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경기 이천 M16 공장(사진=연합뉴스)
최근 글로벌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한 자발적 약속인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기 위한 ’RE100’ 캠페인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RE100은 2050년까지 필요한 전력을 100%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전환하여 사용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를 직접 보유하거나, 재생에너지 전기를 구매해 쓰는 방식이다. RE100은 2014년 영국 비영리 환경단체 '더 클라이미트 그룹’과 ‘탄소공개프로젝트’에서 시작했다.

연간 전기 사용량이 100GWh 이상인 글로벌 대기업의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 가입방법은 더 클라이미트 그룹에 RE100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고, 검토 과정을 거쳐 가입이 확정된다. 가입하고 난 후 1년 안에 이행 계획서를 제출하고 매년 이행 상황을 점검 받아야 한다. RE100에 가입한 기업 수는 올 1월 말 현재 284개사(미국 51개사, 유럽 77개사, 아시아 24개사)나 된다. 2018년 기준으로 애플, 구글 등 30개 기업은 이미 재생에너지 사용을 100% 목표를 달성했으며, 95% 이상을 달성한 기업도 45개나 된다고 한다.

애플, 구글, BMW 등 글로벌 기업들은 협력 업체들에게 RE100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동참하지 않을 경우 사업이 힘들어진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우리의 수출기업들이 RE100 추세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 새로운 무역 장벽에 부닥칠 수 있다. BMW는 2018년 LG화학에 부품 납품 조건으로 RE100 동참을 요구하였다. 삼성SDI는 국내 생산 물량을 일부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는 해외로 옮겼다. 애플도 SK하이닉스 반도체에 RE100 조건을 맞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글로벌 주요 국가들은 탄소배출권거래제, 탄소세, 탄소국경조정세 등 탄소중립 관련 정책을 펴고 있다. 탄소배출권거래제(ETS)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의 배출 감축을 목적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시장에서 매매하는 제도다. 각 기업은 보유한 탄소배출권 및 배출량에 따라 배출권을 거래할 수 있다. 기업은 소요비용과 배출권 가격을 비교하여 낮은 비용의 방안을 선택할 수 있다.

작년 탄소배출권 시장규모는 2291억 유로로, 2018년보다 59%나 증가하였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중에 시장에서 거래가 되는 비중은 2005년 4.9%에서 올해 17.9%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 제도는 2005년 유럽연합(EU)이 도입하고 미국, 독일, 중국, 한국 등 10여 개국과 21개 지방정부에서 채택하고 있다.

EU는 세계에서 가장 큰 거래시장으로 작년 전 세계 거래 규모의 87%를 차지했다. 독일은 2021년부터 ETS의 적용대상이 아닌 난방 및 수송부문까지 별도의 거래제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이 아닌 미국 북동부(RGGI)와 캘리포니아(CCA) 시장 등을 중심으로 주정부 단위로 채택하고 있다. 올 2월 코네티컷주 등 동부 3개 주와 워싱턴DC는 2023년부터 교통부문 ETS를 운영한다. 중국은 2013년부터 베이징 등에서 실시를 하다가, 올 2월 초부터 전국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탄소세는 탄소를 배출하는 자국 기업에 대해 온실가스 배출 톤 단위당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기업에게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자는 압박을 가하면서 세수도 확보하는 장점이 있다. 탄소세는 국제기구와 학계에서 선호하고 있다. 미국 경제학자 3,500여 명(노벨경제학상 수상자 28명 포함)이 2019년 11월 탄소세와 탄소국경조정세 시행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탄소세는 현재 25개국에서 실시 중이지만 아직 보편화 되지 않았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탄소세가 적용되는 비중은 작년 기준으로 5.3%에 불과하다. 국가별 탄소세율은 이산화탄소 1톤당 최저 0.1달러(폴란드)에서 최고 133.3달러(스웨덴)로 국가별로 적용하는 가격 차이가 크다. 도입국 평균 가격은 29달러로 국제적으로 권고하는 75달러를 크게 밑돌고 있다. 그만큼 현실적으로 조세저항도 있고, 자국 기업의 대외경쟁력이 약화되는 것을 우려하여 아직 까지는 도입이 활발하지 않다.

탄소국경조정세는 해외로부터 수입하는 상품에 대해 탄소세를 부여하는 일종의 관세다. 탄소배출 규제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국가의 비대칭적 탄소누출을 막기 위함이다. EU는 유럽 그린딜 일환으로, 국경조정세 관련 법을 2023년부터 도입한다. 미국도 조만간 국경조정세를 실행한다.

그러나 탄소국경조정세에 대해 중국, 러시아 등 주요 신흥국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환경규제 수준이 낮고 탄소배출량이 많은 편이다. 반발의 주장근거는 국경조정세가 파리협약의 대원칙인 상향식 방식에 위반한다는 것이다. 상향식 방식이란 기후변화에 신속 대응하기 위하여 많은 국가의 참여를 유도하고, 이를 위해 당사국이 스스로 국가 상황을 고려하여 자발적으로 목표를 설정하는 방식을 말한다. 또한 탄소국경조정세는 선진국이 신흥국보다 더 많은 의무를 부담하는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CBDR) 원칙과 후발국을 보호하는 세계무역기구(WTO) 조항에도 위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탄소국경조정세가 실질적으로 부과되기까지 난항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EU 내에서조차 폴란드와 헝가리가 반대하고, 러시아와 중국 같은 국가들과 무역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 기술적으로도 탄소세 부과 기준과 정확한 탄소배출량 측정 근거도 마련되어야 한다. EU는 먼저 시멘트 같은 산업 파급력이 적은 분야에 적용하고, 점차 석유화학, 철강 등 제조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많은 산업으로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소재 자체의 탄소보다는 생산 과정에서의 화석 에너지 사용을 규제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기업들도 작년부터 RE100 참여가 늘고 있다. SK, SK하이닉스, SK텔레콤(SK브로드밴드 포함), SKC, SK실트론, SK머티리얼즈 등 SK그룹 계열사와 LG화학, 한화큐셀 등이 잇따라 참여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한국형 K-RE100 제도를 마련하여 전기 사용량과 무관하게 기업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이제는 국내외적으로 탄소중립을 준수하여 환경을 지키는 것이 이 시대의 노멀이 되었다. 이왕이면 환경을 지키면서 관련 산업을 글로벌 경쟁력있는 신산업으로 육성해나가는 묘안을 모아야 한다.



최민성 델코리얼티그룹 회장 test@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