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배터리 3사, 중국에 이어 유럽과도 무한경쟁 돌입

헝가리 코마롬시에 위치한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 (사진=SK이노베이션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유럽은 미국·중국과 함께 3대 전기차 시장으로 꼽히지만 배터리 분야에서는 한국·중국·일본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이노베이션과 중국의 CATL, BYD, 일본의 파나소닉 등이 대표적인 배터리 기업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유럽이 전기차에 이어 배터리사업의 육성과 지원을 선언해 기존 배터리 시장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특히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주요 시장은 유럽이다. 당연히 유럽의 배터리 자급자족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이미 중국과의 경쟁만으로도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국내 배터리 3사의 고민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대 전기차 시장 유럽, 배터리시장 재편 가능성↑

국내 주요 배터리 기업들의 기세는 올해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중국, 유럽 등 선진국의 친환경정책 영향으로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전방산업 시장이 확대되면서 배터리 수요가 크게 확대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문제는 유럽 각국 정부가 배터리 산업의 자급자족을 선언하며 기업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분위기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4일(현지시간) 1년 간 전기차 배터리 육성을 위한 유럽의 정책 지원이 73억 달러를 넘고 투자 계획은 10배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유럽이 자체 배터리 공급망 구축을 시도하면서 스웨덴 노스볼트, 영국 브리티시볼트, 프랑스 오토모티브 셀스, 독일 폭스바겐 등유럽 내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고 전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030년까지 배출가스를 내뿜지 않는 자동차를 3000만대 이상으로 늘리고 이에 필요한 자동차 배터리의 90%를 유럽 내에서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럽은 지난해 133만대의 전기차 신규 등록대수를 기록하면서 125만대인 중국을 처음으로 제치고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부상했다. 따라서 이 같은 유럽의 계획이 진행될 경우 세계 배터리 시장이 재편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특히 폭스바겐의 행보가 매섭다. 폭스바겐은 지난달 15일 진행한 ‘파워 데이’ 행사에서 배터리 내재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2030년까지 유럽 내 배터리공장 6곳을 만들어 배터리셀의 안정적 공급을 가능케 하고 유럽 내 전기차 충전을 위한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확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배터리 기업 노스볼트도 주목받고 있다. 노스볼트는 폭스바겐, BMW와 140억 달러(약 15조 원) 규모의 공급 계약을 맺었다. 노스볼트는 2030년까지 유럽 배터리 시장의 25%를 점유하는 게 목표다. 배터리 업계의 한 관계자는 “노스볼트 등 유럽 배터리 기업들에 최근 한국 엔지니어가 대거 합류하고 있다”며 “국내 인력들이 넘어가 유럽 배터리 분야 세팅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기술자들 유럽 배터리사 합류 줄이어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이미 급격하게 확대되고 있다. 주목할 점은 가파른 유럽의 성장세다. 시장조사업체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지난해 563기가와트(GWh)에서 2030년 2262GWh로 약 4배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 세계 배터리 중 유럽 지역의 생산 비중은 지난해 7%에서 2030년 31%까지 확대돼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할 전망이다.

반면 중국 지역은 2030년(59%)에도 1위를 유지하겠지만 지난해(82%)와 비교하면 비중이 크게 낮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한국의 비중은 1%에 그치는 것으로 전망됐다. 전반적으로 기존 배터리 시장이 유럽 중심으로 흘러갈 것으로 보인다. EU 집행위원회가 2019년 계획한 배터리 산업에 대한 유럽 투자액도 중국보다 약 3배 많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부집행위원장은 최근 배터리 관련 온라인 콘퍼런스에서 “2025년까지 계획된 시설에서 600만대의 전기차에 공급할 수 있는 배터리를 생산할 것”이라며 “유럽 전기차의 수요를 맞추는 데 충분한 양”이라고 밝힌 바 있다.

EU를 탈퇴한 영국도 전기차 산업 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다. 영국의 경우 보리스 존슨 정부가 2030년까지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을 선포했다. 특히 친환경 지원 사업비가 26억 파운드(약 4조500억 원)에 달하는데 이 중 절반 수준인 10억 파운드가 영국 대표 배터리 기업인 브리티시볼트가 신청한 배터리 프로젝트에 사용될 계획이다.

이상민 한국전기연구원 차세대전지연구센터장은 “유럽 각국의 배터리기업들뿐만 아니라 이미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까지 배터리 자체 생산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며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소재 기술이든 디바이스 기술이든 차별화된 배터리 기술을 내놓고 그동안 축적된 기술을 기반으로 그들보다 앞서갈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국내 기업들도 발 빠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에 따르면 삼성SDI가 지난달 유럽연합지식재산청에 4종의 리튬-이온 배터리 관련 상표를 등록했다. 등록된 상표들은 삼성SDI가 국내 배터리 기업 중에서는 유일하게 만드는 각형 배터리다.

폭스바겐이 앞으로 전기차에 각형 배터리를 장착하겠다고 밝힌 데다 전반적인 유럽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요동을 치고 있어 삼성SDI의 이번 상표 등록은 각형 배터리의 브랜드화를 통해 유럽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 내포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도 이미 미국은 물론 유럽 완성차 업체들의 장기 물량 공급을 체결한 상황이라 당장 큰 타격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곽미성 코트라 프랑스 파리무역관은 “유럽이 전기차 배터리와 관련한 새로운 기술을 충분히 개발하고 전기차 산업에 적용하기까지는 약 15년이 소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며 “현재 유럽이 뒤처진 기술력을 만회하기 위해 적극 투자하고 있는 만큼 오히려 한국은 물론 아시아 기업들과의 협업수요 또한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유럽에 진출하려는 국내 기업들은 EU가 발표하는 규제안과 다양한 프로젝트들에 관심을 가지고 시장진입 기회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