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대통령 행정명령 서명…향후 대응이 한국 차산업 운명 좌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일(현지시각) 2030년 신차 친환경화 비율 50% 달성을 골자로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일(현지시각) 2030년 신차 친환경화 비율 50% 달성을 골자로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국 내 완전한 산업 기반을 구축해 친환경차 경쟁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표명한 것으로, 전 세계 자동차업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무엇보다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 서명으로 유럽연합(EU), 중국을 포함한 세계 3대 자동차 시장의 친환경차 정책 향방이 가시화됐다.

이처럼 세계 3대 자동차 시장의 친환경차 정책 방향이 구체화되면서 한국 자동차 기업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 자동차 기업들이 이 거대 시장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미래 한국 자동차산업의 흥망성쇠가 결정될 수 있다는 극단적인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韓 친환경차 100만대 시대…또 다른 대응력 절실

세계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 규제 강화’와 ‘2050 탄소중립 선언’ 등의 영향으로 자동차 배출가스 저감 기술이나 친환경 대체연료 사용의 중요성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이에 한국 정부는 2018년부터 미래차 산업 정책을 강화했고 국내 자동차업계도 친환경차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했다.

결국 올해 하반기에 국내 친환경차 100만대 시대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국내 자동차업계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배터리 경쟁력과 공급 능력에 힘입어 친환경차 생산을 증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2025년쯤에 전기차만 100만대 이상을 판매할 계획이며 내연기관 개발은 2030년부터 중단할 예정이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 자동차업계도 상당히 적극적으로 전 세계적인 친환경차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면서도 “이미 거대 시장을 내부적으로 가지고 있는 미국, 유럽, 중국 등의 친환경차 정책 방향이 구체화되면 지금과는 또 다른 대응능력이 발휘돼야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이 지난 16일 발표한 ‘산업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이 친환경차 산업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함으로써 2030년 미국의 승용차·소형트럭 신차 중 전기차(BEV),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 수소전기차(FCEV)를 포함한 무공해차(ZEV)의 비중을 50%로 높이는 목표가 제시됐다.

다만 무공해차 50% 수치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선언적 목표로, 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수소전기차 간 판매 비율이나 중대형 상용차의 전동화 목표치는 제시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목표와 관련해 미국 정부가 명확한 기준을 도입하는 것은 물론 인프라 확충, 혁신 촉진, 자동차 산업 근로자에 대한 투자를 통해 자동차 공급사슬 전역에서 고용을 창출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유럽·중국 중심 친환경차 ‘新 경제 블록’ 탄생

이미 전 세계 무공해차 판매량은 급증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발표한 ‘2020년 주요국 전기동력차 보급현황과 주요 정책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전기동력차는 294만여 대가 판매됐다.

전기차가 202만여 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가 91만여 대, 수소전기차는 8200여 대가 판매됐다. 전년과 비교할 때 전기차는 34.7%,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는 73.6%, 수소전기차는 9.3%가 각각 증가했다.

이호중 자동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미국이 친환경차 보급 지원 정책과 더불어 2026년 이후 신차에 대한 연비, 온실가스, 질소산화물 규제를 신설·개정해 친환경차 생산 확대를 유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며 “미국 내 완전한 산업 기반을 구축해 세계 친환경차 패권을 쥐겠다는 의지가 뚜렷하게 공개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사실 미국의 목표 실현 가능성은 불확실하다”고 덧붙였다.

미국 무공해차 50% 목표는 그간 주요 기관에서 제시한 전망치를 넘어서는 것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미국 내 판매 비중이 높은 중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픽업트럭 등에서 대대적인 전동화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실제로 금융정보업체 IHS 마킷이 지난 5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30년 미국 신차 중 전기차(BEV·PHEV) 비중이 25~30%에 그치고 2035년에 가서야 전기차 비중 45~50%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이 국가 차원의 친환경차 정책 청사진을 공개함에 따라 EU, 중국을 포함한 세계 3대 자동차 시장의 친환경차 정책 향방이 사실상 결정됐다는 것에서 의미를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임연구원도 “자국 친환경차 산업 기반 육성에 방점을 둔 미국 정책 방향은 기후변화 대응을 명분으로 비관세장벽을 강화하는 EU나 대외 갈등 속에 내수 활성화에 몰두하는 중국의 정책과 더불어 친환경차 부문에서의 ‘신 경제블록’의 탄생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이 책임연구원은 이어 “한국 자동차산업의 국내·역외 생산 후 수출 중심 패러다임은 변화가 불가피해졌다”면서 “정책 당국은 자동차 부문의 새로운 경제 블록에 대한 우리 기업의 진입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2월 23일 발표한 ‘제4차 친환경자동차 기본계획’에 따르면 한국은 2030년 신차 중 전기차(BEV·FCEV) 목표 비중이 33%다. 실제로 지난해 현대차그룹 전기동력차는 전년 대비 59.9%가 증가한 19만 8000대로 2019년 글로벌 7위에서 4위로 올라서 순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봐도 국내 친환경차의 비중 변화 추이가 가파르다. 2015년 말 18만 361대에 불과했던 국내 친환경차는 2016년 24만 4158대, 2017년 33만 9134대, 2018년 46만 1733대, 2019년 60만 148대로 꾸준히 늘고 있다. 일단 시작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진검승부인 것으로 보인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