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신호탄 쏘는 ‘車업계’…‘디지털 콕핏’ 전쟁

현대모비스의 엠비전 X. 자동차 유리창이 특별한 테마를 연출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로 변신할 수 있어 차량의 360도 투명 유리창 전체를 스포츠 경기나 공연 관람용 스크린으로 활용할 수 있다. (사진=현대모비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올해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은 전기차 등 다양한 미래 모빌리티 전략을 선보이면서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여기에 글로벌 IT 기업들까지 합세해 미래 모빌리티에 탑재될 다양한 기술들을 속속 공개했다. 이미 자동차와 IT 기업의 협업이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모양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과 자율주행 기술은 물론이고 차량 실내 대시보드의 고정관념을 깨는 혁신적 디자인과 기능들도 협업의 대표적 결과물들이다. 이제 운전석은 운전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다양한 인포테인먼트 기능을 조작하는 놀이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요즘은 이 공간을 ‘디지털 콕핏’(Digital Cockpit, 차량 내 멀티디스플레이)이라 부른다.

달라진 인간 삶의 방식, 모빌리티 기술에 투영

디지털 콕핏은 운전석과 조수석 전방 영역의 차량 편의기능 제어장치를 디지털 전자기기로 구성한 전장부품이다. 기존의 다양한 IT 기술을 차량 적재적소에 조합하는 개념이다. 자율주행 기반으로 운전자가 주행 중 영화나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고 심지어 화상회의를 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핵심은 자동차 운전석을 영화관, PC방, 사무실로 진화시키는 것이다.

이승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차량 운영체제(OS) 및 자율주행, 전기차 관련 소프트웨어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표준화한 기업이 미래차 시장을 선도할 것으로 보인다”며 “전기차 및 자율주행 시스템은 스마트폰처럼 소수의 플랫폼으로 정리될 것이고, 이는 표준을 바탕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표준 전략이 있어야만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미래 자동차 관련 투트랙 전략(협업·자체 개발)과 전기차 관련 경쟁력을 보유한 폭스바겐, 현대차그룹 등이 미래차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현대모비스가 이 부문에서 상당히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미래 성장 전략의 핵심 동력에 대한 연구개발(R&D) 직접 투자도 현재 1조 원 수준에서 2025년에는 1조7000억 원 수준으로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현대모비스는 현재 전체 연구개발비 대비 14% 수준인 선행 기술 연구개발비를 2025년에는 30%까지 늘릴 예정이다.

실제로 현대모비스는 지난 3월 31일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기술연구소에서 개최한 ‘현대모비스 전략 및 신기술 발표 컨퍼런스’를 통해 도심 공유형 모빌리티 콘셉트카인 엠비전 X(M.Vision X)와 엠비전 POP(M.Vision POP)을 공개하고 신기술 시연을 진행한 바 있다.

현대모비스 기초선행랩장인 천재승 상무는 이 컨퍼런스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예전과 달라진 인간 삶의 방식을 새로운 모빌리티 기술로 승화시키고자 고민했다”면서 “현대모비스가 제시한 새 모빌리티 플랫폼에는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일상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기술적 탐험 정신이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삼성-하만의 디지털 콕핏 2021. 이동 중 전방 49인치, 후방 55인치 QLED 디스플레이로 영상 촬영이나 편집을 비롯한 다양한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다. (사진=하만 인터내셔널 제공)
엔터테인먼트와 생산성,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현대모비스와 함께 글로벌 IT기업을 선도하는 삼성전자도 디지털 콕핏 구현에 주력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신개념 자동차-탑승객 연결 경험’을, 삼성전자는 하만과 공동 개발한 ‘디지털 콕핏 2021’을 통한 ‘제3의 생활공간’을 각각 제시하고 있다.

먼저 현대모비스의 엠비전 X는 목적 기반형 4인용 모빌리티로 실내 공간에 대한 색다른 해석을 바탕으로 사용자 맞춤형 경험을 제공한다. 자동차 유리창이 특별한 테마를 연출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로 변신한다. 차량의 360도 투명 유리창 전체를 스포츠 경기나 공연 관람용 스크린으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엠비전 X 내부에 부착된 디스플레이는 개인별 맞춤 제어도 가능하다. 차량 유리창에 TV 화면 여러 개가 장착돼 있어 별도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다. 탑승자 별로 디스플레이를 투명 유리창으로 활용해 바깥 풍경을 즐길 수 있고 스크린으로 전환해 영화를 감상할 수도 있다. 실내 좌석도 승객 사용 목적에 따라 변경 가능토록 양방향으로 앉을 수 있는 구조다.

엠비전 POP은 전기차 기반 초소형 모빌리티다. 현대모비스의 최신 기술을 융합해 사용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스마트폰과 운전대가 도킹하는 개념을 도입해 스마트폰으로 차량을 제어하는 신개념 모빌리티 기술이다. 운전대에 장착된 스마트폰은 그 자체가 자동차 디지털 콕핏이 된다.

삼성전자의 디지털 콕핏 2021은 이동 중에도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고 즐거운 경험을 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 중심에는 콘텐츠를 몰입감 있게 감상할 수 있는 49인치 QLED 대형 디스플레이와 사운드 시스템이 있다. 이를 활용해 사용자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자유롭게 즐길 수 있고 외부와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와 끊어짐 없이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5G 덕분에 자동차가 어디든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공간으로 변신하는 셈”이라며 “디지털 콕핏 2021은 엔터테인먼트뿐만 아니라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공간으로, 원격 업무를 위한 영상 회의부터 1인 미디어 영상 제작을 위한 촬영과 편집까지 이동 중에도 지속적인 회사 업무나 개인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LG전자가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 룩소프트와 공동으로 설립한 합작법인 ‘알루토’(Alluto)가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알루토는 LG전자가 개발한 웹OS 오토 플랫폼을 기반으로 디지털 조종석 및 좌석 엔터테인먼트, 승용차 호출 시스템 등의 상용화를 주도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미국 반도체 기업 퀄컴과 ‘5G 커넥티드카 플랫폼’ 개발에 착수하면서 자율주행차 핵심 부품 사업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MBUX 하이퍼스크린. 운전석과 조수석 전체를 잇는 대형 곡선형태의 MBUX 하이퍼스크린은 운전자뿐만 아니라 탑승객의 자동차 사용 패턴을 인공지능(AI) 시스템으로 파악하는 것이 특징이다. (사진=메르세데스-벤츠 제공)
완성차업계, 신차에 디지털 콕핏 실제 적용

기존 글로벌 강자로 군림했던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피아트크라이슬러(FCA) 역시 본격적인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급변하는 자동차 시장의 환경 변화에 뒤처지는 순간 벼랑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먼저 메르세데스-벤츠는 최근 ‘MBUX 하이퍼스크린’을 공개했고 지난달 16일 공개한 벤츠의 럭셔리 전기세단 ‘EQS’에 적용했다. 운전석과 조수석 전체를 잇는 대형 곡선형태의 MBUX 하이퍼스크린은 기존 자동차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차원의 대시보드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다. 운전자뿐만 아니라 탑승객의 자동차 사용 패턴을 인공지능(AI) 시스템으로 파악하는 것이 특징이다. 사용자 중심의 맞춤형 인포테인먼트와 편의사양 등 다양한 기능을 갖췄다. 소비자가 새로운 수준의 편안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BMW는 최첨단 플래그십 순수 전기차 ‘iX’에 탑재될 차세대 디스플레이와 운영체제 ‘BMW iDrive’를 공개했다. iX는 올해 말 국내에 출시될 예정이다. BMW iDrive라는 센서로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분석해 보다 개선된 자동 주행과 주차 기능을 지원하는 것이 특징이다. 다른 BMW 차량으로부터 위험 상황에 대한 경고를 받아 운전자에게 알려주는 편의 기능이 눈길을 끈다. 목적지 주변 지역에 주차 공간이 있는지도 미리 확인할 수 있다.

현대차도 ‘아이오닉 5’에 다채로운 편의 및 공조 기술과 최첨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적용해 최적의 사용환경을 확보했다. 디지털키는 스마트 키 없이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차량 출입과 시동이 가능하다. 빌트인캠은 차량 내부에 장착된 전·후방 카메라로 영상 녹화는 물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화면이나 스마트폰으로 연동이 가능해 녹화한 영상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여기에 시트 등받이 및 쿠션 각도 조절로 무중력 자세를 만들어 주는 1열 운전석·동승석 릴렉션 컴포트 시트(다리받침 포함)와 최대 135㎜ 전방 이동이 가능한 2열 전동 슬라이딩 시트 활용도 눈에 띈다. 이를 통해 아이오닉 5의 실내는 휴식 공간, 일하는 공간, 여가를 즐기는 공간 등으로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공간 활용도를 높여주는 실내 디자인과 넉넉한 적재 공간이 특징이다.

토마스 쉬미에라 현대차 고객경험본부장은 아이오닉 5 공개 행사에서 “혁신적인 실내공간과 첨단기술로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현대차 최초의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5를 소개하게 돼 영광”이라며 “아이오닉 5로 고객들의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지원해 전기차에 대한 고객 경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강조했다.

연평균 8.6% 성장률 보이는 디지털 콕핏 시장

글로벌 디지털 콕핏 시장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마켓스앤드마켓스는 디지털 콕핏 시장이 2018년 147억 달러에서 2022년 515억 달러 규모로 연평균 8.6%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글로벌 차량용 디스플레이 시장이 2019년 9조8000억 원에서 2023년 12조 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차량 상태를 단순히 전달하던 계기반이 내비게이션은 물론 종합정보 디스플레이로 진화하고 있다”며 “집 공간이 보다 개인화되는 경향과는 다소 다른 변화가 감지되는데, 디지털 콕핏을 통해 운전자뿐만 아니라 모든 탑승자가 차 안에서 영화를 보거나 인터넷 쇼핑을 할 수 있는 다인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현대차그룹은 물론 삼성과 LG 등의 국내 기업들도 전기차, 자율주행차 개발과 동반한 기술개발에 주력해야 할 시점”이라며 “현대차 아이오닉 5의 경우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를 통해 전기차가 추구하는 넓은 실내 공간과 적재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상황에서 디지털 콕핏을 얼마나 구현했는지도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완성차 기업들은 구글, 애플, 삼성, LG 등 IT 기업들과의 협업에 적극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글로벌 IT 기업들은 잠재적으로 미래차 시장에서 직접 자동차를 생산하려는 원대한 꿈을 품고 있기 때문에 완성차 기업들은 IT 업계와의 협업과 자체 개발이라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완성차 기업 입장에서는 IT 기업이 협업 파트너인 동시에 경쟁사일 수밖에 없는 새로운 생태계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