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고창에는 지평선을 따라 수놓아진 농원이 있다. 글자 그대로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 상하. 이곳에서 자연은 기꺼이 자신의 품을 인간에게 내어준다. 그 품 속에 자리하는 상하농원은 좋은 재료로 먹거리를 만들고, 맛보며, 세상 사람들과 평안한 소통의 시간을 가진다.

상하농원을 찾아가려면 품이 좀 들어간다. 서울에서 정읍까지 KTX로 1시간 40분이 소요된다. 정읍에서 차로 출발해 선운사 IC를 빠져나와 22번 국도와 77번 국도를 거쳐 30여분을 달리면 2차선 좁은 시골길을 만날 수 있다. 그 길을 따라가면 푸른 하늘과 붉은 땅이 만나는 상하공원에 도착하게 된다. 얼추 두 시간을 훌쩍 넘는 여정이다. 지난 9일 황토의 고장, 고창의 상하농원에 도착했다. 비료가 아닌 거름이 돌보아주는 붉은 땅에서 곡식과 채소, 과일들이 자라나고 젖소들은 우유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솜씨 좋은 장인들은 좋은 재료를 다듬어 소시지와 과일잼, 된장, 빵으로 가공해 세상 사람들과 함께 나눴다. 장독대 위에 소복히 쌓인 눈이 이날의 날씨를 알려주듯 소한 무렵은 제법 추웠다. 강추위에도 먼 길을 나서 농원을 찾은 방문객들은 자연의 숭고함, 농부의 땀, 그리고 먹거리의 가치를 몸소 배우고 있었다.

사회, 기업, 행정의 3박자
1989년 매일유업은 전북 고창에 치즈 전문 자회사 ‘상하’를 설립했다. 매일유업과 고창의 인연은 이 때부터 시작됐다. 고창은 국내 최초로 행정구역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등재될 정도로 청정한 자연 환경을 자랑한다. 비옥한 무기질 황토, 적당한 강우량 및 해풍이 있는 구릉 지형 덕분에 사계절 내내 온화한 기후가 유지되어 유기농에 최적화된 곳이다. 매일유업의 김복용 선대회장은 이곳에 주목했다. 김 회장은 유기농을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여겨 고창을 유기농 제품의 생산 근거지로 삼았다. 김 회장은 “이제는 유기농이 트렌드”라며 지역의 8개 목장을 직접 찾아가는 발품을 팔면서 상하농원의 토대를 만들었다.

상하농원 프로젝트가 본격화된 건 그로부터 한참 지난 뒤였다. 2008년 매일유업은 상하농원을 평범한 농장이 아닌 ‘6차 산업화 모델’로 지정했다. 6차산업이란 농ㆍ축ㆍ수산업(1차), 제조ㆍ가공업(2차), 판매ㆍ서비스업(3차산업)을 결합해 지역주민과 함께 부가가치를 극대화한 산업을 통칭한다. 매일유업은 농산물을 직접 생산(1차산업)하고 농원 내 공방에서 가공(2차산업), 유통에도 나섰다. 그뿐만 아니라 방문객이 전 과정을 직접 체험(3차 산업)하는 체험형 농원을 구상했다. 농원 내에서 생산한 제품과 더불어 인근 지역에서 재배한 제품도 상하농원 유통망을 통해 판매함으로써 지역의 새로운 유통 판로를 만들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지역주민, 기업, 고창군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선순환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고창군과 농림축산식품부, 매일유업은 머리를 맡대고 농촌 테마파크를 기획했다. 농민을 비롯한 지역 주민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2010년 지자체 및 농민대상 사업설명회를 개최했고 2013년 비로소 토목공사에 착공했다. 8년의 준비 끝에 2016년 4월 상하농원의 문이 열렸다.

지역주민과의 공생 프로그램 가동
매일유업 관계자는 “상하농원은 농민과 정부, 지자체가 동반성장을 모색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며 “모두의 니즈를 동시에 충족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상하농원이 들어서면서 지역주민의 생활이 개선되고 문화·관광 분야의 고부가가치가 창출됐다. 매일유업도 실익을 얻었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유가공은 큰 부가가치를 내기 어려운 사업인데 상하농원을 계기로 지속가능한 사업으로 변모했다”고 말했다.

주민들 일자리 확보해. 사무실, 공방, 농민, 카운터에 골고루 배치돼 있어. 전체 직원 128명 중 대부분이 전북 고창 군민 출신이기도 하다. 지역 주민들이 직접 농사를 짓기도 하고 햄 공방, 잼 공방 등 공방에서 제품 가공을 맡기도 하는 시스템이다. 이 외에도 지역주민들은 농원의 운영기획을 총괄하는 마케팅기획은 물론 파머스빌리지 호텔리어, 마켓 온라인몰 관리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친환경 유기농의 체험형 테마파크
상하농원은 약 3만평 규모의 테마공원 형태로 조성됐다. 지역 농민들과 함께 공방에서 친환경 농축산물을 생산·가공·판매하는 것을 토대로 한다. 이를 통해 친환경 먹거리를 테마로 내세워 체험·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체험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쿠키, 소지지, 밀크빵 등 다양한 먹거리들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체험교실이 마련돼 있다. 햄, 빵, 과일은 물론 발효공방까지 실제로 생산되는 과정을 직접 관람하는 것도 가능하다. 방문객이 자유롭게 공방을 드나들며 눈으로 확인하고 체험하는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농원 인근에서 ‘상하공장 견학 프로그램’을 무료로 체험할 수도 있다.

햄 공방의 경우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대신 지열을 활용한 냉난방시스템을 적용하는 친환경 체제로 운영된다. 땅 속의 일정한 온도와 사계절마다 변하는 외부 온도의 차이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젖소에서 유기농우유를 생산하는 시설에서 사육과 착유과정을 견학하는 프로그램도 가동된다. 매일유업이 상하농원에서 생산하는 우유는 국내 유기농 우유시장의 90%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 유일의 치즈제조 전문공장도 설립했다. 상하농원의 치즈는 ‘2019 국제 식음료 품평회’에서 한국 치즈 브랜드로서는 처음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유기농 우유와 치즈 제품은 고창지역의 젖소 농가들이 납품하는 원유로 만들어진다. 지역과의 상생을 위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다.

다양한 행사도 자랑거리다. 한가위를 맞이해 굴렁쇠, 널뛰기 등 전통 놀이체험은 물론 핼러윈 시즌에는 가면무도회와 함께 미션을 통한 선물도 제공한다. 겨울철 김장담그기 체험도 빼놓을 수 없는 행사다.

농장에 예술을 입힌 상하농원
김정완 매일홀딩스 회장은 상하농원 프로젝트를 직접 주도했다.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소개하고 서비스까지 더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6차산업 모델인 상하농원을 구현한 데에는 김 회장의 추진력이 일조했다. 김 회장은 이곳을 단순한 농원이 아니라 문화적 공간으로 여겼다. 예술가 김범에게 상하농원 디자인 총괄 계획을 제안하고 건축가 최춘웅이 참여하면서 예술과 건축의 협업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롤모델로는 1987년 일본 중부 미에현 이가시에서 출범한 모쿠모쿠 농장을 참고했다. 상품 제조, 관광 외에도 교육, 휴양, 숙박, 결혼식과 같은 행사 주관까지 가능한 테마공원을 고려한 것이다. 최근에는 귀농, 귀촌을 장려하는 차원에서 지원금도 계획하고 있다.

코로나19도 무색한 인기 구가…미래 50년 성장동력 삼는 것 목표
상하농원의 개장 첫 해 방문객은 약 1만 명이었으나 2020년 방문객은 18만 명 이상을 기록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해외여행이 감소한데 따른 반사이익을 누린 셈이다. 좋은 먹거리와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친환경과 체험학습장이라는 장점과 맞물려 코로나19에 신음하는 고객들의 욕구를 충속시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친환경 유기농과 지역 주민 및 관람객들을 위한 사회적 책임을 선도적으로 활용한 매일유업의 상하농원은 미래의 성장동력 차원에서 보다 발전된 농촌 테마파크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5월 매일유업이 창림 50주년 기념식을 가진 곳도 상하농원이다. 김 회장은 창립기념식에서 “상하농원이 농민과의 상생을 통해 건강한 먹거리를 고객에게 제공하고 식품영역에서 새로운 성장의 한 축을 담당하겠다”고 밝혔다. 매일유업의 ‘도전’과 ‘창의’의 여정이 상하농원으로 이어진다는 포부도 내비쳤다. ‘낙농보국’의 50년을 위한 매일유업이 걸어온 발자취가 이곳에 모두 담겨져 미래 50년의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의미다.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