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車 산업 보호 위한 공급망 재편 본격화

국내 자동차 기업과 정부는 친환경차 보급 확대 방안과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현황 등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사진은 정세균 국무총리(왼쪽)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사진=연합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새로 출범하자 국내 최대 수혜 산업은 자동차산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바이든 정부가 이전 도널드 트럼프 정부와 가장 차별화되는 것이 있다면 친환경 정책이 부각된다는 점이었다. 유럽 중심으로 환경과 안전 및 자유롭고 편리한 이동성이 강조되면서 자동차산업이 ‘내연기관 개인운전 시대’에서 ‘전기동력·자율주행 시대’로 빠르게 전환되는 추세를 미국도 따라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한 것이다.

한국 정부도 2018년부터 미래차 산업 정책을 강화했고 국내 자동차업계는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했다. 미국도 바이든 정부 들어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친환경차 관련 정책을 구체화하고 있다. 다만 미국이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친환경 모빌리티 정책 확대

국내 자동차업계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배터리 경쟁력과 공급 능력에 힘입어 친환경차 생산을 증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2025년쯤에 전기차만 100만대 이상을 판매할 계획이며 내연기관 개발은 2030년부터 중단할 예정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발표한 ‘2020년 주요국 전기동력차 보급현황과 주요 정책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전기동력차는 294만여 대가 판매됐다. 배터리전기차(BEV)가 202만여 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가 91만여 대, 수소전기차(FCEV)는 8200여 대가 판매됐다. 전년과 비교할 때 배터리전기차는 34.7%,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는 73.6%, 수소전기차는 9.3%가 각각 증가했다.

지난해 현대차그룹 전기동력차는 전년 대비 59.9%가 증가한 19만8000대로 2019년 글로벌 7위에서 4위로 올라섰다. 테슬라가 44만2000대로 판매량 1위, VW그룹(폭스바겐·포르쉐·아우디)이 38만1000대로 2위, GM그룹은 22만2000대로 3위를 기록했다.

쟁쟁한 기업들 사이에서 현대차그룹의 상승세가 가파르다. 다만 국내 경제 흐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의 움직임이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친환경차 관련 정책을 구체화하면서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는 친환경 관련 공약에서도 밝힌 대로 ▲파리기후변화협약 재가입 ▲2030년까지 전기차 충전소 50만개 추가 ▲전기차 관련 세제 혜택 및 친환경자동차 생산 기업 인센티브 제공 ▲정부 관용차 및 공공기관 차량 300만대 전기차 변경 등을 본격적으로 추진 중이다.

전현주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원은 “바이든 정부의 자국 자동차 산업 보호를 위한 공급망 재편 및 일자리 유치 정책은 국내 기업에 기회인 동시에 위협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미국 친환경 모빌리티 시장에 대한 기회요인을 살리고 위협요인을 해소하기 위한 국내 기업과 정부의 공동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바이 아메리칸’ 정책 대비한 한·미 산업협력체제 필요

미국의 최근 행보는 확실히 트럼프 정부 때와 다르다. 우선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정책을 강화하고 있고 그 정책의 중심에 ‘친환경 모빌리티 시장’의 확대가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미국의 행보는 앞서 언급한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공약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이 발표한 산업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친환경차 판매량은 지난해 기준 세계 3위다. 특히 미국 내 친환경차 생산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2023년에는 13.7%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소경제 로드맵에 따라 2030년까지 수소차 120만대 보급 및 수소충전소 4300개를 구축할 것으로 보인다. 2035년 캘리포니아 내연기관차 판매금지 선언 및 파리기후협약 재가입 등 친환경 행보에 속도가 붙는 모습이다.

미국의 친환경 정책은 전반적으로 한국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친환경 정책, 특히 친환경차 및 수소경제 로드맵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크게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바이든 정부가 환경 정책과는 달리 무역 정책에서 트럼프 정부의 정책 기조를 따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바이든 정부에서는 이전 트럼프 정부의 대외 통상 정책인 ‘바이 아메리칸’ 정책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또 전기차 관련 세제 혜택과 친환경차 생산 기업 인센티브 제공, 정부 관용차·공공기관 차량 300만대 전기차 변경 등의 정책은 기본적으로 미국 내 기업을 향해 있다.

김봉만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협력실장은 “미국이 대규모 인프라 건설을 통해 경기 부양에 나서면 전반적으로 한국의 수출에는 도움이 된다”며 “하지만 미국이 미국산 제품 사용을 강조하면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생산 기지를 세우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상황이 국내 기업에 부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은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희토류 등 핵심 품목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동맹국과 연계 강화를 위한 공급망을 재검토하고 있다. 이는 제조 원가가 낮은 중국에서 생산하는 부품 의존도를 감소시켜 미국 시장 내 한국 기업의 비중을 높일 수 있는 반사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미국 내 자동차산업 투자 및 일자리 유치를 위한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리쇼어링(해외 생산기지 본국 이전) 기업의 세금 혜택 등도 함께 강화되고 있다. 국내 기업 입장에서 바이든 정부의 미국 중심 공급망 재편 정책은 기회 요인이면서도 동시에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국내 기업 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의 정책 대응이 필요한 지점이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매년 국내 전기차 보조금 예산과 기준이 확정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1년에 2개월은 판매가 감소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면서 “아직까지 각국 전기차 시장이 정부나 지자체 보조금에 의존하기 때문에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국내 보조금 정책의 구체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 연구원도 “국내 기업들의 미국 시장 공략과 국내 자동차 산업 구조 고도화를 위한 글로벌 밸류체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동시에 한국 정부의 친환경 정책 및 이해관계 조율 등 장기적 안목의 한미 산업협력체제 구축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정부·기업·연구소·대학 등 다양한 이해 관계자를 참여시켜 지속가능한 협력 플랫폼을 구축하고 양자 및 다자 협력체제를 활용한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