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진출까지 노리는 중국의 ‘배터리 굴기’

중국이 꾸준히 배터리 교환형 전기차에 대한 투자와 사업화를 시도하고 있어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현재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K-배터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압도적 위상을 자랑한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를 대표하는 배터리 3사의 세계 시장 점유율 합계는 지난해 34.7%를 기록했다. 문제는 중국의 견제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중국 배터리 기업 CATL이 배터리 시장에서 점유율 1~2위를 놓치지 않고 국내업계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 전기차 생산 기업들도 속속 배터리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중국의 전기차 배터리 ‘굴기’는 점점 강화되는 추세다. 그 중에서도 교환형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중국의 투자가 확대되면서 관련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테슬라는 물론 르노 등도 교환용 배터리 사업모델을 검토했지만 결국 본격적인 사업화로 이어지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中에 총 555개 배터리 교환 스테이션 존재

중국 전기차 기업들은 전기를 다 쓴 배터리를 미리 충전된 다른 배터리로 바꿔 끼는 방식의 전기차 사업을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가 이런 배터리 교환 방식의 전기차 사업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면서 향후 배터리 교환형 전기차가 시장에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한국자동차연구원이 발표한 산업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배터리 교환형 전기차는 잔존용량이 감소한 구동 배터리 팩을 탈거하고 이미 충전된 다른 배터리 팩을 장착해 수 분 이내에 충분한 주행가능거리를 확보하는 방식이다. 니오, 상하이자동차, 베이징자동차 등 중국 내 주요 완성차 기업들이 사업화를 추진하면서 속도를 내고 있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말 기준 중국 전역에는 총 555개의 배터리 교환 스테이션이 설치돼 있다.

이호중 한국자동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직후인 지난해 3월에 국가 차원의 충전 인프라 투자를 천명했다”며 “지난해 5월 국무원 업무보고에서 전기차 배터리 교환소 권장 방침을 제시하고 해당 사업을 지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책임연구원은 이 사업 모델은 주행거리 문제 외에도 전기차의 초기 비용 부담을 해결하는 장점이 있다고 봤다. 소비자는 전기차 원가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배터리를 제외한 가격으로 차량을 구매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또한 배터리 교환 서비스 기업으로부터 배터리를 구독하는 방식으로 충전 시 대기하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는 편의성도 장점이다.

중국 내 열악한 전력난 사정이 직접적 배경인 듯

기본적으로 전기차 배터리의 충전시간과 주행거리의 획기적인 진화는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의 상용화라는 기술적 한계를 얼마나 빨리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전기차 대중화를 위해서 충전시간과 주행거리 이상으로 중요한 안전성과 충전 인프라 구축 문제가 선결과제로 남아있는 것이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배터리 교환형 방식이 차세대 배터리가 본격화되기 전 간극을 채워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며 “더 나아가 하나의 전기차 배터리 영역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심지어 이 방식 자체가 전기차 시대를 앞당기는데 촉매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의 보고서는 중국의 배터리 교환형 방식이 장점을 상쇄할 정도로 기술적·경제적·문화적인 장애 요소가 여전히 많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중국이 이러한 사업 모델을 시도하는 배경과 그 전략은 눈여겨볼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책임연구원은 “이 방식은 표준 규격 제약으로 인해 배터리 성능 개선을 위한 기술적 시도가 어려워질 수 있고, 특히 배터리셀-차대 통합 기술(배터리 셀을 전기차 섀시와 합체하는 기술)이 실현되면 사업 경쟁력이 하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배터리 교환 설비(약 50만~150만 달러) 및 유지비용을 고려하면 충분한 이용률이 유지돼야 적정 수익성이 확보되지만 충전 속도가 개선되면 이용자 감소로 수익성이 악화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중국이 이러한 사업 모델을 시도하는 것은 충전소와 배터리 교환 시스템을 혼용함으로써 전기차 대중화를 가속화하고 배터리 교환 스테이션을 활용한 지능형 전력망의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는 평가다. 또 중국이 충전 인프라가 미비한 국가에 전기차와 배터리 교환형 사업 모델을 패키지로 수출함으로써 시장을 선점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동남아 국가들이 1차적인 타깃이다.

이 책임연구원은 “일부 개발도상국 등은 전력 공급이 불안정해 소비자가 직접 전기차를 충전하는 방식보다 전력 가용 시 배터리를 미리 충전해놓고 필요 시 교체하는 방식이 합리적일 수 있다”며 “만약 해당 국가에서 중국의 배터리 교환 시스템이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 소비자가 그 서비스에 고착돼 배터리 호환성이 없는 여타 전기차를 외면할 가능성까지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두 마리 토끼’ 잡기 위한 中의 전략적 도박

중국이 이 같은 전략을 선택한 배경은 성장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열악한 전력난 사정이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지난해 코로나19로 위축됐던 자국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이번 연말연시 특수를 기대했지만 상당수 공장들이 전력난에 발목을 잡히면서 납기를 맞추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전력사정의 여의치 못한 것은 동남아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경우가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 이후 베트남 현지로 공장을 이전하려는 글로벌 기업들이 속출하면서 경제 호황을 누리는 듯 했다. 하지만 전력난이 심각해 공장 이전 행보에 차질이 빚어지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중국이 배터리 교환용 전기차의 전략적 공략 거점을 우선적으로 동남아 시장을 고려하는 이유다.

전력난이 심각하지 않은 국가들도 충전 인프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지난달 31일 민관 소통창구인 ‘자동차 탄소중립협의회’를 출범하고 탄소중립 도전 공동 선언문을 발표하면서 2025년까지 전기차 충전기 50만기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지난달 31일(현지시간) 2조2500억 달러(약 2540조 원) 규모의 대대적인 부양 계획을 발표하면서 2030년까지 50만개의 전기차 충전소를 만드는 계획을 함께 포함시켰다.

에너지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은 물론 선진국들도 세계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충전 인프라 문제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면서 “우선 충전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고 그 인프라 구축을 하는데 있어 기존 에너지업계가 구축해 놓은 전력 생태계에 대한 자동차업계와의 심도 있는 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력난을 심하게 겪고 있는 국가들까지 감안하면 중국의 배터리 교환 방식은 상당히 현실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