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형 지정 vs 완성차업체 진출 허용 갈림길…소비자는 완전 개방 요구

중고차 관련 사기가 만연하고 피해가 계속 발생하자 중고차 시장을 완전히 개방해야 한다는 소비자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기존 업계만 중고차 매매업을 할 수 있는 폐쇄적 중고차 시장 구조로 인해 일부 중고차 기업들이 허위 미끼 매물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일부 악덕 중고차업체들의 경우 아직도 침수차나 사고차의 이력을 속여 매물로 내놓거나 주행거리 조작, 불투명한 가격산정 등 후진적이고 불법적인 관행 거래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 중고차 매매업은 2013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완성차업계 진출이 제한돼 있었다. 2019년 2월 지정 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국내 완성차업계는 이미 중고차 사업 진출 의사를 밝혔고 현재 중소벤처기업부 결정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기존의 영세한 중고차업체들의 반발 등으로 1년이 넘도록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시장 전면개방 서명, 한 달 만에 10만 명 돌파

문제는 기존 중고차업체들의 요구와 달리 중고차 시장의 개방을 촉구하는 각계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기존 중고차업계는 중고차 매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달라고 중기부에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동반성장위원회는 중고차 매매업종이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기에는 산업 규모가 크고 소비자 후생 차원에서도 부적합하다는 판단을 중기부에 전달한 바 있다.

중기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 생계형 적합업종을 지정을 할 것이냐, 지정하지 않을 것이냐를 결정하는 단계인 것은 맞다”며 “정부 입장에서는 민간심의위원회 결정을 존중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지난해 이 절차를 진행했어야 했지만 그대로 진행했을 경우 결정에 따라 기존 업계에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민간심의위원회를 열면 부적격 판단이 나올 수밖에 없어 이를 미루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 관계자는 이어 “소상공인 보호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부처로서 중고차 시장이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되지 않았을 경우 전면개방이라는 결론이 나올 것이고 중고차 시장을 새롭게 진출하려는 완성차 기업들이 워낙 강자다 보니 기존 업계의 피해가 상당히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요구도 만만치 않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그럼에도 동반성장위원회 등의 의견,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강한 전면개방 요구가 있다는 사실 등을 면밀히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중고차 관련 사기가 만연하고 피해가 계속 발생하자 중고차 시장을 완전히 개방해야 한다는 소비자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자동차10년타기시민연합’ 등 6개 시민단체가 연합한 ‘교통연대’가 출범한 배경이다. 교통연대는 최근 “중고차 시장 개방 논의를 소비자 관점에서 풀어가고 기존 후진적인 중고차 시장의 거래 관행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중고차 시장 전면 개방을 촉구하는 ‘범시민 온라인 서명 운동’을 개시한 바 있다.

이 온라인 서명 운동은 시작한지 28일 만에 참여자 수가 10만 명을 넘을 정도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참여자들은 서명 운동 참여와 함께 기존 중고차 시장에 대한 불만과 실제 피해 사례를 함께 남기고 있다. 시민연합에 따르면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은 관할 구청에 신고를 해도 마땅한 구제 방법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유일한 구제 방법은 민사소송이지만 시간과 비용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가 감당하기 쉽지 않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범죄조직 강매로 극단적 선택 내몰리는 소비자

충북지방경찰청은 지난 11일 허위 매물을 미끼로 중고차를 강매한 중고차 딜러(24) 등 4명을 구속하고 2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온라인에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중고차 허위 매물을 올려놓고 이를 보고 구매하기 위해 찾아온 구매자를 속인 후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차를 강매했다.

이들은 주로 인터넷에 올린 매물을 보고 찾아온 구매자와 계약을 체결하고 해당 차량에 급발진 등 하자가 있다며 계약 철회를 유도하는 식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차량 문제를 보여준 후 사람들이 계약 철회를 요구하면 약관을 이유로 출고비용 환불은 물론 대출 취소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들며 다른 차를 구입하라고 압박하고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구매를 강요했다.

실제로 중고차 사기로 큰 충격을 받은 60대 A 씨는 지난 2월 차를 구매한지 20여 일 만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A 씨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중고차 매매 집단에 속아 자동차를 강매당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문신을 보여주며 위압감을 조성하고 돈이 없다고 하자 8시간 동안 차량에 감금하고 강제로 대출까지 받게 했다”며 “중고차 구매자는 구매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범죄 의심이 든다면 반드시 112에 신고해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와 관련해 허위매물을 근절시켜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난 13일 ‘60대 피해자의 목숨을 앗아간 허위매물을 근절시켜 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21일 현재 해당 청원 동의자가 4000명에 육박하는 상황이다.

허위 매물뿐만 아니라 국내 중고차 시장에서는 중고차 대출 금융사기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1일 “중고차 대출 금융사기 피해는 금융사에 보상을 요구하기 어려우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며 소비자경보 ‘주의’를 발령한 바 있다.

결국 완성차업계와 중고차매매업계의 상생안 마련을 위한 협상도 시작됐다. 기존 중고차업계의 눈치를 보던 정부도 소비자 불만이 빗발치자 가능하면 원만한 합의점이 도출되기를 바라고 있다. 다만 지난 2월 17일 열릴 예정이었던 중고차 상생협력위원회 발족식이 중고차매매업계의 일방적인 불참으로 무산된 적이 있어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실정이다.

중고차매매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치권이나 정부에서는 중고차 시장의 전면개방을 전제로 완성차업계의 시장진입 규모에 일정 비율을 적용하는 쿼터제를 두자는 중재안을 제시하고 있다”며 “업계 구조상 완성차업계가 시장에 진입하면 쿼터제 여부와 상관없이 알짜매물을 완성차업체들이 독식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영세업체들은 이겨낼 수가 없다”고 반발했다.

중고차 시장이 전면 개방될 경우 기존 중고차매매업체들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중고차 시장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면서 완성차업계의 시장 진출 허용을 요구하는 소비자 목소리가 급격히 커졌다는 사실 또한 인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을 수성하려는 기존 중고차매매업계와 시장에 진입하려는 완성차업계의 대치 구도에서 이제는 기존 중고차매매업계에 소비자가 반발하는 구도까지 이어져 중기부의 최종 결정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