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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객원기자 칼럼] 연준은 아니라는데…고개드는 미국發 인플레이션

  • 미국 연방준비제도.[연합뉴스]
2020년을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을 위시한 각국 중앙은행은 양적완화나 그와 비슷한 돈 풀기 정책을 시행했다. 또한 정부에서도 재정지출을 크게 늘렸는데, 그 규모가 실로 엄청나기 때문에 아직 경기가 풀릴 조짐이 나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슬슬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경우 2조2343억 달러를 가계 및 기업 지원금으로 지출했다. 이는 미 연방정부 한 해 예산의 47.5%에 해당한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가 지난해 ‘평균물가목표제’라는 것을 들고 나오면서 어느 정도 인플레이션을 묵과할 것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는 일정 기간 동안 물가상승률 합계가 2% 이내이면 되고, 그 사이 잠시 2%를 초과하는 물가상승률이 나타나도 이를 용인하겠다는 뜻이다.

2012년 이래 연준은 2%를 상한선으로 하는 물가목표제를 도입해 줄곧 시행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태도변화는 의미심장해 보인다. 다만 연준은 기간을 명시하지 않아 자신들이 유연하게 통화정책을 쓸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았다.

최근 미 상원이 조 바이든 대통령이 공약한 1조9000억 달러의 구제법안을 과반 찬성만으로도 통과시킬 수 있도록 결의하면서 대규모 부양책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이에 대해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기고와 방송출연을 통해 인플레이션 우려를 경고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때와 비슷한 규모의 대규모 부양책을 추진하는 것은 한 세대 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인플레이션 압력을 촉발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통화량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수인 광의 통화량(M2)은 미국의 경우 2020년 코로나19 이후 25%나 늘어나 그러한 불안에 불을 붙이고 있다. 엄청난 양적완화를 시행했던 2009년에는 M2가 2.3%에 불과해 그 차이가 상당하다.

사실 돈 풀기 정책이 시행된 것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이 시차를 두고 양적완화에 나섰다. 당시에도 이렇게 돈을 풀다가 물가 상승률이 급등해 화폐 가치가 붕괴하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찾아올 것에 대한 우려가 회자됐다. 하지만 다행히 기우에 그쳤으며 오히려 저성장 추세가 장기화되면서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최소한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불가피하다고 예측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2008년과 무슨 차이가 있어서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일까. 우선 2008년 이후 3차에 걸친 양적완화로 풀린 돈이 채 회수되기도 전에 엄청난 돈이 다시 풀렸다는 점이 다르다. ‘매에 장사가 없다’는 식으로 결국은 소비자 물가를 자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기본적인 추론이다. 일단은 2008년과 비슷하게 증권과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만 돈이 몰려 소위 자산가격 거품을 불러일으키는 양상이 재현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부가 재정을 풀어 직접 소비자 지갑에 돈을 꽂아주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2008년에도 막대한 재정지출이 있었으나 이 돈은 대부분 부실에 빠진 은행과 대기업을 구원하는데 사용됐고 일반 소비자까지 혜택이 가지는 않았다. 문제는 최근 풀린 막대한 규모의 돈이 이번에는 소비자의 손에 들어왔다는 점이다. 다만 코로나19 여파로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돈을 쓰기는 어렵기 때문에 아직 소비진작 효과는 크지 않다. 다만 백신 접종 등으로 코로나19가 진압되면 그 동안 억눌린 것을 보복하듯이 소비자들이 공격적인 소비에 나설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미국의 反中 정책이 물가 자극할 가능성 높아

이처럼 수요가 늘어날 것이 분명해 보이지만, 공급은 이에 못 미칠 가능성이 충분하다. 특히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하는 자영업자, 소상공인 층에서 상당한 정도의 폐업이 이뤄졌는데, 이는 짧은 시간에 회복 가능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공급이 소비를 따라가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또한 유가, 금속, 농산물 등 원자재 가격이 상승추세이며 최근 그 상승속도가 가파르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서 시작한 미국의 반(反) 중국정책은 바이든 정부에서도 계승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방식은 달라지겠지만 중국을 자신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시키는 방향으로 이뤄질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그 동안 소비자 물가를 억눌렀던 값싼 중국제품을 미국에서 몰아낸다는 뜻으로 소비자 물가를 자극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물론 물가상승을 억제할 요인도 존재한다. 일단 경기회복에도 불구하고 고용이 늘어날 것인지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이미 기업들은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자동화 투자에 나서고 있고 이는 고용 회복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고용 부진은 소비의 회복을 억제함으로써 물가상승을 제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중국제품이 배제되더라도 온라인을 통해 상품을 싸게 공급할 수 있는 체제가 구축되어 있고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그 추세가 가속화됐기 때문에 이 역시 가격을 억제할 요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것이라는 불안감을 미국인들은 쉽게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미국의 얘기이지만, 미국이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나라이며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라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가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바라볼 수는 없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나라도 국가부채비율이 40%를 돌파하는 것을 감수하고 3차에 걸친 재난지원금을 시중에 푸는 등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시행했다.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역사적인 수준인 0.5%로 낮추는 등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이어갔다. 한은의 이 같은 재정정책에도 2020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0.5%에 불과해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백신 보급과 접종 속도가 느려 경기회복 시점이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늦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또한 달러 약세에 따라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고 있는데 이는 수입물가의 저하를 가져와 국내 물가상승률을 억제할 가능성이 있다. 당분간 국내적 요인으로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기대 인플레이션이다. 명목금리와 실질금리의 차이라고도 설명되는 기대 인플레이션이 올라가면 사람들 심리와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최근 보여 지고 있는 부동산과 주식의 강세는 이들 자산 가치가 더욱 올라갈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심리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렇기 때문에 버블이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들 자산 매입에 열을 올리는 것이다.

만약 미국에서 상당한 정도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면, 세계경제에 차지하는 미국 비중을 감안할 때 이것이 타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내국인의 기대 인플레이션 심리를 자극함으로써 자산시장에 붙은 불이 일반 재화와 서비스로 구성되는 소비자물가지수를 자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선거를 앞두고 전 국민 대상 재난지원금이 언급되는 등 정치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상당한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걱정하지 않는다는 한은 총재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통화 및 재정정책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

●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정인호 객원기자는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KT경제경영연구소 IT정책연구담당(상무보) ▲KT그룹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정책 전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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