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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GS가 미래다]쿠팡發 ‘차등의결권’ 논란…알면서 모르는 척?

쿠팡 美 상장은 ‘미국’ 기업이 ‘미국’ 증시에 상장하는 것
지난 설 연휴에 쿠팡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 추진을 공식 발표했다. 쿠팡이 공시한 증권신고서(FORM S-1) 내용을 국내 매체들이 앞다퉈 보도하면서 난데없이 차등의결권이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신고서에 따르면 상장 뒤 쿠팡 주식은 클래스A와 클래스B 등 두 종류로 나뉜다. 클래스A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반 보통주(1주당 1의결권)다. 클래스B에는 1주당 29의결권이 부여된다. 모두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소유다. 예컨대 김 의장이 지분 3%만 보유해도 실질의결권 지분율은 47%까지 상승한다.

매체들은 “쿠팡이 한국이 아닌 미국에 상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이 상법상 차등의결권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과연 그럴까. 필자가 볼 때 많은 매체들은 어떤 회사가 상장하는지조차 몰랐다.

쿠팡 상장을 직설적으로 말하면 미국 기업이 미국 증시에 상장하는 것이다. 상장하는 회사는 한국 쿠팡이 아니다. 미국에 있는 쿠팡LLC(상장시 사명을 쿠팡INC로 바꿈)이다.

쿠팡LLC는 미국 델라웨어주 등록기업으로 쿠팡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쿠팡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인 김범석 씨는 미국 국적 소유자고 쿠팡 이사회와 주요 임원은 글로벌 기업 출신 외국인들로 구성돼 있다. 쿠팡LLC의 상장 시가총액은 전적으로 쿠팡의 사업가치 평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굳이 쿠팡LLC를 꼭 집어 말하지 않고 “쿠팡이 상장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응당 한국 증시에 상장해야 할 쿠팡이 차등의결권 때문에 미국 증시를 택했다”거나 “차등의결권을 허용하지 않아 쿠팡 상장을 미국 증시에 뺏겼다”는 주장은 잘못됐다. 한국 쿠팡이 미국 증시에 상장한다는 오류가 전제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한 신문은 사설에서 “쿠팡은 모회사 쿠팡LLC가 미국 회사이므로 투자금 확보가 용이한 미국을 택했을 수도 있다”며 “경제계는 쿠팡이 미국 상장을 결정한 핵심 요인으로 차등의결권을 꼽고 있다”고 주장했다. 모회사가 미국 회사라 자회사가 미국 증시로 간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모회사가 미국 증시에 상장하려는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학습효과’가 쿠팡의 미국행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는 보도는 황당하기까지 하다. 삼성바이오가 애초 나스닥 상장을 염두에 뒀지만 금융당국의 권유 등으로 코스피에 상장한 뒤 분식회계 논란으로 곤욕을 치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해괴한 논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쿠팡도 분식회계 논란에 휩싸일 것을 우려해 이를 피하고자 미국행을 결정했다는 것인가.

김범석 의장은 이미 2011년 미국 상장을 못박았다. 설립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2년 내 나스닥에 상장하고 공모자금으로 해외시장을 공략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미국에 모회사를 세우고 글로벌 벤처들로부터 투자를 받은 것이다.

차등의결권 연결은 억측

비상장 회사에 투자하는 기관투자자들은 대부분 상장시점 또는 그 이후 적절한 시점에 지분 매각을 통한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계획한다. 미국 쿠팡LLC 투자자도 마찬가지다. 한국 쿠팡이 상장한다면 쿠팡LLC 투자자들의 자금 회수는 여의치 않아진다. 이들이 가진 지분은 여전히 비상장인 채로 남기 때문이다.

상장 공모과정에서 쿠팡이 발행하는 신주 공모대금은 쿠팡으로 유입된다. 쿠팡LLC가 보유한 쿠팡 지분(구주) 일부를 공모매각한다면 그 대금은 당연히 쿠팡LLC가 가진다. 또한 한국 기업의 미국 증시 상장이기 때문에 쿠팡은 미국 증시에서 주식이 아닌 DR(주식예탁증서)을 발행해야 한다. 꽤나 번거로운 절차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한국 쿠팡이 상장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경영권 보호장치로 차등의결권을 도입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팩트들을 무시하고 쿠팡의 미국 상장을 차등의결권과 연결시키는 것은, 의도에 대한 의심만 산다.

쿠팡 초기 투자자인 김한준 알토스벤처스 대표는 페이스북에서 차등의결권 때문에 어떤 증시에 상장할지를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썼다.

벤처기업은 회사를 키워나가는 과정에서 외부투자를 받는다. 당연히 창업주의 지분율이 낮아진다. 회사가 잘 성장하고 외부 투자를 많이 받을수록 창업주는 안정적인 경영권 지분 유지에 고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올해부터는 차등의결권을 일부 허용할 전망이다. 국회에 계류 중인 정부 법안에 따르면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1주당 2개 이상 최대 10개 이하의 의결권이 허용된다. 대규모 투자 유치로 창업주의 보유 지분이 30%를 밑도는 경우 최대 10년까지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했다. 상장 이후에는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3년간 유예기간을 두고 보통주로 전환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차등의결권은 전 세계적으로도 소수 국가에서만 허용되고 있다. 주주평등권에 위배되고 의결권 남용과 지배구조 왜곡의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필자가 지난 칼럼에서도 지적했듯 특히 우리나라처럼 일반소액주주의 주총 참여율이 현저히 낮은 경우 남용과 왜곡의 가능성은 더 크다. 정부가 비상장 벤처에 한정하고 상장 이후 보통주로 전환토록 강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네이버 일본 자회사 라인(LINE)의 미일 동시상장 때 차등의결권 제도를 검토했었던 박누리 ㈜스마트스터디 IR리더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회사법에서 허용은 하지만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회사들이 증시에 상장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박 리더는 “차등의결권을 가장 많이 활용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투자자들의 견제에 직면해 있다”며 “최근 글로벌 자본시장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주류로 부상하면서 주주의 경영참여권리를 심각하게 제한하는 차등의결권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 김수헌 글로벌모니터 대표 프로필

중앙일보, 이데일리를 거치면서 증권, 산업 담당 데스크를 지냈다. 기업의 국내외 거래를 둘러싼 금융 뒷거래를 심층 추적해 기자협회 기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2년 글로벌 금융시장과 경제 현상을 분석하는 전문매체 ‘글로벌모니터’를 전문 기자들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1일 3분 1공시>, <기업경영에 숨겨진 101가지 진실>, <기업공시 완전정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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