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 금융위기(GFC)이후 시작된 성장주의 수익상회가 정점을 치고 꺾이고 있다.( 출처=블룸버그 )
[주간한국 박병우 기자]

기업의 투자 방향과 사업모델, 증권시장의 주도주까지 바꿀 ‘레짐 체인지’가 진행 중이다. 증시에서는 성장주와 가치주간 논쟁이 불씨를 지폈다. 멀리 보면 1990년대 후반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 유행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세계화로 촉발된 시설투자 축소와 성장주에 대한 선호 문화가 종착역에 도달했는 지에 대한 담론이다. 성장주 대신 가치주가 시장을 이끌 것이라는 주도주의 레짐 체인지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195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글로벌 경제시스템에서는 수직적 통합의 사업모델이 대세였다. 수직적 통합은 공급망 조절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고정자산 투자가 뒷받침이 돼야 한다.

그러나 상당한 자금을 들여 구축한 시설투자는 급변하는 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따라서 기업의 이익 변동성이 높아졌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1990년대 후반 세계화가 경영 이념으로 등장했다. 인력과 부품을 해외서 조달하면서 기업의 내부 투자를 줄이기 시작했다.

세계화의 종식…소비o투자 키우는 큰 정부 역할 커져

정보기술 발전이 더해지면서 더 우수하고 값싼 인력과 자금의 아웃소싱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공급망을 통제하지 않고 외부화시킨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이후 주요 중앙은행들은 기준금리 인하와 함께 국채를 사들여 시중에 돈을 푸는 ‘양적완화’를 도입했다.

▲세계화 ▲정보기술(IT) ▲양적완화(=초저금리)의 세 가지 촉매는 경기사이클과 기업의 마진 흐름을 안정적으로 만들어갔다. 이에 힘입어 글로벌 플랫폼 기업이 탄생했다. 특히 지식 재산권을 많이 보유한 글로벌 플랫폼 기업은 10년 이상 기업 생태계를 지배했다.

증시에서는 화학, 조선 등 전통적인 가치주보다는 IT에 기반한 성장주의 상대적 주가 상승이 지속됐다. 은행업종까지 포함된 가치주는 낮은 주가수익률이란 잇점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오르지 않는 가치주의 함정에서 허우적거렸다.

지난해 전 세계를 패닉에 빠트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발발했다. 국가 정책, 라이프 스타일 등 사회적 트렌드의 변화, 기업의 사업모델 전환 등 기존의 표준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기준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투자자의 시각도 마찬가지다.

최근 글로벌 독립리서치 기관 TS롬바르드가 대형연금o헤지펀드 등을 대상으로 ‘웨비나’를 개최하면서 간단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웹(web)과 세미나(seminar)의 합성인 웨비나는 코로나19로 해외 출장이 막히면서 크게 활용되고 있다.

이 설문조사에서는 코로나19 종식 이후 재택근무와 관련해 응답자중 무려 87%가 일주일을 기준으로 하루 또는 최대 3일 출근이 적당하다고 답변했다. 과거처럼 주5일 출퇴근을 희망한 응답자는 13%에 불과했다.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서 해외 출장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이라는 응답이 75%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롬바르드는 “회사의 최고경영자는 전원 출근을 원할 수 있으나, 비용절감 효과를 체감한 자금 파트에서 재택근무 제도를 적극 지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반영하듯, 초저금리 시대의 대안 투자처로 각광을 받던 미국의 상업용 리츠(REITs.부동산투자신탁)의 주가는 지난해 하락세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가적 측면의 변화도 나타났다. 재난 극복 차원에서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기업을 제치고) 소비와 투자의 방향을 진두 지휘하는 거대 정부가 돌아온 것이다. 미국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도날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추구했던 기업국가 이미지는 정부 개입의 강도를 높여 관리자본주의에 충실한 정치국가 이미지로 변모해갔다.

그 대가로 조 바이든 정부는 국가부채비율을 낮춰야 하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바이든 정부는 또 기후변화라는 이슈를 내놓았다. 글로벌 산업 투자의 레짐 체인지를 유발하는 촉매를 투하한 것이다.

IT에서 인프라 투자로 전환, 힘 받는 가치주

전문가들은 앞으로 10년간 기업의 투자 방향을 결정지을 요인으로 ▲자급자족 문화 ▲사회기반시설 투자 ▲기후변화 전략 ▲미o중의 기술 패권 전쟁 등 4가지를 꼽고 있다. 성장주였던 증시 주도주를 가치주로 옮길 수 있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요인인 자급자족은 해외에 진출한 기업의 자국 회귀를 의미하는 ‘리쇼어링’을 다그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우선주의’ 정책과 같은 개념이다.

사이버·바이오·금융·국가안전 보안을 강조하는 이념이 강조됐다. 미o중은 이를 핑계로 삼아 무역전쟁에 이어 기술 패권전쟁을 벌이고 있다. 자급자족이 개별기업으로 내려가면 부품 조달을 내부화하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제조 기술을 내부화하겠다”며“내부화 전략은 급속 성장의 필요 조건”이라고 주장했다. 경쟁 업체들의 추격을 막기 위해서는 기술의 외부 유출 위험이 존재하는 아웃소싱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미국의 아마존은 인터넷 상거래를 운영하는 성장주로 시작했다. 그러나 빠른 배달을 위해 화물 운송사인 아마존 항공을 설립했다. 시장의 환경 변화에 발맞춰 고정자산 투자에 나섰다. 이 같은 사업모델 조정을 통해 아마존은 성장주에서 가치주로 갈아타는 변신에 성공한 것이다.

두 번째는 주요 투자 대상이 IT에서 사회기반시설(SOC)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인프라스트럭쳐 전망기관 GI허브에 따르면 향후 20년간 인구증가율을 토대로 필요한 글로벌 인프라 투자 소요액은 94조달러(약 10경5000조원)로 추산된다. 특히 기반시설 계획을 그대로 진행한다면 약 1경6800조원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글로벌 SOC 투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3% 수준인데 앞으로 3.5~4.0%까지 늘어날 것임을 시사해주고 있다.

또한 세계은행(WB)은 일본, 영국에 대해 100년 이상 노후화된 댐에 대한 즉각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며‘적색 경보’를 발령했다.

주력 투자대상을 SOC로 이동시키는 정책 중 바이든 대통령의 ‘일자리 계획’도 빼놓을 수 없다. 약 2500조원 규모에 달하는 미국의 일자리 계획은 향후 8년간 투자될 예정이다.

기후변화 전략과 관련된 대표적인 경우는 최근 국가와 기업의 핵심 키워드로 떠오른 환경o사회o지배구조(ESG) 경영이다. ESG의 확산은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의 사업모델을 성장주에서 가치주로 전환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시설투자나 인수합병(M&A)을 통해 미래 먹거리 사업에 대비하는 전략 외에도 해당 사업의 기반시설 투자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친환경 장점의 전기차 뿐만 아니라 충전시설 확충 등 기반시설 투자도 가치주의 부상을 견인할 것으로 분석했다. 또한 미래 이동수단인 모빌리티 산업의 전기화o수소화 과정을 통한 투자유발 효과도 기대된다.

최근 메르세데스o벤츠의 모회사인 다임러와 볼보가 손잡고 합작회사인 셀센트릭을 설립해 수소연료전지를 개발하고 있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수소전기차에 대해 비아냥을 날렸던 두 회사가 수소전기 트럭 시장에 진출하는 변화는 의미심장하다. BMW도 내년 수소전기차 생산에 나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의 수소차 시장 진출은 관련 인프라의 투자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미국과 중국의 기술력 패권 경쟁은 레짐 체인지를 강화시킬 것이다. 중국이 선진국을 따라잡겠다고 발표한 ‘과학기술혁신 2030 프로젝트(2016.7월)’에 따르면 양자컴퓨터, 우주 항공, 심해탐사, 극초음속학 등 미래 기술을 좌우할 첨단 분야까지 다루고 있다. 글로벌 성장의 리더를 결정지을 기술표준을 차지하려는 강대국들의 샅바 싸움이 갈수록 치열해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과 미국 일자리 계획의 공통점은 고정자산 투자 사업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과거 1950~1960년대 미국의 경제 성장과 기술 발전을 이끌었던 전략은 군수생산과 일반 소비시설을 결합한 군산복합체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이를 벤치마킹해 ‘군민융합전략’이라는 개념으로 군사와 산업시설의 복합체 구성을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중국의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는 제한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민간과 공동으로 일자리 계획의 자금을 조달하는 의지를 갖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 기회가 열리는 셈이다.

전문가들은“단기적으로 투자 확대에 힘입어 기업의 가격결정력과 이익이 높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은행, 통신, 자동차, 에너지 등 전통적인 가치주들이 유리하다.

장기적으로는 경기 변동성과 인플레이션, 금리 등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했다. 시장에서는SOC 투자 확대가 원자재, 광산, 건설, 엔지니어링 등 가치업종에 긍정적일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우주o심해탐사 업종의 매력도 올라갈 것이다.



박병우 기자 pbw@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