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 화이자의 로고를 배경으로 ‘코로나19 백신’이란 문구가 붙은 병들이 놓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의 경기 부양책과 백신 접종이 주가 상승을 이끌어

주가가 오를 거라 전망하는 쪽은 세상의 모든 일을 상승에 맞춰 해석한다. 하락을 전망하는 쪽은 정반대다. 그래서 똑같은 현상을 가지고도 해석이 달라진다. 미국의 11월 고용통계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일자리가 40만건 이상 늘어났을 거라 전망했지만 실제는 24만건 늘어나는데 그쳤다. 그런 데에도 주가가 상승했다. 고용지표가 좋아 경기부양대책에 속도가 붙을 거란 기대가 작동한 결과다. 만약 고용지표가 좋게 나왔다면 그 때는 경제가 이렇게 좋으니 주가가 오르는 게 당연하다고 얘기했을 거다. 어떤 사안이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사안의 내용 이상으로 해석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 좋은 예였다.

미국에서 5차 경기 부양대책 협상이 재개됐다. 민주당이 기존 2조2000달러 규모의 부양책을 절반 이하인 9080억달러로 낮췄고 공화당도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새롭게 도입되는 부양책은 중소기업 지원에 2080억달러, 실업 지원에 1800억달러를 배분하기 때문에 한동안 정체됐던 미국의 고용 회복에 힘을 실릴 걸로 보인다. 지방정부 지원에도 1600억달러를 배분해 2차 확산 이후 재봉쇄에 나섰던 지역들의 경기 회복에 도움을 줄 전망이다. 문제는 규모다. 두 달 전 얘기될 때에 비해 규모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 이를 의식해 시장에서는 미국 대통령 취임 전에 시급한 부분을 먼저 지원하고 취임 후 다시 대규모 부양책을 내놓을 걸로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효과다. 부양책을 둘로 나누는 것보다 한꺼번에 시행하는 게 더 효과가 큰 데 이 부분이 여의치 않으니 효과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부양책과 함께 많이 거론되는 재료가 백신 접종이다. 영국에서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이 10일에 화이자 백신, 그리고 17일 모더나 백신에 대한 긴급사용 승인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조만간 접종이 시작될 걸로 보인다. 주요 지역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 ‘백신’이라는 재료가 가진 힘이 약해질 수 있다. 주식시장의 특성상 백신이란 호재는 당연히 선반영 됐을 것이고, 시장에서 기대하는 경제 정상화가 백신 접종과 함께 바로 가시화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이나 접종 거부로 집단면역에 차질이 발생하거나 백신 과신으로 인한 동절기 코로나19 재확산 등 부정적 요소들이 드러날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시장과 종목 모두 고주가 부담이 커진 상태

주가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펀더멘털 대비 가격 부담이 커졌다. 소위 ‘버핏지수’라고 얘기하는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시가총액 비중이 과거 버블 때만큼 높아졌다. GDP보다 짧은 주기를 가지고 있는 수출금액을 보더라도 고주가에 대한 부담은 동일하게 나타난다. 1990년대 이후 수출금액과 코스피 사이의 관계로 보면 현재 주가는 최근 12개월 수출금액에 비해 대단히 높다. 지금 주가 수준에 맞는 수출 규모를 역으로 환산하면 연간 7,500억달러가 되는데 이는 최근 12개월 수출금액보다 48%가 많은 수치다. 기저효과를 감안하더라도 현실 가능성이 거의 없는 수치이다.

종목별로도 마찬가지다. 회사에 따라 내년 삼성전자 이익 전망이 다르다. 많이 보는 쪽에서는 40조를 예상하고 있지만 보수적으로 보는 쪽에서는 32조를 예상하고 있다. 그 차이는 2022년에도 계속돼 62조와 43조로 격차가 더 벌어진다.이전 삼성전자의 최고 순이익은 2018년에 기록한 44조였다. 당시 주가 최고점은 5만7천원이었다. 이익이 가장 많이 난다는 쪽의 생각에 따르더라도 내년 순이익은 2018년의 90% 밖에 되지 않는다. 주가는 7만3천원대로 이익이 44조 발생했을 때보다 30% 이상 높다. 이익과 주가를 결합해 보면 현재 주가순이익배율(PER)이 과거 최고 이익일 때보다 40% 이상 높다는 얘기가 된다. 어지간히 이익이 좋아지지 않는 한 주가가 계속 상승하기 힘들 수 있다.

백신에 대한 기대가 시장을 좌우

이렇게 보면 최근 주가 상승은 펀더멘털 개선보다 수급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8개월간 빠져나갔던 외국인 매수의 1/4 가량이 11월 한 달에 다시 되돌아왔다. 외국인 매수 증가의 원인을 달러 약세, 원화 강세에서 찾는 사람이 많지만 그 이상으로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따른 경기 회복 기대가 역할을 했다. 그 기대 때문에 위험자산 선호 심리도 높아져 주식을 비롯해 암호화폐, 심지어 정크 본드까지 많은 자산의 가격이 상승했다.

올해 외국인에게는 ‘백신’이 매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외국인 순매수 규모가 컸던 날에 주요 상승 재료가 백신이었기 때문이다. 7월 28일에 외국인이 올 들어 최대의 순매수를 기록했는데 이 날은 모더나와 화이자가 백신 3상 시작을 알린 날이다. 이후 3상이 진행되는 동안 외국인 매수가 약해졌지만 11월초 화이자의 3상 결과가 발표되면서 대규모 순매수가 다시 시작됐다.

외국인이 백신에 민감한 이유는 아직은 실제 효능과 접종 결과를 알 수 없지만 현 상황에서 백신이 경제를 정상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동력이기 때문이다. 백신을 재료로 외국인이 대규모 순매수했던 11월에 매수 상위 업종은 반도체/IT, 화학, 자동차 등 경기 민감주 들이다. 백신이란 재료가 업종을 뛰어넘어 경기회복과 성장 기대로 확대된 결과다.



● 이종우 전 리서치센터장 프로필

이종우 전 리서치센터장은 ▶대우증권 리서치센터 투자전략팀장 ▶한화증권, 교보증권, HMC증권, IM투자증권, IBK투자증권 등 리서치센터장 등을 역임한 한국의 대표적 증권시장 전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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