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호조·소비 회복에 기업들의 체감 경기 살아나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컨테이너선. (사진=삼성중공업 제공)
긴 경기침체의 끝이 보인다. 소재와 중간재, 소비재 기업이 동시에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자동차와 반도체에 이어 오랜 기간 침체됐던 조선·철강·화학 기업들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화장품 등 소비재 산업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에서 서서히 벗어나 실적 반등을 맞았다.

수출 호조와 소비 회복에 힘입어 기업들의 체감 경기가 본격적으로 살아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29일 발표한 4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달 모든 산업을 반영한 업황 실적 BSI는 88로 3월(83)보다 5포인트 높아졌다. BSI는 현재 경영상황에 대한 기업의 판단과 전망을 조사하는 통계로 부정적 응답이 긍정적 응답보다 많으면 지수가 100을 밑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올해 1분기 수출액이 전년 동기(1302억달러) 대비 12.5%, 전분기(1419억달러)와 비교해 3.2% 증가한 1465억달러를 기록했다고 지난 26일 발표했다. 지난해 3분기 이후 회복세를 지속해 3분기 연속 증가했으며, 2018년 4분기(1545억달러) 이후 분기 기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주력 15개 품목 가운데 반도체, 자동차 등 12개 품목이 증가세를 보였으며 지역별로는 중국, 미국, 유럽연합(EU), 베트남 등 주요국 수출이 모두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2분기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 내외 증가해 1500억 달러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수출과 투자, 민간소비, 재정 모두가 플러스 성장하며 1분기 성장에 기여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 같은 추세를 이어나간다면 올해 성장률 3% 중·후반 대 회복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이러한 경제 청사진 속에 특히 조선과 철강산업의 실적 호전이 주목을 받고 있다. 오랜 기간 한국을 이끌었던 효자산업이지만 상대적으로 최근 몇 년간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이후에는 그 침체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였고 올해 전망도 밝지는 않았다.

하지만 올해 들어 양대 산업이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우선 원자재 수요가 급증하면서 조선업에는 수주 대박이 터지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가 올해 1분기 전 세계에서 발주한 선박 중 절반 이상을 수주하며 조선업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한국조선해양의 경우 올해 1분기에만 총 69척 55억6800만 달러를 수주해 연간 목표의 40%에 근접했다.

철강업계를 이끄는 포스코와 현대제철도 올해 1분기 시장의 기대치를 뛰어넘는 깜짝 실적을 발표했다. 포스코가 10년 내 최대 분기 영업이익을, 현대제철이 3년 내 최대 분기 영업이익을 달성한 것이다.

철강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철강기업들의 호실적에는 전 세계적으로 철강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고 철강재 가격이 가파르게 오른 것이 반영됐다”며 “철강재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포스코의 경우 2분기 물량까지 모두 판매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韓 조선업, 확고한 시장 지배력 확보

영국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는 지난달 전 세계 선박 발주량 520만CGT(133척) 중 한국은 286만CGT(63척, 55%)를 수주, 중국 219만CGT(63척, 42%)를 제치고 1위를 고수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월(295만CGT) 대비 76%, 전년 동기(124만CGT) 대비 320% 증가한 규모다. 월별 기준으로는 2015년 6월(603만CGT) 이후 6년 만에 최대치다.

1분기 누적으로도 한국은 전체 발주량(1024만CGT) 중 532만CGT를 수주하며 1위를 지켰다. 이는 전년 동기대비 10배에 육박하는 규모다. 이어 중국이 426만CGT(161척, 42%), 일본이 35만CGT(17척, 4%)로 2, 3위를 지켰다.

올해 1분기까지 수주 목표 달성률이 가장 높은 곳은 삼성중공업이다. 삼성중공업은 최근 수주한 수에즈막스급 원유운반선 3척을 포함해 올해 초부터 현재까지 총 42척, 51억 달러(약 5조7000억 원)를 수주하며 올해 목표치의 65%를 달성했다.

올해 전 세계에서 발주된 1만2000TEU 급 이상 대형 컨테이너선 총 66척 중 삼성중공업이 절반(34척·52%)을 수주해 시장점유율도 1위를 기록했다. 이에 수주 잔고도 258억 달러로 늘어나며 최근 5년 내 최고치를 기록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올해 들어 해상 물동량 회복과 운임 인상 등으로 발주 환경이 호전되면서 컨테이너선과 원유 운반선을 중심으로 수주를 이어가고 있다”며 “확고한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수주 목표 달성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정부도 여세를 몰아 적극적인 지원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 증가 등으로 글로벌 발주가 부진한 상황에서 LNG운반선, 초대형컨테이너선, 초대형유조선 등 고부가가치 선종 분야에서 한국 조선업계가 보여준 기술력과 품질로 이뤄낸 성과에 힘을 보태겠다는 전략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우리 조선사들이 친환경, 스마트화라는 조선업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해 미래 시장에서 주도권을 유지하고 있다”며 “정부도 자율운항선박, 친환경 선박, 스마트 한국형 야드 등 조선산업의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지원을 지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동국제강 인천공장 에코아크전기로 조업 현장. (사진=동국제강 제공)
韓 철강업, 코로나19 영향 없었다

철강업계의 경우 철강재 수요와 가격이 동시에 상승하며 1분기 호실적이 가능했던 측면이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과 중국에서 대규모 경기 부양책으로 건설·인프라 투자가 늘면서 철강재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또 지난해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던 자동차·조선 등 전방산업의 실적이 개선되고 있는 것도 큰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철강협회(WSA)는 올해 철강 수요가 지난해보다 5.8% 늘어난 18억7420만 톤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10월 발표한 전망치보다 수요 증가율을 1.7%포인트(7910만 톤) 상향 조정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지난해 다소 보수적인 전망치를 내놓았던 측면이 있지만 올해 1분기 철강 수요가 시장 기대치 이상으로 개선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포스코가 연결기준으로 매출 15조9969억 원, 영업이익 1조5520억 원, 별도기준으로 매출 7조8004억 원, 영업이익 1조729억 원의 올해 1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했다. 연결 및 별도 기준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9.98%, 11.92%, 전 분기 대비 4.80%, 10.22%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전 분기 대비 연결 및 별도기준 모두 79.76%, 104.87% 증가했다. 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1조5000억 원 이상을 기록한 것은 2018년 3분기 이후 10분기만이며 최근 10년 기준으로 2011년 2분기 1조7000억 원 이후 두 번째로 큰 금액이다.

현대제철도 올해 1분기 경영실적을 발표했다. 현대제철 연결기준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5.6% 증가한 4조9274억 원, 영업이익은 흑자전환하며 3039억 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 또한 지난해 같은 기간 적자에서 벗어나 6.2%를 기록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글로벌 철강 시황이 개선되며 판재류 중심으로 제품가격이 인상되고 고부가 제품 판매가 확대됐기 때문”이라며 “글로벌 경제가 회복세에 접어들면서 선진국과 내수 중심으로 증가한 철강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결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철강 시황 상승세에 맞춰 원자재가격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해 수익성을 개선할 것”이라며 “동시에 주요 수요처별 맞춤형 영업활동을 강화함으로써 판매를 확대하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통해 최근의 회복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모레퍼시픽의 올 상반기 실적이 반등했다. 사진은 아모레퍼시픽 박물관. (사진=아모레퍼시픽 제공)
화장품 업계, 중국 매출 회복 등으로 깜짝 반등

화장품 업계는 코로나19 영향에서 벗어나 빠르게 회복 중인 중국시장에 힘입어 깜짝 반등세를 보였다. 특히 부진을 면치 못하던 아모레퍼시픽은 중국시장 회복과 온라인 매출 증가, 구조조정 등으로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매출이 상승하며 LG생활건강을 제치고 3개월만에 업계 1위 자리를 탈환했다.

지난 29일 아모레퍼시픽그룹에 따르면 1분기 매출은 1조3875억원, 영업이익은 1977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보다 각각 8.5%, 191.1% 증가한 수치다. 이는 온라인 채널이 고성장하고 중국에서의 매출을 회복하면서 국내와 해외 모두에서 호실적을 거둔 덕분이다. 아모레퍼시픽의 국내 사업은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9% 증가한 8135억원, 영업이익은 44.7% 증가한 1253억원을 기록했다.

국내 사업에서는 구조조정에 따른 판관비 축소 효과도 컸다. 해외 사업 매출은 4474억원으로 19.6% 성장했으며 영업이익도 523억원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국내의 경우 온라인 매출이 30% 이상 증가하고, 면세 채널 성장이 눈에 띈다. 특히 럭셔리 브랜드 설화수가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국내 설화수 매출은 3335억원으로 추정돼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분기 수준을 회복했다.

해외 사업 부문에서는 중국에서 럭셔리 제품군 중심으로 온·오프라인 채널 모두 30% 이상 성장했다. 고가 라인인 자음생 라인 판매 호조로 설화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0% 이상 증가했다. 설화수는 아시아 지역 전반에서 고른 매출을 보인 가운데 태국과 베트남에서는 설화수와 라네즈를 중심으로 매출이 성장했다. 북미 시장에서도 온라인 채널 매출이 확대되고 라네즈가 출시한 ‘립 트리트먼트 밤’이 판매 호조세를 보였다.

유안타증권 박은정 애널리스트는 “2021년 럭셔리 제품군 확대와 채널 효율화 효과로 아모레퍼시픽의 수익성 급증이 기대된다. 1분기 전사 럭셔리 제품군의 비중은 48%로 추정돼 과거( 2018-2020년) 40% 대비 8%포인트 이상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어 “럭셔리 성장에 방점을 둔 아모레퍼시픽의 수익성 상승은 2021년이 시작이다”며 올해 연결 영업이익이 346%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1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낸 LG생활건강도 아모레퍼시픽의 반등으로 3개월 만에 화장품 업계 1위 자리는 내줬지만 무서운 성장세를 보였다. LG생활건강은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370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0% 증가했다고 지난달 22일 밝혔다. 매출 2조367억원, 당기순이익은 258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7.4%, 10.5% 성장했다.

뷰티(화장품)와 생활용품(HDB), 음료(리프레시먼트) 등 3개 사업 모두 전년 동기 대비 매출과 이익이 늘며 1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대중국 수요가 강한 화장품 부문이 성장을 주도했으며, 이익 감소가 예상됐던 생활용품과 음료부문도 매출과 이익 모두 증가했다.

뷰티 사업 매출은 1조1585억원으로 8.6%, 영업이익은 2542억원으로 14.8% 늘었다. 뷰티 매출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증가세로 돌아섰다. LG생활건강 역시 럭셔리 브랜드의 강세로 해외 매출이 꾸준한 성장세를 보였다.

주요 브랜드 중 ‘오휘 더 퍼스트’는 전년 대비 매출이 64% 늘었으며, ‘로시크숨마’는 40% 증가했다. LG생활건강 측은 “국내외 시장에서 매출이 증가한 가운데 특히 해외 시장에서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들의 판매가 호조를 보였고 디지털 채널의 성장이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장서윤 기자 ·송철호 기자



장서윤 기자·송철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