쳐 살았던 것을 반성케 하려는 조물주의 섭리일지도 모른다. ‘뭉치면 산다’의 바탕에는 큰 것에 대한 선망이 깔려 있었다. 배가 나온 것이 부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그 시절, 서울의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자 괜히 뿌듯해 했다.

덩치를 키우는 방법으로 ‘선택과 집중’이란 말이 유행했다. 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하는 방식이라고 상찬되었다. 농촌이 피폐해지더라도 도시를 키우고, 노동자를 희생해서라도 기업을 키우는 것이 국가적인 선택과 집중이었다.

그 결과로 인구 1000만 명의 수도 서울과 2500만 명의 수도권이 등장했고, 삼성·현대·LG 같은 거대 기업들이 탄생했으며,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 되었다. 이 모두 우리의 자랑이었다.

코로나19를 통해 세계는 지금 큰 도시의 취약성을 본다. 한국은 대구에서 먼저 겪었고, 지금 서울과 수도권이 겪고 있다. 선진국 후진국을 막론하고 세계의 모든 대도시들이 당하고 있다. 47만 명 감염에, 3만 3000명이 사망한 미국 뉴욕의 피해는 그 중 최악이었다.

코로나19 시대에 한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모범국이다. 9월 8일 현재 한국의 확진자 2만1000여명은 전 세계 확진자 2700만 명의 1000분의1도 안 되고, 사망자 340여 명은 88만 명의 2500분의1 수준이다.

그러나 사망자 330명이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단일 사고로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501명에는 못 미치나 세월호,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보다 많다. 2만 명이 넘는 감염자가 겪은 고통과 후유증,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을 염두에 둔다면, 한국의 코로나19는 6·25 전쟁 이후 가장 큰 희생자를 낸 사태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국내 확진자 2만1000명의 분포를 살펴보면 신천지교회의 특수성과 관련된 대구·경북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경기 서울로 이들 4곳의 확진자 비율이 80%를 차지하고, 사망자 비율로는 90%를 넘는다. 인구 밀집지역이 코로나19에 취약함을 확인하는 수치이다.

서울의 인구는 1991년 1055만 명을 정점으로, 1999년 최초로 1000만 명 아래인 995만 명으로 떨어진 이후 현재는 980~990만 명 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당 인구는 1만6000명 수준으로 여전히 초과밀 도시이다. 서울에서 줄어든 인구는 이웃 인천 경기 등 수도권으로 옮겨, 2019년부터는 국토 면적의 11%에 불과한 수도권 거주인구가 전체 인구의 50%를 넘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로부터 근원적으로 안전할 수 있는 길은 수도권 인구를 수도권 밖으로 분산시키는 것이다. 미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뉴욕시의 경우 지난 3월~6월 사이에 1만6000명이 뉴욕을 떠나는 등 탈 뉴욕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아직 서울에선 그런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아파트 값이 뛰자 정부여당은 ‘수도 이전의 완성’을 내세우며 청와대와 국회의 세종시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다고 얼마나 많은 수도권의 인구가 세종시로 갈 것인가?

세종시는 2012년 정부청사 이전이 본격화한 이후 인구 10만 명 정도의 지방 소도시에서 인구 35만 명의 자치시로 커졌다. 늘어난 인구 25만 명의 60% 이상은 과밀과는 무관한 인근 대전광역시와 충북의 청주시 충남의 공주시 등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었다. 수도권에서 유입된 인구는 5만 명 수준이었다. 그들도 대부분 집은 서울에 두고 주민등록만 이전한 공무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의 과밀해소와 지역균형발전은 공염불에 불과했다.

코로나19로 생활패턴이 비대면으로 광범하게 바뀌고 있다. 직장에선 재택근무, 학교에선 온라인 학습이 보편화하고 있다. 도로 및 교통 인프라의 확충으로 서울과 지방은 반나절 생활권에서 반의 반나절 생활권으로 좁혀졌다.

서울 사람만 지방생활을 누리는 게 아니라 지방 사람도 같은 방법으로 도회생활을 누릴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시골에서도 직장과 교육에 이어 의료와 문화에까지 도회적 생활이 가능해진다면 굳이 생활비가 비싸고 환경적 면역력이 떨어지는 대도시에서 살 필요는 없다. 특히 감염병과 관련해서 지방은 대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발생하더라도 통제가 훨씬 용이하다는 사실이 코로나19로 증명됐다. 앞서의 4곳을 제외하면 감염률이나 사망률은 극히 미미하다. 사망자가 0명인 지자체도 많다.

정부 여당이 꺼내든 ‘세종시 완결’도 서울의 아파트 값 대책이나 내후년 대선용으로 만지작대서는 성공할 가망은 없다.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서울과밀 해소와 지역균형발전책을 다시 짜기 바란다.



● 임종건 칼럼니스트 프로필

한국일보와 서울경제신문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에서 편집국 국차장, 논설위원, 사장을 지내는 등 36년 동안 언론에 몸담았다. 사실과 경험에 입각해 글을 쓰겠다는 다짐에서 ‘드라이 펜(Dry Pen)’을 필명으로 삼았다. 한국일보 시절에 주간한국 기자와 부장을 지낸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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