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 늦은 韓, 반도체·배터리 이어 양자기술 선점 도전

양자 상태 평가 실험 모습. (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와 배터리 패권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그 중심에 한국이 있다. 이제는 더 다양한 미래산업에서 한국이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일단 최근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자기술 등 미래산업 관련 기술 주도권을 선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1일(현지시간) 정상회담에서 차세대 이동통신(6G)과 양자기술 등 ‘미래 먹거리’라고 불리는 분야에서의 협력 의지를 밝혔다. 한미 양국은 양자기술을 대표하는 분야인 양자컴퓨팅, 양자통신, 양자센서 분야에 대한 공동연구와 인력교류를 확대할 계획이다.

6월부터 양자산업 활성화 특별법 시행

미국 정부는 2018년 ‘양자법’을 제정하고 2019년부터 5년 간 1조4000억 원을 지원하고 있다. 중국도 내년까지 17조 원을 투입해 세계 최대 양자연구소를 설립하고 양자암호통신위성을 발사하는 등 ‘양자 굴기’를 추진 중이다. 특히 양자기술의 한 분야인 양자컴퓨팅의 경우 디지털컴퓨터보다 30조배 이상 빠른 연산이 가능해 산업 전반에 큰 혁신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IT업계의 한 관계자는 “양자통신·센서·컴퓨팅 등의 양자정보통신은 미래산업의 전환을 이끌 핵심기술로 미국, 유럽, 일본 등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경쟁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며 “한국은 아직 기술적 난이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산업 기반이 미약해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한미 간 정상회담을 통해 구축한 양자기술 분야의 미래 지향적 파트너십 관계를 공동 연구 및 인력 교류 확대로 가시화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양자기술의 경쟁력 강화와 양자산업 활성화를 지원하는 개정 ‘정보통신진흥 및 융합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정보통신융합법)이 지난 10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정보통신융합법에는 양자정보통신의 정의부터 연구개발·인력양성·국제협력·표준화 등에 대한 지원근거, 전담기관 및 양자정보통신산업협력지구(클러스터) 지정 등에 관한 사항이 종합적으로 담겨 있다. 추후 양자기술 및 산업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 지원 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홍진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보호네트워크정책관은 “미래산업의 판도를 좌우할 것으로 예상되는 양자기술에 대한 체계적인 진흥 기반을 마련한 정보통신융합법의 시행을 통해 한국 양자정보통신 연구생태계와 산업생태계가 동시에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향후 지속적인 산·학·연 협력과 미국 등 핵심기술국가와의 교류확대를 통해 양자 분야에서 한국의 기술·산업적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폭스바겐, BMW 등 양자컴퓨터 투자로 미래차 대비

기본적으로 양자컴퓨터 개발에는 구글, IBM,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삼성전자 등 글로벌 IT 기업들이 업계를 주도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마켓리서치퓨처에 따르면 세계 양자컴퓨터 시장은 2019년 8억200만 달러에서 2023년 28억2200만 달러로 세 배 이상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급격하게 성장하는 이 시장에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미래차로의 전환을 꿈꾸고 있는 글로벌 완성차기업들도 발을 들여놓고 있다. 자동차업계는 교통시스템을 비롯해 제조과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양자컴퓨터 기술 적용을 추진하고 있다. 폭스바겐의 경우 2011년 세계 최초로 양자컴퓨터를 상용화한 캐나다 기업 디웨이브시스템즈와 손을 잡았다. 양사는 양자컴퓨터를 이용해 교통 체증을 해소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BMW는 양자컴퓨터 기술개발을 위해 미국 기업 허니웰, 싱가포르 스타트업 엔트로피카랩스 등과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이들 기업들은 제조와 공정, 그리고 유통단계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변수에 대응키 위해 양자컴퓨터 기술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벤츠도 내비게이션 최적화 등을 위해 양자컴퓨터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국내 완성차업계의 행보는 아직 미미하다. 다만 현대자동차그룹이 올해 초 양자컴퓨터 기업 아이온큐에 대규모 투자를 추진한다고 알려져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아직 투자금과 투자 시기 등이 구체적으로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전략적 투자자의 자금이 포함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의 아이온큐에 대한 투자는 현대차그룹이 자율주행 전문기업 앱티브와 함께 설립한 자율주행 합작법인 모셔널과 최근 인수한 로봇 전문기업 보스턴 다이나믹스를 떠오르게 한다”며 “현대차그룹의 이러한 행보에는 차량·도심항공교통(UAM)·로봇 등을 아우르는 모빌리티 생태계 구축을 위한 인공지능(AI) 역량 강화라는 목적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아이온큐는 듀크대학교 김정상 교수와 크리스토퍼 먼로 교수가 함께 만든 양자컴퓨터 기술개발 기업으로 현재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에 관련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특히 아이온큐는 최근 32개의 큐비트(양자컴퓨터 또는 양자정보의 기본 단위)를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양자컴퓨터 시스템을 공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아이온큐에 따르면 이 새로운 양자컴퓨터는 지금까지 구축된 양자컴퓨터 중 가장 강력한 능력을 갖췄다. 사물인터넷과 AI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범람하는 대량의 데이터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어 자동차는 물론 정보통신기술, 의료, 제약, 항공우주, 국방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다.

김재완 고등과학원 교수는 “초기단계에 있는 국내 양자 연구의 경우 관련 전문인력, 기반 등이 부족해 선도국과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특히 미국은 김정상 교수 등의 한인 과학자가 활발히 활동 중이고 석·박사 연수 프로그램의 진척도 빠른 만큼 이를 양국 협력의 지렛대로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