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치 일감 걱정은 덜었지만 본격 호황기는 아직 불확실”

[주간한국 박병우 기자] 세계 조선업계가 환경규제의 강화로 선박의 조기 교체 수요가 늘어나 당분간 안정적인 일감 확보가 진행될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 조선업계도 연간 1,500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순)까지도 수주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올해 들어 수주량 1위를 기록 중인 한국 조선업의 강세가 더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것이 본격적인 조선업계의 호황기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지는 아직 두고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 한국수출입은행의 '해상환경규제 효과에 의한 신조선 발주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해사기구(IMO)의 해상 환경규제 강화로 노후선의 조기 교체 압력이 높아지며 신조선 수요 증가가 기대됐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운시장은 공급과잉과 저성장의 신음 속에 허덕였다. 2000년대 초중반 중국의 수요증가 효과에 의한 세계 해운 및 조선업 호황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갑자기 종식됐다. 그러자 호황기 동안 발주된 많은 선박이 다량 인도돼 2010년 이후 선복량 과잉 상태가 지속됐다. 선복량이 과잉공급에 시달리는 상황에서도 2011년 이후 고유가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고연비 선박인 에코 쉽(Eco-ship)의 등장으로 2014년 유가 하락기까지 많은 선복이 추가 발주됐다. 이에 따라 선복량 과잉이 더 악화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공급 과잉이 심화된 가운데 세계 경제 역시 저성장 기류에 빠져들고 미·중 무역 분쟁과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으로 해운업 또한 공급과잉 해소에 더욱 어려움을 겪어왔다.

수출입은행은 “선복량 과잉 수준과 전방산업인 해운업 부진을 고려하면 2030년대 초중반까지 장기적 조선업 불황이 불가피하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최근 해상환경 규제가 변수로 등장하며 선박의 수요 부진이 다소간 해소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IMO는 2050년 탄소 중립 목표를 선언하는 등 환경 규제 조치를 강화했다. 탄소 중립은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실질적인 배출량을 ‘0’(제로)으로 만든다는 개념이다. 또한 기후변화 방지에 적극적인 유럽연합(EU) 등 일부 국가들을 중심으로 단기적, 중장기적 조치들이 강화되고 있다. 이런 조치들은 연료 효율성이 낮고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노후 선박들을 압박했다. 이에 대해 수출입은행은 선박의 수명 연한이 다가오기 이전에 조기 폐선을 하거나 고효율·친환경 선박으로 교체를 촉진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분석했다. 해운시장에서의 실질 수요보다 많은 신조선 발주가 발생해 장기적 불황 우려가 해소될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IMO는 2050년까지 전 세계 선박의 온실가스배출총량을 2008년 대비 50% 저감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2013년부터 선박에너지효율설계지수(EEDI) 규제를 시작으로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규제 조치에 돌입했다. EEDI는 1톤의 화물을 1해리 운송하는 데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질량으로 IMO는 EEDI 기준을 계속 강화하고 있다. 또 2020년부터 세계 모든 해역을 대상으로 선박 연료의 황 함유량을 0.5% 이하로 규제하는 황산화물 규제를 시작했고, 2023년에는 현존선에너지효율지수(EEXI) 규제도 시행한다. EXI는 신조선에 적용되는 EEDI와 같은 기준을 기존 선박에도 적용하는 기준이다. EEXI와 함께 선박 탄소집약도지수(CII) 규제도 도입된다. CII는 선박이 실제 운항하며 배출한 온실가스의 양을 선박의 톤수 및 거리당으로 환산한 수치이다. 매년 각 선박에 등급을 부여해 등급에 따른 제재를 가하게 된다.

IMO뿐만 아니라 EU도 2022년부터 선박의 탄소배출권 구매를 의무화하는 등 규제를 시작한다. 수출입은행은 신조선 발주량을 환경규제 효과에 의한 노후선 ‘교체 수요’와 해운 수요 성장에 따른 ‘신규 수요’로 구분해 10년 치 발주량을 추정했다. 추정 대상은 탱커, 벌크선, 컨테이너선, 가스선(LNG, LPG), 철광석, 곡물 등을 운반하는 Ro-Ro선, PCC(자동차 운반선) 등이다. 세계 발주량에서 10%를 차지하는 크루즈, 특수선, 기타 등 중소형화물선 등은 제외했다. 선종별 세부 선형의 선령별 척수를 근거로 교체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최근 5년간 각 화물의 연평균 증가율 등을 근거로 신규수요 추정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노후선 숫자 한계와 선주 투자 여력 낮아 호황기는 아직…

수출입은행은 이를 근거로 앞으로 10년간 연평균 1,926만CGT의 교체 수요와 1,790만CGT의 신규 수요 등 연간 3,700만CGT의 신조선 발주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여기에 크루즈 등을 합치면 연간 발주 규모 추정치는 약 4,000만CGT로 늘어난다. 이중 한국은 연 1,050만~1,240만CGT의 수주를 따낼 것으로 추정했다. 점유율로 환산하면 28~33%에 해당한다. 한국 조선사의 경우 2026년까지는 점유율이 낮아질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의 점유율이 높은 대형 컨테이너선들의 선령이 낮아 교체수요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향후 액화천연가스(LNG) 연료추진 기술 개발과 고효율화를 통해 한국산 선박 품질의 가치가 높아질 경우 한국 조선업계의 수주량은 연간 1,500만CGT까지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수출입은행은 “환경규제 효과가 배제될 경우 기대할 수 있는 연평균 세계 발주량은 2,500~2,600만CGT로 세계 조선산업을 유지하는 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불황이 장기화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후선의 조기 교체수요로 세계 조선업 유지에 필요한 최소 수준으로 추정되는 3,500만CGT 이상의 일감 확보가 가능해진 것은 고무적인 부분이다. 강경한 조치로 인하여 앞으로 5년 내 예상보다 많은 교체수요가 한꺼번에 몰릴 경우 호황기에 준하는 수요가 발생할 수도 있다. 문제는 현재의 경제 및 금융 동향과 금융위기 이후 선주들의 투자 여력 등을 고려하면 그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수출입은행은 분석했다.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 전경 ( 사진=연합뉴스 )




박병우 기자 pbw@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