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EGS 외치지만... 지출규모는 턱없이 부족

지난해 상하이 포럼에 참석한 최태원 회장/SK그룹

착한 경영이 뜨고 있다. 10대 그룹 대다수가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강조하며 2021년 포문을 열었다. EGS는 사회공헌에 기여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투자 관점에서 재무적 성과뿐 아니라 경제적 부가가치도 고려하는 것이다.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는 신년사를 통해 "협력사와 지역 사회, 나아가 다음 세대까지 고려한 삼성만의 '지속 가능 경영'을 발전시켜 나가 인류 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자 존경 받는 기업으로 거듭나자"고 당부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고객과 사회로부터 받은 신뢰를 소중히 지켜나가며, 긴 안목으로 환경과의 조화로운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스코와 현대차는 탄소중립 실현에 앞장서겠다고 입을 모았다.

ESG는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흐름이다. 삼일회계법인에 따르면 ESG를 이사회의 정기적 안건으로 다루는 미국 기업 비율이 2019년 34%에서 2020년 45%으로 11%포인트 증가했다. 유럽도 ESG를 강조하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도 2050년까지 유럽을 최초의 탄소 중립 대륙으로 만든다는 ‘유럽 그린딜’을 제시했다. 전세계적으로 고객·투자자의 눈길이 공익적 가치를 구현하는 기업에 쏠리고 있는 것이다. ESG에 해당하는 경영 행위는 다양하다. 협력사와 동반성장, 취약계층 지원, 지역사회 문제 해결 및 개발, 생산활동 내 친환경 가치 실현, 준법경영 강화 등이 있다.

국내 대기업 중 ESG 선봉장은 SK그룹이다. 최태원 회장은 ‘ESG 전도사’로 불릴 만큼 ESG를 그룹 경영의 핵심 키워드로 놓고 대대적인 혁신에 나서고 있다. 2018년 4월 중국에서 열린 보아오 포럼에서 최 회장은 "기업들이 주주, 고객 등 직접적 이해관계자를 위한 경제적 가치 외에 일반 대중, 시민단체, 정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위한 사회적 가치도 만들어 내야만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회장의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SK는 각 주요사에 사회가치 측정을 전담하는 ‘챔피언’이란 부서를 설치하는 등 ESG 흐름에 발 빠르게 대응했다. SK자회사인 SK이노베이션은 ‘그린 밸런스’라는 전략으로 친환경 생태계 조성에 이바지하고 있다. 그린 밸런스는 환경과 관련한 부정적인 영향을 낮추고 긍정적인 영향은 증가시키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개발하고 있는 배터리는 폐기시 토양·해양 오염 등 환경문제를 야기한다. 이를 줄이기 위해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재사용·재활용 등 관련 사업 분야에 매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삼성은 교육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2018년 삼성전자는 2022년까지 청년 소프트웨어 인재 1만 명을 키우는 '삼성 청년 소프트웨어 아카데미'를 운영 중이다. 삼성은 사회 공헌의 결과가 기업 성장으로 돌아오는 전략을 택했다. 삼성전자의 노하우를 배운 인재들 중 핵심 인재들은 삼성전자에 취업해 기업 성장에 이바지한다.

현대차그룹도 일자리 창출에 방점을 둔 사회공헌프로그램을 마련했다. 'H-온드림 사회적기업 창업오디션'을 통해 2022년까지 150개의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고 1250명의 청년 신규고용을 창출해내겠다는 계획이다. 중년 일자리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현대차그룹은 고용노동부와 손잡고 2022년까지 매년 5060세대 200명을 선발해 중년 일자리를 만드는 '굿잡 5060' 프로젝트를 운영중이다.

LG그룹은 그룹 지배구조를 꾸준히 개선해 가면서 일찌감치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며 새로운 경영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그룹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팀장을 맡고 있던 이방수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키면서 향후 ESG 경영에 더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또 친환경·저탄소 중심으로 혁신 성장을 가속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LG전자는 203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탄소중립이란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량만큼 신재생 에너지를 이용한 발전으로 탄소 배출량을 줄여 합산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뜻한다.

주요 그룹들이 ESG에 적극적으로 나서도 지출 규모는 턱없이 부족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2019년 주요 기업 220개사가 사회공헌에 지출한 금액은 매출액 대비 0.2%에 그쳤다. 문제는 ESG가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업이 ESG에 지출한 만큼 재무적 성과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2018년 4월 BCG(보스턴컨설팅그룹)의 한스 파울 뷔르크너 회장은 "사회경제 약자 배려·환경보호 등 ‘착한 경영’으로 사회적 영향 점수가 상위 10%에 속한 기업은 중간 그룹(50%)에 비해 기업가치와 마진율이 높다"고 밝혔다.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