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용 반도체 수급 차질…최소 3분기까지 장기화 우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코나 생산라인.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전 세계적인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가 현대자동차그룹 생산공장의 일시적인 가동 중단 사태로 이어질 것이라는 업계의 우려가 결국 현실이 됐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부품 수급 문제로 인해 다음 달 7일부터 14일까지 8일 간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코나와 전기차 아이오닉 5를 생산하는 울산1공장을 휴업한다.

코나는 전방 카메라 반도체, 아이오닉 5는 내연기관차의 파워트레인에 해당하는 PE모듈이 부족해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자동차업계는 4월 한 달간 코나는 6000대, 아이오닉 5는 6500대 가량의 생산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알면서도 막지 못한 차량용 반도체 사태

사실 차량용 반도체 대란은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자동차업계도 국내 반도체 수급 문제 발생에 대해 시간문제일 뿐 완전히 피해가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실제로 정부도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지난 10일 서울청사에서 제6차 혁신성장 빅3 추진회의를 열고 범부처 합동으로 ‘차량용 반도체 단기 수급 대응 및 산업역량 강화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정부는 전 세계적으로 수급 차질을 빚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 분야를 키우기 위해 내년까지 연구개발(R&D)에 2000억 원을 투입키로 했다. 단기적으로는 수급 불안에 대응하면서 중장기적으로는 차세대 먹거리 산업으로 키우기 위해서다. 하지만 정부의 발표 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국내 기업 생산라인 가동의 일시 중단이라는 암초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미 폭스바겐, 제네럴모터스(GM), 포드, 도요타 등 주요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은 연초부터 반도체 수급 차질로 생산 가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현대차의 경우 상대적으로 재고를 많이 확보해 놓은 데다 정부 차원 대응이 발 빠르게 진행돼 생산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사태까지는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업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전 세계 차량용 반도체 시장 규모는 380억 달러로 NXP, 인피니온 등 몇몇 글로벌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업계도 차량용 반도체의 98%를 해외 기업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특히 차량용 반도체 수급 차질이 최소 3분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등 자칫 상황이 장기화될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기업들은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큰 피해를 입고 파격적인 감산에 돌입한 바 있다. 당시 상황으로는 차량용 반도체 구입량도 함께 줄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반도체기업들도 자동차 분야보다는 비대면 활성화로 수요가 보장된 IT 등의 분야에 생산력을 집중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0월 이후 갑자기 신차, 특히 전기차 주문이 급증하면서 결국 차량용 반도체 수급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반도체업계의 자동차 시장 외면도 원인

현대차는 일단 8일 동안 생산공장 가동을 중단키로 했지만 생산을 제때 재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차량용 반도체 수급 차질이 올해 3분기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실제로 연초부터 조업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던 포드, GM, 도요타 등의 사례를 봐도 현대차의 이번 조업 중단을 일시적인 문제로 치부하기는 쉽지 않다.

반도체업계의 한 관계자는 “품귀현상을 겪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의 중요성도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확대 움직임에 따라 더욱 높아질 전망”이라며 “원래 차량용 반도체는 낮은 수익성으로 시장 주목도가 높지 않았지만 미래차의 확대와 친환경차 수요 증가로 기존과는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반도체 수급 차질의 직접적 원인은 수요 예측의 실패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은 반도체업계가 자동차 시장 부진을 핑계로 수익성이 떨어지는 차량용 반도체보다는 스마트폰 등의 IT 시장에 더 주력했던 것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증권가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 이슈와 코로나19 재확산 여파로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의 실적에 단기적인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전망하고 있다. 자칫 부품 수급 장기화의 가능성도 우려되지만 하반기에는 자동차업계가 정상화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조수홍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유럽 각국의 봉쇄 조치가 4월까지 연장되면서 자동차 수요 회복 시점이 예상보다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지난 수년 간 수요기반이 견고한 상황으로, 공급 이슈가 정상화되면 단기 공급 문제는 장기 실적에 큰 부담이 아닐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현대차그룹의 경우 최근 아이오닉 5, EV6, K8 수요가 양호하기 때문에 공급 이슈가 해소되는 하반기에는 신차효과 누적에 따른 선순환 효과가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기적 수급 개선 외 뚜렷한 해결책 난망

향후 국내 차량용 반도체 산업을 성장시킬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현 상황으로는 국내 자동차업계가 글로벌 반도체 시장 흐름에 따라 매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내 자동차기업들 입장에서는 이 반도체 수급 문제가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주력 미래차 행보에도 큰 걸림돌이 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차량용 반도체의 빠른 사업화를 위해 기존 가전용·산업용·모바일용 반도체를 차량용으로 전환·개조할 수 있게 지원 사업을 신설한다고 발표했다”며 “현재 국내에는 차량용 반도체 생산 공정 자체가 없고 차량용 반도체 공정 투자에 수조 원이 들기 때문에 정부의 이 결정이 단기적으로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당장 차량용 반도체의 수익성은 모바일 반도체 등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그럼에도 높은 수준의 품질은 그대로 요구되기 때문에 국내 자동차와 반도체업계 간 근본적인 구조 자체가 변하지 않고서는 빠른 시일 내에 구현될 수 있는 생태계가 아니다. 일단 정부의 단기적인 차량용 반도체 수급 개선 방안이 시급한 배경이다.

실제로 산자부는 현재 단기적인 수급 상황 개선을 위해 민관 협력 채널을 활용하고 있다. 주요 국가, 해외 반도체 기업, 협회 등과 협의를 진행 중으로, 다수의 차량용 반도체를 위탁생산하는 대만 측과도 협의를 진행 중이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