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전기차 무한경쟁 중…韓 걸림돌은 노사갈등?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수출선적 부두와 야적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전기차 등 친환경차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내연기관차 시대를 주도하던 소위 ‘기득권층’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내연기관차 시대의 진짜 기득권층인 글로벌 완성차기업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시대적 흐름에 발 빠르게 대응하면서 자동차 시장 판세를 급격하게 바꾸려 하고 있다.

문제는 그 완성차업계에서 수십 년 동안 주축을 이루고 있던 종사자들이다. 일단 전기차는 부품 수가 내연기관차보다 30%가량 적기 때문에 그만큼 생산 인력이 감축될 수 있다. 사실 인력 감축에 대해서는 산업계가 오래 전부터 우려했던 현상이지만 자동차업계는 생태계 자체가 급변하고 있어 노사의 갈등이 빈번한 상황이다.

단체협약, 전기차 생산 현장의 지뢰밭 가능성

현대자동차의 순수 전기차 아이오닉 5는 국내 사전계약 대수에서 연일 신기록을 달성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유럽 사전예약에서도 예정물량인 3000여대의 3배가 넘는 1만여 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오닉 5는 생산 단계에서부터 노조와 갈등을 빚고 있다. 생산 인력 축소 계획에 노조가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현대차그룹 노사는 지난 10일 아이오닉 5 생산 라인에 투입할 인력 규모에 대한 합의안을 마련했다. 노사 합의안에는 울산1공장의 아이오닉 5 생산 라인에 투입하는 인원이 기존보다 줄어들면서 남는 인원을 다른 생산 라인에 배치하는 내용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노사 간 갈등은 일단락됐지만 이미 지난 1월 말 아이오닉 5 테스트카 생산라인이 중단된 바 있는 데다 올해 출시될 기아 EV6와 제네시스 JW(프로젝트명)에도 투입 인력과 관련한 마찰이 발생할 수 있다. 전기차 생산라인 현장의 노사 대립이 언제든지 이어질 수 있는 지뢰밭인 셈이다.

실제로 글로벌 자동차기업들은 전기차 생태계에 걸맞은 인력 구조를 만들고 강공을 펼치고 있다. 최근 전기차 투자비용을 확보키 위해 파격적으로 비용을 관리하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독일 폭스바겐은 최대 5000명의 직원을 감축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포드는 올해 들어 내연기관차를 생산하는 브라질 공장 3곳을 모두 폐쇄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최근 5년 내 전기차 전환으로 인해 글로벌 자동차산업 종사자 1100만 명 가운데 300만 명이 실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폭스바겐과 토요타, GM, 현대기아차 등 주요 완성차기업들이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면 부품사 생태계까지 무너지면서 2024년까지 대량 해고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친환경차 생태계가 빠르게 조성되는 상황에서 글로벌 완성차기업들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경쟁적으로 전기차 브랜드를 선보이고 있다”며 “현대차그룹도 E-GMP라는 혁신적인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완성하고 전기차를 빠르게 출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지만 신차를 양산할 때마다 매번 노사가 인력 규모를 협의해야 되는 단체협약 체제는 국내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 있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韓기업만 온라인 판매 불가능…글로벌 트렌드 소외

올해를 ‘전기차 도약 원년’으로 선포한 현대차가 사운을 건 전기차 라인업을 본격적으로 출범시켰다. 그 대장정의 신호탄으로 아이오닉 5를 선봉장으로 내세웠다. 현대차는 2025년까지 총 12종의 전기차를 출시하고 연간 56만대를 판매해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 판매 비중을 10%까지 늘릴 계획이다.

기아도 올해 새로운 브랜드 지향점과 신규 사명 및 로고, 그리고 슬로건을 발표하며 2026년까지 7개의 새로운 전용 전기차 라인업을 선보인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최근 공개한 EV6는 E-GMP를 기반으로 개발한 기아 전용 전기차 라인업 중 첫 모델이자 새로운 로고를 부착한 차종으로 전기차 대중화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내 자동차기업이 새롭게 재편되는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키 위해서는 양산과 관련한 노사 갈등이 지속돼서는 곤란하다. 쉽지는 않지만 서로의 타협점을 빠른 시일 내에 찾아낼 필요가 있다. 게다가 국내에서는 수입차 회사를 중심으로 온라인 판매가 확산되고 있어 이 부분의 노사 간 합의도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특히 테슬라는 100% 온라인으로만 차량을 판매해 지난해 국내에서 1만대 이상의 판매 실적을 올렸다. 메르세데스-벤츠는 2019년 통합 디지털 세일즈 플랫폼 ‘세일즈 터치’를 도입한 데 이어 올해 자동차 구매를 온라인으로 완료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시했다. 볼보 역시 새로운 전략에 따라 전기차를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촉발된 비대면 문화로 인해 전기차의 온라인 판매는 더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현대차의 경우 미국, 영국, 호주, 러시아, 싱가포르, 이스라엘, 인도 등 거의 전 세계에서 온라인 판매 플랫폼인 ‘클릭 투 바이’를 운영하고 브라질에서는 ‘현대 익스프레스’를 구축했다. 기아도 러시아와 인도에 온라인 판매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노조 반발로 온라인 판매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는 국내기업과 수입차기업 간 역차별 논란뿐만 아니라 소비자 불편도 야기하고 있어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세계적인 온라인 판매 트렌드에 현대차와 기아만 손을 놓고 바라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노조는 온라인 판매가 단체협약 위반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차지부 판매지회는 지난 22일 소식지를 통해 “기아 EV6 출시를 앞두고 사측이 진행하고자 하는 인터넷 사전예약은 노사 간 단체협약을 위반하고 영업조직을 훼손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라며 “기아에는 전국에 700여개의 거점과 7000여명의 영업노동자가 있는데 지금까지 기아와 현대차가 국내에서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는 것은 전국에 걸쳐 거점 영업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견고하게 구축된 국내 자동차기업의 영업조직은 자동차 내수가 성장하는데 큰 일조를 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급격한 판매방식 변화는 국가의 또 다른 경제축인 근로자의 고용 안정성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노조가 너무 강경한 것이 문제다. 이미 해외에서 국내 기업의 온라인 판매 시스템이 제대로 운영되는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이 밖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가 지난달 19일 전기화물차에는 운수업 신규 허가를 내주지 않는 내용의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사례도 논란이 되고 있다. 국토위 소속 의원들은 “전기화물차가 늘면 영세 운송업자 생계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관련 업계는 “정치권이 기득권층인 기존 사업자들의 표를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