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전광판. (사진=연합뉴스 제공)
2017년에 이어 올해에 다시 가상화폐 광풍이 불었다. 정도는 더욱 심해서 가상화폐 시가총액이 코스피 증권시장의 그것을 넘어서는 경지에 이르렀다. 주 투자자 계층은 20~30대지만 중년과 노년층도 적지 않아 이 정도면 국민 투자자산이라고 부를 만했다.

비트코인의 경우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그것을 결제수단으로 받겠다고 했을 때는 폭등했다가, 그 말을 취소하자 폭락하는 등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시세 변화를 보여준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이 가상화폐에 열광하자 금융당국은 곤란한 처지에 빠졌다.

정부 입장은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라 가상화폐를 기타자산으로 분류하고 250만 원 이상 수익에 대해 20% 과세를 하겠다는 것이다. 거기에 실명거래가 가능하고 자금세탁방지시스템과 정보보호관리체계 인증을 받은 사업자만이 오는 9월까지 신고토록 했다. 하지만 거래소에 대한 사실상의 관리업무는 은행에 떠넘김으로써 가상화폐에 대해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것을 회피했다.

이는 가급적 가상화폐를 제도권에 들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가상화폐는 “인정할 수 없는 화폐고 가상자산이기에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며 “국민이 많이 투자하고 관심을 갖는다고 보호해야 된다고 생각은 안 한다”고 토로한 바 있다.

이러한 정부의 바람이 실현될지는 의문이다. 시장과 기술의 흐름에 눈을 감고 사실상 손을 놓으면서 가상화폐 돌풍이 저절로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이미 캐나다와 유럽에서는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가 상장돼 거래되고 있고 미국에서도 그에 대한 심사가 이뤄지고 있다. 이번 가상화폐 광풍에 적지 않은 기관투자가가 참여한 점도 그와 맥을 같이 한다.

가상화폐의 기세가 한풀 꺾인 데는 중국 정부의 규제가 큰 몫을 했다. 중국은 이미 2017년 가상화폐 거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표한 바 있으나 그에 대한 단속은 느슨하게 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은행업협회 등은 공고를 통해 “가상화폐는 진정한 화폐가 아니므로 시장에서 사용될 수도, 사용돼서도 안 된다”고 밝힘으로써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정부 입장을 대변한 바 있다.

이러한 태도 변화의 배경에는 중앙은행이 발행을 준비하는 디지털 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가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CBDC는 가상화폐와 마찬가지로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하지만 발행주체가 중앙은행이고 중앙집중적으로 관리하며 유사시 거래를 추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중국은 현재 선전과 쑤저우 등 일부 지역에서 이를 실험하고 있고 데이터를 통해 그에 대한 장단점을 파악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태도는 이와 대조적이다. 다만 가상화폐가 변동성이 심해 화폐로서는 부적절하며 자금세탁 등 불법적인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기는 하다. 하지만 가상화폐 발행이나 거래를 금지한다거나 제도권에서 추방시키겠다는 발언은 없었다. 단지 1만 달러 이상 거래에 대해 국세청에 신고해야 한다는 조치만 도입됐다. 물론 이를 엄격한 억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미국 정부의 의도는 가상화폐 거래에 대해 데이터를 쌓으면서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규제하겠다는 정도로 보인다. 오히려 개리 갠슬러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의회 청문회에서 “가상자산거래소를 규제하는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이를 제도권으로 끌어오자는 주장을 했다. 이것은 가상화폐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아니며 양성화하자는 주장에 가깝다.

미국 정부도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달러에 대해 연구 중이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그동안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으나 최근 태도를 바꿔 본격적인 논의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제롬 파웰 연준 의장은 디지털 달러는 기존 달러의 보완재 역할에 그칠 것이라고 말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종합하면 중국은 가상화폐를 금지하고 CBDC에 대해서는 매우 적극적인데 반해, 미국은 가상화폐를 제도권에 끌어들이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CBDC에 대해서는 다소 소극적으로 보인다. 이는 두 나라가 처해 있는 상황 때문에 나타나는 차이점이라고 보인다.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를 보유하고 있으므로 그러한 지위를 위협할 수 있는 CBDC 도입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CBDC는 신용창조를 통해 자금을 공급하는 은행 역할을 위축시킴으로써 금융제도를 흔들 수 있다. 하지만 가상화폐는 결제수단보다는 자산으로써 기능하기 때문에 굳이 이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압도적으로 앞서있는 IT 기술과 기업을 통해 이를 주도할 수 있는 입장에 있다.

이에 반해 중국 입장에서 가상화폐는 CBDC를 저해할 수 있다. 중앙은행이 강력하게 통제하는 통화를 피해 자금을 불법적으로 사용하거나 해외로 도피시킬 수 있다. 그에 반해 CBDC는 자금 거래흐름을 파악하고 유사시 이를 추적할 수 있으며 정부의 통화 및 재정정책을 강화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또 국경 간 거래를 쉽게 함으로써 ‘일대일로’와 엮어서 이를 해외로 확산시킬 수 있다. 위안화 국제화와 기축통화화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가상화폐와 CBDC를 놓고 국제사회에서는 미묘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고 우리는 멀지 않은 미래에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다. 미국을 위시한 다수 국가가 가상화폐를 끌어안는 상황에서 우리만 이를 도외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미 기술적으로는 해외거래소를 통해 가상화폐를 거래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경지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이를 제도권에 편입시켜 규제하고 양성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세금만 걷고 관리는 은행에 떠넘기는 식의 태도는 곤란하다.

마찬가지로 다수 국가가 CBDC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이를 너무 소극적으로 대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비록 현재 금융시스템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고 미국 정부가 CBDC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중국을 위시한 다수 국가가 CBDC에 대해 적극적이라면 언제든지 태도를 바꿀 수 있으며 내부적으로는 그에 대한 상당한 준비가 돼 있을 수 있다. 금융당국은 가상화폐와 CBDC에 대해 기존의 틀로만 보지 말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정인호 객원기자

●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정책연구담당(상무보) ▲KT그룹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정책 전문가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