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가격 급등락·화웨이 제재·ARM인수…불확실성 커진 반도체산업, 규제완화 절실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중국 ‘반도체 굴기’의 중심축인 화웨이가 미국에 손발이 묶였다. 이는 미국과 중국만의 일이 아니다. 일찍이 국내 반도체를 포함한 IT기업 및 시장 분석가들은 그에 따른 손익계산서 짜기에 분주해왔다. 현재로서는 국내 기업에 실보단 득이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그러나 한국 산업의 대장격인 반도체 분야만 떼어 바라보면 예측이 어렵다는 기류가 강하다. 꼭 미중 간 문제가 아니라도 반도체 산업 전반의 환경을 뒤바꿀 요소가 더 있다는 이유에서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대대적 지원에 나서주길 바라는 눈치다. 현 시점은 그야말로 ‘반도체 빅뱅’ 시대와 다름 없다는 이유에서다.

힘 빠진 中반도체 굴기

중국 정부는 2014년 ‘반도체 산업발전 추진요강’을 발표했다. 핵심은 이렇다. 경제·사회발전 및 국가안보를 지탱하는 기둥은 정보기술이며, 그의 핵심인 반도체 산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그해에만 약 24조 원을 투입해 반도체 투자펀드를 설립하는 등 기민한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내수시장 우위까지 활용하면 2020년쯤 중국 반도체 산업의 수준이 여타 선진국을 바짝 따라잡을 것으로 자체 분석했다.

이 시기가 ‘중국 반도체 굴기’ 닻이 본격화한 때다. 굴기의 사전적 정의는 ‘몸을 일으킴’, ‘보잘것없는 신분으로 성공해 이름을 떨침’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2020년은 중국 반도체 산업이 보잘 없는 신분에 안착할 위기의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미국이 지난 15일 중국 화웨이에 대한 기술공급 제한 제재를 현실화한 까닭에서다. 화웨이는 중국 반도체의 한 축을 맡은 회사다. 일각에서는 그런 화웨이가 이번 조치로 무대에서 완전 퇴장할 가능성마저 거론한다.

이번 제재에 따라 앞으로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하려는 기업은 미국 상무부 허락을 받아야 한다. 미국 기술이 적용된 반도체가 대상이라고는 하나, 반도체 자체가 미국을 본 고장으로 뒀다. 업계에서는 미국 기술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반도체는 거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도 마찬가지다. 결국 화웨이는 사실상 해외에서 반도체를 들여올 수 없게 된 셈이다. 미국이 반도체 대(對)중국 공급을 승인할 가능성은 적다.

문제는 이 사태가 국내에 일으킬 파장이다. 속된 표현으로 ‘반도체로 먹고 산다’는 한국 입장에서는 이 같은 사건은 반가운 일이 아니다. 화웨이는 국내 반도체 기업의 VIP 고객과 다름없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매출액 가운데 화웨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약 7조 원), 11%(약 3조 원)로 추산된다. 모바일용뿐만 아니라 서버용과 PC용 등 종류도 다양하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는 한국 기업에 이 수입원을 포기하란 뜻이다.

한국 피해는 올해 하반기에 즉각 반영될 전망이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작년 기준 화웨이의 반도체 구매액은 208억 달러로 애플(361억 달러)과 삼성전자(334억 달러)에 이은 3위 수준”이라며 “이제 어떤 업체도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하기가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반도체를 많이 사가는 큰 손의 손발이 묶이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에, 당장 올해 하반기 반도체 수요에는 적지 않은 타격이 불가피해졌다”고 바라봤다.

여파가 반도체 기업에만 미치는 것도 아니다. 디스플레이 업계도 끙끙 앓고 있다. 최근 디스플레이 분야의 트렌드는 단연 ‘디지털’이다. TV와 스마트폰은 물론 컴퓨터 등에 활용되는 OLED와 LCD 등 디지털 디스플레이에는 반도체의 한 종류인 ‘디스플레이 구동칩’(DDI)이 탑재된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등은 최근까지 화웨이에 스마트폰용 OLED 패널을 공급해 왔다.

韓기업, 고생 끝에 낙 올 수도

반도체 자급자족에 도전해야 할 화웨이는 앞서 비축해둔 재고로 버티기에 돌입할 채비다. 구체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화웨이는 올해 말 내지 내년 초반까지 사용 가능한 물량을 확보해 뒀다고 알려졌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 이후 제재가 해소 혹은 완화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다만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SMIC 추가 제재마저 언급되는 게 지금의 분위기다. 중국 반도체 및 IT산업이 존망 기로에 섰다는 분석의 배경이다.

이 대목에서는 국내 기업의 글로벌 지배력 확대 가능성을 엿보는 시각이 많다. 화웨이 제재가 장기적으로는 한국에 호재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간 만만찮은 도전자로 인식돼 온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지연될 소지가 발생해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사실 올해는 미중 갈등 외에도 코로나 등 때문에 잃은 게 많다”며 “남은 하반기 반도체 매출 타격도 불가피하겠지만, 화웨이가 재고를 소진한 후 상황은 흥미로울 지도 모른다”고 바라봤다.

반도체 수요 감소를 통신장비 및 스마트폰 판매 증가로 메울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다. 실제 스마트폰의 경우 화웨이는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에 위협적인 경쟁사였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화웨이의 글로벌 스마트폰의 시장점유율은 20.2%로 집계돼 세계 1위에 올랐다. 삼성전자는 20.0%를 기록했다. 하지만 최근 제재로 이 수치는 금세 재차 역전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는 올해 스마트폰 1억9200만대를 생산한 화웨이가 내년에는 그의 절반도 못 미치는 제품을 출하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전문가들도 이런 분석에 대체로 동의한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화웨이 추가 제재 조치 발효로 화웨이 스마트폰 출하량은 올해 1억9000만여 대에서 내년 6000만대로 급감하고 시장 점유율도 15%에서 4% 수준으로 축소될 전망”이라고 예측했다.

이로써 삼성전자는 물론 LG전자도 일부 수혜가 예상된다. 여러 분석을 종합하면 올해 화웨이의 스마트폰 판매량 중 내수 비중은 1억3800만대로 추정된다. 중국 밖에서는 5800만대로 예상된다. 이를 두고 시장 분석가들은 화웨이의 해외 판매 분인 5800만대가 잠재적 수요처가 됐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이들 중 상당부분을 삼성전자와 애플 및 LG전자가 흡수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본다.

통신장비 시장도 마찬가지다. 화웨이는 올해 상반기 5G 등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의 약 31%를 점유한 세계 최대 기업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최근 제재로 인해 점유율이 급락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는 최근 세계 최대 이동통신사 버라이즌에 약 8조원 규모 5G 통신장비를 공급하게 됐다. 업계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여타 선진국들이 통신장비 공급 업체로서 화웨이 대신 삼성전자를 택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시각이 흔하다.

남은 변수多…반도체 ‘격랑’

美추가 제재 가능성에 엔비디아까지

미국의 화웨이 제재로 인해 국내 반도체 업체의 불확실성이 가중됐다. 사진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내부 모습.
그렇다고 안심은 금물이다. 남은 변수가 많다. 미국의 추가 제재 가능성 및 글로벌 반도체 시장 환경이 전부 예측하기 힘든 현실이다. 당장 오는 11월 미국 대선 직후 상황도 현재로서는 예단하기 힘들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과 같이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도 동맹국과의 연대 강화를 통한 ‘중국 압박’을 강조하므로, 대(對)중 제재가 해소할 가능성은 적다. 다만 규제의 강도가 다를 수는 있는데, 그에 따라서도 국내 기업 전략은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단연 최대 우려는 추가 제재 여부다. 화웨이가 반도체 수급차질을 빚어 고급 휴대폰 생산을 멈추게 되더라도, 중국인들은 오포와 비보 및 샤오미 등으로 대체할 수 있다. 이에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이 기업들과의 거래를 늘려 매출 타격을 만회하길 바라나 움직임은 소극적이다. 이 역시 불확실성을 내포해서다. 미국이 SMIC 제재도 만지작하는 가운데 해당 기업들까지 추가 제재 범위 안에 넣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미국 그래픽처리장치(GPU) 기업 ‘엔비디아’가 소프트뱅크의 반도체 설계업체 ‘ARM’을 인수했다는 소식마저 전해졌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현재 촉각을 곤두세운 방향은 오히려 이쪽이기도 하다. 영국 기업 ARM은 전 세계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설계 기술의 95%를 공급하는 회사다. 삼성전자 등도 ARM으로부터 관련 원천기술을 전달받고 있다. 애플과 퀄컴 등 삼성전자의 라이벌사들도 마찬가지다.

앤비디아의 ARM 인수에 시선이 모인 것 역시 불확실성에 기인한다. 앤비디아는 ARM을 약 400억 달러(47조5000억 원)에 사들였다. ARM의 평균 연매출 약 16억 달러(2조 원)에 20배 수준 프리미엄을 더한 액수다. 그로 인해 엔비디아가 향후 특허 혹은 반도체 설계비용을 대폭 상향할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앤비디아가 ARM의 설계기술을 독점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

앤비디아는 “그간 ARM의 기조대로 ‘오픈 라이선스 사업을 유지하겠다”며 의혹을 일체 부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업계는 긴장의 끈을 못 놓고 잇다. 앤비디아는 PC 등에 주로 사용되는 GPU분야에서 라이벌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이곳이 ARM을 자사에 유리하게 활용해 모바일 시장에 진출하면, 삼성전자나 인텔 등을 압도하는 ‘반도체 공룡’이 탄생하는 격이다. 이 경우 글로벌 반도체 시장 생태계가 붕괴될 수도 있어 국내 산업계도 걱정을 덜 수 없다.

업계에서는 정부 도움을 바라는 분위기다. 세계 최저 수준의 재정지원(본지 6월22일 보도)은 고사하더라도, 규제완화 등 산업 역량 강화에 주력할 여지를 마련해달라는 요구가 따른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 가격 급등락과 화웨이 제재 및 ARM 인수 등 반도체업은 현재 불확실성 천지”라며 “화평법 등 규제완화, 반도체 연구개발에 한한 주52시간 적용 예외 등 다각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