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위원 분리 선임 표 대결도 연출될 듯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올해 기업들의 주주총회 풍경은 예년과 다를 전망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진행방식은 기본이다. 이에 더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비전과 여성 임원 확대 등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할 과제도 풀어내야 한다. 반면 투자자들의 요구도 강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입법화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과 감사위원 분리선임 등과 관련한 주주제안 및 관여가 활발해질 수 있다. 특히 감사위원 선임 건의 경우 주총장에서 표 대결을 불사하는 경우도 속출할 것으로 보여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주요 안건’ 떠오른 ESG 경영
주총도 예외가 아니다
올해 국내 기업의 경영화두가 ESG 가치 상승이라는 점을 반론하는 이는 드물다. 지난해 글로벌 ESG 관련 투자 및 운용 자산규모는 상반기에만 40조5000억 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다수의 기업들이 코로나19 여파 속에서도 상당한 수익률을 냈다는 것이 국제금융센터와 금융투자협회 등 관련 기관의 공통된 진단이다.
기업들은 올해 주총에서 ESG 가치를 기반에 둔 주주가치 제고에 힘을 실을 전망이다. 새로운 재건을 모색 중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도 지난달 26일 정기총회에서 올해 중점사항으로 ‘ESG 글로벌 컨퍼런스 개최’와 ‘주요국 ESG 우수사례 및 한국적 모델 제시’ 등을 상위 과제로 꼽은 상태다.
국내 주요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ESG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거나, 이를 실행하기 위한 안건들이 이전보다 훨씬 증가한 모습이다. 포스코가 대표적이다. 오는 12일 주총을 여는 포스코는 정관변경에 관한 건에 ESG위원회 신설을 포함시켰다. 포스코 관계자는 “최고 의사 결정기구인 이사회 차원에서 ESG 관련 주요 정책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모비스는 ESG란 표현은 안 썼지만 해당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작업에 나선다. 오는 24일 열릴 주총에서 기존 정관의 투명경영위원회를 ‘지속가능경영위원회’로 명칭을 변경할 계획이다. 한편 이날 현대모비스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등기이사직 사임에 관한 건도 의결할 예정이다. 정 명예회장 후임으로는 고영석 연구·개발(R&D) 기획운영실장(상무)이 내정됐다.
이밖에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배당확대, 여성 임원 늘리기에 나선 기업들도 눈에 띈다. 이는 ESG 가치 중 사회적 가치(S)를 실현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가장 시선이 쏠린 곳은 오는 17일 열리는 삼성전자 주총이다. ‘역대급’ 특별배당이 확정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정규배당(주당 354원)과 특별배당(주당 1578원)을 통해 주주들에게 이익을 환원키로 했다.
SK㈜도 지주사 출범 이래 최대 규모의 배당(주당 7000원)을 의결한다. 특히 SK그룹은 국내 기업 가운데 ESG 경영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만큼, 이와 관련한 비전을 거듭 강조할 것이란 분석이 크다. 이와 함께 ㈜LG 또한 지난해(보통주 2200원, 우선주 2250원)보다 주당 300원 증가한 배당을 실시할 예정이다.
여성 임원 확대의 경우 더 많은 기업들이 동참한다. 여성 이사 선임안을 결의한 기업들은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를 비롯해 SK그룹, LG그룹, ㈜한화 등이 속속 나서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지난해 4월 공포된 ‘자본시장법 제165조’를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해당 법은 “이사회 구성원이 전원 특정 성(性)으로 구성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했다.
올해 기점으로 큰 변화 가속
기관투자가 관여 늘어날 듯
지난해 삼성전자 주주총회 당시 모습.
이렇듯 기업들은 ESG 가치 상승을 바탕으로 주주들 환심을 사기 위한 안건들을 선보일 계획이지만 예측을 벗어난 주주들의 요구에 자칫 진땀을 뺄 수도 있다. 감사위원 분리선임과 중대재해법 시행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상법개정안에 따라 의무화된 ‘감사위원 분리선출’의 경우 감사위원회 위원 중 1인 이상의 이사를 다른 이사들과 분리 선임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최대 3%로 제한하기 때문에 소액주주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이사로 선임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국민연금 의결권 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에 따르면, 현재 감사위원 분리선출의 영향을 새롭게 받게 되는 유가증권 상장사(금융회사 제외)는 206곳으로 집계됐다. 이들 기업에서 352명의 감사위원이 임기만료 또는 중도 퇴임으로 교체를 앞두고 있어, 이번 주총에서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 선임 건이 다수 부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대재해법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 국회 문턱을 넘은 이 법은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경영진에 책임을 묻는 내용이 담겼다. 기업 입장에서는 경영 리스크가 크게 높아졌고 투자자들 역시 그에 대한 방지책 마련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서는 중대재해법에 관한 지적은 개인 주주보다는 기관 투자자들 사이에서 강하게 제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총의 풍경이 올해를 기점으로 크게 변화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KCGS 관계자는 “여성 임원 증가의 경우 선임된 여성 임원 대부분이 사외이사 또는 비상임이사로 파악된다”며 “장기적 관점에서는 여성의 사내이사 선임에 관한 주주제안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중대재해법과 관련해서는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는 안전 및 보건에 관한 계획을 수립한 뒤 이사회에 보고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이런 변화에 힘입어 기관투자자는 환경·건강·안전(EHS) 리스크가 큰 회사에 대한 투자를 배제·철회하거나 적극적인 주주활동으로 관행 개선을 유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부연했다.
또 다른 국내 의결권 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의 진단도 마찬가지다. 서스틴베스트는 올해 주총에 대한 전망보고서를 통해 “ESG 열풍은 기업들이 관련한 공시를 더욱 자세하게 할 유인을 제공했다”며 “당장은 어렵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주총의 각 안건에 다방면으로 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된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향후 기업의 ESG 관련 다양한 정보들이 공개됨에 따라 투자자들도 기업의 ESG 관련 현황 및 계획을 면밀히 검토하고 해석한 후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만일 기업이 선임하고자 하는 ESG 전문가가 과연 실제로 전문가인지 면밀히 검토하는 등의 태도가 따라야 한다”고 진단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