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경영진이 지난 3월 11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상장기념 ‘오프닝 벨’을 울렸다.(사진=NYSE 유튜브)
최근 뉴욕증시에 상장한 쿠팡의 ‘총수’ 지정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공정거래법이 생긴 지난 1980년대부터 대기업을 지배하는 ‘한 사람’을 지정하는 독특한 제도를 갖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Bom Kim)이 대주주로 있는 쿠팡이 급성장하면서 공정거래법 상 대기업 집단(공시대상 기업집단)의 기준인 자산총액 5조 원을 넘게 되자, 과연 이 ‘미국인’ 대주주를 쿠팡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한 사람’(법적 용어로는 동일인)으로 지정해도 되느냐는 논란이 일어난 것이다.

사실, 너무나 창피하고 슬픈 일이다. 주주 평등주의와 이사회 제도를 둔 번듯한 현대 회사법을 갖고 있으면서도, 회사의 의사결정구조인 기업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회사법에 의해 선출된 대표이사가 아니라 다른 어떤 한 사람이 그 회사의 의사결정을 담당하고 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우리나라의 현실, 이런 후진적인 기업 거버넌스의 현실이 뉴욕 증권거래소의 뉴스를 타고 전세계에 날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한국의 기업집단은 연결재무제표나 지분구조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한 사람과 그 일가친척의 연결고리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이 말이다.

30년 넘게 계속되어 온 이런 모순적인 기업집단 지정제도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할 때가 됐다. 회사법에 의한 회사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다시 말하면 이사들이 독립적으로 회사를 위해 의사를 결정하지 못하고 회사 밖에 있는 영향력 있는 한 사람(동일인, 총수)에 복종하고 그가 지배하는 회사들끼리의 부당한 거래를 하는데 모두 찬성을 해왔다. 주주와 이사 대신 정부 기관이 이런 거래를 감시하고 회사를 보호하기 위해 그런 한 사람을 지정해 온 이유를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제 이 제도의 부작용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사실도 직시해야 한다. 과거의 ‘어쩔 수 없는’ 기업집단 총수 지정제도 때문에, 그 한 사람의 기업집단에 대한 지배력이 마치 정부의 지정에 의해 공인을 받는 것과 같은 기이한 부작용이 더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원래 치열한 지분싸움이나 경영 능력에 대한 내부 임직원의 지지와 같은 정당한 경쟁과 기업 거버넌스의 작동에 의해 취득되어야 하는 것이 어떤 기업의 리더십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라는, 그 회사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는 정부기관에 의해 ‘한 사람’이 지정되는 것으로 기업집단 내의 모든 회사에 대해서 그 사람의 리더십이 자동으로 취득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갖는다. 자유로운 시장경제나 현대의 기업 거버넌스와 전혀 맞지 않는다. 왕조적 사고다. 심지어 아무런 지분 변동 없이 아버지가 아들에게 기업집단의 ‘총수’ 자리를 물려 준다고 선언하면 공정위가 기업집단의 ‘동일인’(총수)을 변경해 주어 그런 기업 세습을 ‘추인’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정부가 우리나라 기업들의 의사결정이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된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그 기업들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점수가, 특히 그 중에서도 G(지배구조)의 점수가 높을 수 있을까. 정부가 스스로 ‘총수’를 지정한 어떤 기업에 대해 높은 ESG 점수를 매기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일일까. 지금 환경을 필두로 너도나도 ESG에 뛰어들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기업이, 그런 결정 자체를 하는 데에는 제대로 된 내부 기업 거버넌스를 거쳤을까.

한 사람이 의사결정을 한다는 사실은 어떤 집단의 지속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다. 그런데 그 한 사람이 주도하는 ESG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 한 사람이 주도하는 ‘지속가능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공정위는 빠른 시일 내에 (준)대규모 기업집단의 동일인 지정을 중단해야 한다. 대표이사도 아니고 대주주도 아닌 어떤 한 사람이 사실상의 영향력을 미치는 기이한 기업 거버넌스의 현실을 인정하고 감시에만 골몰할 것이 아니다. 지난 30여년 동안 이런 기업집단과 총수 지정 제도 때문에 제대로 성장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진짜 회사법에 의한 기업 거버넌스와 치열한 회사내 경쟁이 싹이라도 틔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결정된 어떤 기업의 리더가 비로소 S(사회)와 E(환경)도 선택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 기업의 지속가능성이 사회적인 지속가능성과 환경을 포함한 지구 전체의 지속가능성의 뿌리가 되는, 아마도 진정 ESG가 의도했던 그런 선순환 구조가 완성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기업 간담회에 기업집단의 총수가 아니라 실제 기업집단 중심 기업의 대표이사들이 참석하는 날을 그려 본다. 물론 지주회사 체계인 기업집단이라면 지주회사의 대표이사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가장 매출 규모가 큰 회사일 것이다. 그리고 그 대표이사들이 주주총회와 이사회의 결정에 근거해서 자신들의 회사가 갖고 있는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를 하고,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한 문제 해결을 논의하는 모습을 언제 볼 수 있을까. 아마도 정부가 기업집단의 총수 지정을 멈추는 날부터 헤아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천준범 변호사 test@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