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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가 미래다] 당사자의, 당사자에 의한, 당사자를 위한 지배구조개편

  •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최근 주주총회에서 조만간 회사 지배구조 개편이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사진=SK텔레콤 제공)
2008년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가 사업 재편을 추진한다는 사실이 공시됐다. 현대모비스의 모듈 및 A/S사업을 떼 내어 현대글로비스에 이전시킨다는 내용이었다.

10조 원 가치로 평가되는 사업을 주고받는 빅딜로, 두 회사 주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클 수밖에 없었다. 현대모비스 주주 입장에서 보면 사업을 넘겨주는 대가로 현대글로비스 신주를 받는다. 계획대로 이 분할합병이 종료되면 두 회사의 주주로 변신하는 셈이다. 따라서 이전하는 사업의 가치를 얼마로 평가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필자는 이 과정에서 현대자동차의 역할을 지켜보며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현대자동차가 주도권을 가지고 애널리스트 대상 설명을 여는가 하면, 주주총회 의결권 자문기관들을 설득하는 작업에도 현대차가 앞장섰기 때문이다. 언론매체 대응도 마찬가지였다. 두 당사자 회사는 조용히 뒤로 숨고, 현대차가 커뮤니케이션 창구를 맡았다.

당시 필자는 현대차그룹 관계자들이 한 지배구조연구소를 방문하는 자리에 동참하게 됐다. 이 자리에서도 동석한 현대모비스 관계자보다는 현대차 관계자가 이 건에 대한 설명과 답변을 주도했다. 분할합병의 당사자는 엄연히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다. 재편되는 것은 두 회사 사업구조이지 현대차의 사업이 아니다. 두 회사 주주들의 이해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크다.

현대차가 주도적으로 나서선 안 된다는 필자의 지적에 당시 회사 관계자는 “그룹 차원의 일이고, 정의선 부회장(당시 직책)의 지배력과 관련한 일이기 때문에 현대차가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현대차는 주연이 아닌 조연이 됐어야 했다. 당시 그런 분위기에서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경영진이, 이사회가 스스로 판단해 분할합병을 결단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결국 결과도 좋지 않았다. 이 분할합병 안에 대해 일반소액주주는 물론 기관투자자 및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들도 반대 목소리를 냈다. 현대차그룹은 스스로 안건을 철회하고 말았다.

기업은 왜 합병하거나 분할할까.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합병이나 분할을 신고한 기업이 밝힌 목적을 한번 보자. GS리테일은 GS홈쇼핑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두 회사는 이번 합병이 회사의 성장성과 수익성을 개선시켜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제고할 것이라고 말한다.

편의점 GS25, 슈퍼마켓 GS 등을 주력으로 하는 유통소매업 전문회사와 TV쇼핑, 모바일쇼핑, 인터넷 쇼핑몰 사업이 주력인 온라인 유통 전문회사를 합침으로써 통합 고객 데이터베이스 구축, 온·오프라인 채널 및 물류 인프라 통합에 따른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패션업체 F&F는 투자사업(자회사 사업관리)을 담당하는 F&F홀딩스와 패션사업을 담당하는 F&F로 분할할 예정이다. 최종적으로 F&F홀딩스는 지주회사가 돼 F&F 등 여러 자회사 지분을 보유할 예정이다.

회사 측은 분할 이유에 대해 “사업역량을 전문화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한 경영체제를 갖춤으로써 지속성장, 지배구조 투명성, 경영 안정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지배구조 변경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높일 것이라고 한다.

기업이 공시에서 제시하는 분할이나 합병의 궁극적 지향점은 이렇게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제고로 귀결된다. 그 어떤 기업도 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든가, 원활한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합병이나 분할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의 목적이 대외적으로 총수 일가 지배력을 확대하거나 경영권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내비쳐선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합병 분할의 최우선 목적이 대주주 이익 극대화를 노린 것은 아닌지 감시해야 할 언론매체들이 오히려 대주주 지배력 강화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재편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긴다. 기업 합병이나 분할은 그 기업의 이익을 위한 것이 돼야 한다. 대주주가 자기 이익을 획득하기 위해 마음대로 회사를 합치거나 쪼개선 안 된다.

최근 일부 매체에 보도된 ‘기업 분할 이후 몸집 불린 DL, 3세 이해욱 지배력 강화 착착’ 기사의 제목을 보자. 마치 분할 목적이 대주주 지배력 키우기에 있었고, 그러한 목적에 맞춰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걸 알리고자 하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조家 승계 실탄 채우기 빨간불’은 또 무엇인가. 사조그룹은 최근 두 골프장을 합병하려다 주주가치 훼손을 주장하는 소액주주들의 강한 반발에 부닥쳐 포기했다. 이를 두고 대주주의 승계용 자금(실탄) 마련에 빨간불이 들어왔다고 매체가 우려하고 있다. 깜짝 놀랄 일이다. 매체가 해야 할 일은 기업의 합병이나 분할이 과연 시너지를 얼마나 낼 수 있는지, 진행과정에서 일반 소액주주의 이익 침해 요소는 없는지를 점검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최근 주주총회에서 조만간 회사 지배구조 개편이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시장에서는 SK텔레콤이 분할해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뉘고 투자회사가 중간지주사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투자회사는 SK그룹 지주회사인 SK㈜에 합병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만약 이 같은 방향의 지배구조 개편안이 공식 발표된다면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제고에 도움이 되는 방안인지,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나 다른 목적이 개입된 것은 아닌지를 잘 따져보자. 대주주 이익 보호가 회사 지배구조 개편의 최우선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

김수헌 글로벌모니터 대표

● 김수헌 글로벌모니터 대표 프로필

중앙일보, 이데일리를 거치면서 증권, 산업 담당 데스크를 지냈다. 기업의 국내외 거래를 둘러싼 금융 뒷거래를 심층 추적해 기자협회 기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2년 글로벌 금융시장과 경제 현상을 분석하는 전문매체 ‘글로벌모니터’를 전문 기자들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1일 3분 1공시>, <기업경영에 숨겨진 101가지 진실>, <기업공시 완전정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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