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열린 현대중공업 정기주주총회. 사진=연합뉴스 제공
올해도 주주총회를 앞두고 싸우는 기업이 늘고 있습니다. 삼촌과 조카가, 형과 동생이, 창업주주와 사모펀드가 싸웁니다. 주식회사에게 3월은 분쟁의 계절입니다. 12월 결산 법인은 전년의 성과를 정리하고 3월에 주총을 엽니다. 주총은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회의입니다. 한해 동안 벌어들인 돈을 어떻게 나눌지, 배당을 얼마나 할 지가 주총에서 결정이 됩니다. 또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을 할 이사회 멤버를 결정합니다. 돈과 사람을 결정하는 주총은 분쟁의 공간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주총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습니다. 정치인에 대한 선거는 1인 1표지만 주식회사의 선거는 1주 1표입니다.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의 의견이 절대적으로 반영됩니다. 최대주주는 원하는 사람을 이사회 구성원으로 선임하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배당을 했습니다. 소액주주들은 지분율이 낮고 분산됐기 때문에 주총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견제 세력이 없으니 분쟁도 없었지요.

최근 열리는 주총에서는 분쟁이 늘고 있습니다. 한국앤컴퍼니(한국타이어그룹)는 최대주주인 조현범 대표이사에 맞서 형 조현식 부회장이 대표이사를 견제할 수 있는 독립적인 감사위원을 추천했습니다. 금호석유는 최대주주인 박찬구 회장에 맞서 조카 박철완 상무가 이사진 선임, 배당 확대 등을 제안했습니다. 한진은 2대주주인 사모펀드 HYK파트너스가 전문경영인 선임, 신규 이사 후보 추천 등을 주주제안 했습니다. 창업주 세대에서 아들, 손자 세대로 넘어가다 보니 지분율 변동이 일어나고 절대적으로 군림하던 최대주주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소수주주들에게 힘을 더해주는 제도적 변화도 이를 뒷받침 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감사위원 역할을 하는 사외이사 분리선출 3%룰이 처음으로 적용됩니다. 감사를 선임할 때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룰은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업들은 상임감사 대신 사외이사로 구성된 감사위원회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우회했습니다. 법 개정으로 감사위원이 될 사외이사를 선임할 때도 3%룰이 적용되다 보니 기업들은 피해갈 수 없게 됐습니다. 최대주주의 의결권이 제한된 감사위원 선임은 소수주주들이 도전해볼 만한 공략 포인트가 됐습니다.

전자투표를 도입한 기업이 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띕니다. 주총 전자투표는 2009년 법적 토대가 마련됐지만 의무가 아니다 보니 기업들은 외면했습니다. 소액주주들이 주총에 참석하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생각했습니다. 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ESG) 강화와 함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전자투표도 활성화됐습니다. 최근 삼성전자는 주총에서 ‘표결’을 했습니다. 주주들이 투표를 하고 표결을 하는 것은 언뜻 당연해 보이지만 이전에는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박수로 통과 시키겠습니다’라는 발언은 주총 현장의 단골 멘트였지요. 삼성전자는 전자투표를 통한 사전 투표 결과, 현장 투표, 위임된 의결권 등을 더해 현장에서 표결을 진행했습니다.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말이죠.

스튜어드십 코드의 강화도 실질적인 변화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해 기관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준칙입니다. 이전까지 상장회사의 주요주주인 기관투자자들은 기계적으로 찬성 의견을 냈습니다. 소수주주들은 우군을 확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면서 기관투자자들은 이사회 참석률이 낮은 이사나 경영진의 범죄가 발생하면 당시 사외이사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의사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결격 사유가 있는 이사에 찬성을 했다가 나중에 추궁을 당하면 곤란한 상황이 된다”며 “이전보다 훨씬 깐깐하게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상장기업의 주총 안건을 검토하는 의결권 자문기구들의 영향력이 강해졌습니다. 외국계 의결권 자문기구인 ISS는 LG그룹의 계열 분리에 반대의견을 권고했고, 삼성전자의 사외이사 재선임건에 대해서도 반대의견을 권고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경영진들의 탈선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다는 취지입니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의결권 자문기구가 반대를 권한 안건에 대해 찬성을 하려면 내부적으로 사유를 설명해야 한다”며 “의결권 자문기구의 영향력이 커졌다”고 말했습니다.

미디어의 변화와 주주가치에 대한 인식 제고도 달라진 주총환경을 만들고 있습니다. 소액주주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기업 정보를 얻고, 세를 규합하고 있습니다. 혼자라면 불가능해 보일 것 같은 주주제안도 많은 사람이 함께 하면 동력을 얻습니다. 지난해 동학개미 운동을 거치며 소액주주의 절대적인 숫자도 늘어났습니다. 삼성전자의 소액주주는 2019년 말 기준 56만명에서 2020년 말 215만명으로 거의 세배가 늘었습니다. 활동주식계좌 수는 무려 600만개가 늘었습니다. 그만큼 주총을 바라보는 눈도 많아졌습니다.

분쟁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입니다. 하지만 주총에서 최대주주와 다른 의견을 가진 소수주주가 주주제안을 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경영방침, 자본배분에 대해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나친 갈등은 신속한 의사결정을 가로막을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 기업 지배구조는 지나치게 갈등 없이 ‘오너’의 뜻대로만 의사결정이 이뤄져 온 것이 문제였습니다. 최대주주는 자신의 사적 이익이 아닌 기업 전체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방안을 선택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견제를 받아야 합니다.

ESG투자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위 자체를 추구하는 사회책임투자(SRI)와 달리 투자 수익을 더 높이고자 하는 적극적인 투자 행위입니다. 지배구조 개선이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경영진 반대편에서 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 것이 ESG 투자입니다. ESG에 대한 인식이 높아질수록 3월은 더 시끄러워지겠지만 긍정적인 변화를 이뤄 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권순우 머니투데이방송 기자

● 권순우 머니투데이방송 기자 프로필

서강대 신문방송/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경제 기자로서 경제금융계를 10년간 취재하다 지금은 전자, 자동차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을 담당하고 있다. 유튜브 <발칙한경제>를 진행하고 있고 KBS1 라디오 <성공예감 김방희입니다>와 유튜브 <삼프로TV>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 ESG에 관심이 많고 저서로는 <수소전기차시대가 온다>, <발칙한경제>가 있다. ESG라는 추상적인 가치가 경영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취재하고 있고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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