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인하대 녹색금융대학원 주임교수 칼럼

(사진=픽사베이)
최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개념이 산업계에 유행하면서 기존에 기업들이 추구하던 다양한 경영 철학 및 방식과의 관계 정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동안 기업들은 사회책임경영(CSR), 지속가능경영, 공유가치(CSV), 윤리경영, 경제·사회·환경 부문의 기업성과를 평가하는 TBL(Triple Bottom Line), 기업시민주의(corporate citizenship) 등 다양한 용어를 사용해 왔다.
역사, 관점, 주안점이 달랐지만 그들은 공통적으로 시장자본주의의 대안을 찾거나 그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하지 못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시장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경제시스템 발명이 어렵다면 지속가능하지 않은 우리의 생산, 소비 및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그런 배경에서 1987년 유엔(UN)보고서 ‘우리공동의 미래’가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을 정의하고 2015년 유엔이 지속가능발전목표(SDG)를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CSR은 1950~60년대를 거치면서 산업계 리더들에 의해 환경과 사회문제를 초래하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됐다. 경영자의 유일한 책임은 이익의 극대화라는 1971년 밀턴 프리드만의 유명한 주장은 CSR과 같은 새로운 경영철학에 대한 신고전주의 경제학자의 불편한 심기를 표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소비자, 지역사회, 노동자 등의 이해관계자는 환경과 사회문제에 대한 기업의 무책임한 경영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주주가 기업의 소유주이며 경영자는 주주만을 위한 경영을 해야 한다고 믿는 주주자본주의는 심각한 도전을 맞게 됐다. 1984년 에드워드 프리맨이 제시한 이해관계자 이론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에 중요한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즈음 CSR은 중요한 도전을 맞게 된다. CSR이 사회적 가치는 증진시킬지 모르나 경제적 성과에 부정적이란 우려로 산업계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이런 배경에서 프리맨은 이해관계자 관점을 주문하면서도 이해관계자 이론은 본질적으로 전략적 접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주주를 포함한 이해관계자의 요구 충족이 경제적 성과를 높일 것이라 주장했다. CSR이 사회, 즉 광범위한 이해관계자의 요구 충족을 위해 이익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익을 창출하는 전략적 사고임을 강조한 것은 지속가능경영의 개념과 맥락을 같이 한다. 즉, CSR에서와 마찬가지로 지속가능경영을 강조하는 산업계 리더와 학자들은 경제적 책임 또는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기본으로 생각했다. 이런 배경에서 1980년대부터 CSR 및 지속가능경영과 기업의 경제적 성과와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왔으며 대부분의 연구가 CSR 또는 지속가능경영 성과가 좋은 기업이 경제적 성과도 좋다는 결과를 보고해 왔다.
이처럼 CSR과 지속가능경영이 전략적 혜택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논리와 실증적 결과가 축적되어 왔지만 여전히 윤리와 책임을 중요시하는 당위론적 주장이라는 사고도 공존해 왔다. 이런 이유로 근래에는 CSR과 구분하여 ‘전략적 CSR’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사회책임을 다하되 그 과정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을 한때 혼란에 빠트렸던 마이클 포터의 CSV도 전략적 CSR의 한 유형을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
한편 보수적 성향을 가지고 철저히 경제적 관점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투자자들은 지속가능한 CSR 선도 기업에 투자하면 더 높은 수익률을 얻을 것이란 생각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CSR이나 지속가능경영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지는 모르나 전략적 비교우위를 만들어 기업의 경제적 가치도 높일 것이라는 사고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사회책임투자(SRI)도 비교적 최근에 이르러서야 환경과 사회를 고려한 투자가 수익률도 높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게 됐다. 하지만 전통적으로는 종교적, 윤리적, 신념기반 투자로서 문제가 있는 기업에 투자하지 않은 네거티브 스크린(Negative Screening) 투자전략이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투자자는 주주가치와 그것을 결정하는 기업의 지배구조(governance)를 중요시했다.
기업의 중요한 전략적 의사결정이 이사회에 의해 이루어지고 경영자(전문경영인 또는 소유주경영인)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전체 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대리인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이사회며 이사회가 전문성, 다양성, 독립성을 갖추어야 전체 주주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 가치가 높은 투자수익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투자자는 높은 투자수익률을 위해 현실적이고 냉철한 의사결정을 한다. 2000년대 이후 기후변화로 대표되는 환경문제의 심각성, 갈수록 심화되는 소득불평등과 기타 다양성 및 포용성 이슈 등이 경영에 심각한 위험요인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대한 대응이 경쟁력을 좌우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경영자는 지배구조가 과거보다 더 중요해졌고 경제적 성과만 평가해서는 최적의 투자의사결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배경에서 2005년 유엔 글로벌컴팩트 보고서 “Who Cares Wins”는 ESG를 강조하였다. 투자자가 기업의 환경(E), 사회(S) 및 지배구조(G)를 동시에 고려하지 않으면 최적 투자를 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 ESG로 구현된 것이다. 글로벌 운용사인 블랙록의 CEO인 래리 핑크는 한 술 더 떠 기업들에 ESG 성과개선을 강요하고 있다. 여기에는 투자수익률이라는 현실적 고려가 있을 뿐 윤리와 책임과 같은 숭고한 정신은 없다. 또 굳이 있어야 할 필요도 없다. 지속가능한 사회는 여전히 개인의 건강한 이익추구 토대에 건설된다고 필자는 믿기 때문이다.
한때 CSV에 현혹되었던 우리 기업이 ESG에서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바란다. CSV는 전략적 CSR의 한 유형에 불과했는데 마치 자본주의의 대안이자 새로운 경영철학인 것처럼 맹목적으로 추종한 것과 마찬가지로 ESG를 지속가능경영을 대체할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으로 생각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ESG 투자는 지속가능한 사회로 향하는 우리의 여정에서 투자자가 해야 할 역할이며 동시에 투자자의 개인적 이익추구 동기에 충실한 행동이다. 지속가능한 (LOHAS) 소비자가 소비자로서, 그리고 ESG 투자자는 투자자로서 지속가능경영을 촉진해 지속가능한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다. 앞 다투어 ESG 조직을 만들고 있는 기업들에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들은 오직 투자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경영을 하고 있는가. 무엇이 당신들을 생각할 시간도 없이 서두르게 만드는가.

김종대 인하대 녹색금융대학원 주임교수
(지속가능경영연구소 ESG 센터장)
현재 인하대 지속가능경영연구소의 ESG 센터장. 국내 최초로 대학원 지속가능경영·녹색금융 전공을 개설해 주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지속가능경영 관련 다수의 논문을 게재했다. 한국환경경영학회 창립인으로서 회장을 역임했고, 국민연금기금 사회책임전문위원과 인천시 녹색성장위원장 등을 지내기도 했다. 대표 저서로는 <책임지고 돈 버는 기업들> 등이 있다



김종대 인하대 교수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