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 칼럼

밀턴 프리드먼. (사진=연합뉴스 제공)
밀턴 프리드먼(1912~2006년)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뛰어난 경제학자이지만 오늘날 그에게는 시장 만능주의자, 신자유주의의 화신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게 씌워져 있다. 이렇게 된 중요한 계기는 1970년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실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 극대화다’라는 그의 기고문이다.

이 글은 지난 수십 년간 기업의 목적에 관한 연구나 실제 기업 경영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최근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바람이 불면서 그의 주장은 폐기돼야 마땅한 구시대 이론으로, 심하면 조롱의 대상으로까지 취급받는 형편이 됐다.

하지만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옹호론자인 알렉스 에드먼즈는 “프리드먼의 글은 잘못 인용되고 잘못 이해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제목 이외에는 읽지도 않고 인용했을 것이다. 그들은 제목이 너무나도 명백하게 프리드먼의 입장을 말해주기 때문에 본문을 읽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을 법하다. 즉, 기업은 소비자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근로자에게는 저임금을 지불하며 환경을 오염시켜 가면서라도 이윤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그러나 프리드먼은 기업이 이해관계자를 착취하는 행동을 전혀 옹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만약 프리드먼이 2019년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선언을 들었다면 주주의 장기적 가치와 함께 이해관계자들의 가치 추구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이 선언에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프리드먼의 주장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평가가 엇갈리는가? 먼저 그의 주장을 살펴보자. 첫째, 경영자는 주주들에 의해 임명된 대리인으로서 주주 이익, 즉 이윤 극대화를 위해 행동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기업은 법률과 사회 규범을 준수해야 한다.

둘째, 주주나 경영자가 사회공헌 활동을 하기 원하면 자신의 돈과 시간을 쓰면 되고 기업이 사회적 책임 활동을 할 이유는 없다.

셋째, 만약 경영자가 법에서 정한 수준 이상으로 환경·사회 문제 개선에 기업 자원을 썼다면 이는 경영자가 자신의 판단에 따라 다른 누군가의 자원을 썼다는 뜻이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돈을 활용해서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원래 정부 일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 경영자는 세금을 걷어 어디에 쓸지 결정하는 정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처럼 기업의 의사결정이 정치적 의사결정화하면 시장기구가 아닌 정치적 메커니즘이 자원배분을 하는 셈이니 시장경제의 장점이 사라진다. 프리드먼은 기업은 시장을 통해 사회후생을 창출하고, 그 이외의 사회적 목표는 정부가 정치적 프로세스를 통해 해결함으로써 시장과 정부의 영역을 분리할 것을 촉구한다.

넷째, 시장은 만장일치 원칙에 기반하고 있다. 즉, 시장 거래는 자발적 참여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참여자들은 손해를 본다면 그 거래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 거래에 참여자들의 손해를 강요하는 사회적 책임이란 개념은 존재할 여지가 없다.

그에 비해 정치적 메커니즘은 다수결 원칙에 기반하고 있다. 물론 시장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당연히 다수결에 기반한 정치적 결정이 필요한 영역이 존재한다. 하지만 프리드먼은 사회적 책임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거의 모든 활동이 정치 영역화할 것을 우려했다.

그럼 프리드먼이 주장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프리드먼은 주주지상주의를 역설해 경영자들이 단기이윤 극대화에 몰두하도록 만들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폐해가 발생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하지만 프리드먼이 기업은 이윤 극대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이는 당연히 장기적인 이윤 극대화를 뜻한다.

프리드먼의 주장이 장기적 이윤 극대화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이해관계자 이익을 챙기는 행동도 주주가치 극대화와 합치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또 프리드먼은 종종 그의 이론이 경영자의 과도한 보상을 정당화했다는 식으로 오해받고 있으나 그는 도리어 경영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대리인 문제를 비판했다.

결론적으로 프리드먼은 기업이 이해관계자 이익을 챙기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기업이 그런 행동을 한다면 주주들이 그런 결정을 내려야지, 다른 사람이 주주에게 이윤 극대화 이외의 목적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프리드먼의 주장은 경제학 이론이 일반적으로 그러하듯이 몇몇 비현실적 가정들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이윤 극대화가 ‘항상’ 사회적으로 최선의 선택은 아니다.

첫째, 프리드먼은 기업이 이윤을 극대화하고 주주들은 각자가 사회공헌 활동에 그 돈을 쓰면 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기업이 개인(주주)보다 사회 문제 해결을 더 잘할 근거가 없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기업이 특정 사회 문제(예컨대 환경오염, 산업안전)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기업이 나서서 이런 사회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단, 프리드먼의 경고는 기업이 단순한 현금 기부로 생색내느라 이윤을 축내지 말고 이 돈을 주주에게 나눠주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된다.

둘째, 외부효과 문제가 없거나 정부가 세금이나 규제를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다. 하지만 기업이 일으킨 외부효과(예컨대 탄소 배출)가 정부 개입을 통해서 확실하게 해결된 사례는 거의 없다. 이때 경영자들에게 이런 문제를 외면하고 이윤 극대화만을 추구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셋째, 프리드먼의 주장은 참여자들 간에 완벽한 계약이 가능하다고 가정한다. 이를 전제로 주주는 ‘경영권’을 갖고 다른 참여자들에게는 미리 정한 금액을 지불하기로 계약을 맺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업이 어려움에 처해 참여자들에 약속한 금액을 지불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계약이 완벽하지 않은 경우에는 다른 이해관계자들도 기업의 결정에 영향을 받으므로 기업은 주주만이 아니라 모든 이해관계자의 가치 극대화를 추구해야 한다.

프리드먼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니 뭐니 그럴듯한 말을 늘어놓으면서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데 동조하는 경영자들이 못마땅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앞에서 보았듯이 기업은 사회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하고 기업이 그렇게 하도록 법규를 강화할 필요도 있다. 특히 지난 50년 사이에 자본주의의 많은 문제점이 드러난 상황을 감안하면 그의 주장을 해석하는데 주의를 요한다.

하지만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지금도 유효하다. “기업이 이윤 이외의 사회적 목표를 추구하는 것 자체는 좋다. 하지만 자발적 계약을 기초로 한 기업에서 이것이 주주에게 정치적인 목적에서 강요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는 자원배분을 시장이 아닌 정치적 프로세스에 의해 결정하는 사회주의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학은 지난 수십 년간 드러난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해 일정한 책임이 있다. 하지만 환경·사회·지배구조(ESG)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기존 경제학 이론으로 잘 설명할 수 있는 제도다. 과도한 이념 논쟁에 매달리지 말고 프리드먼과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화해할 때다.

조신 연세대 교수

● 조신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 프로필

대통령 비서실 미래전략수석, SK브로드밴드 대표, 산업통상자원 R&D전략기획단 MD,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역임했다. 파리협정(2015) 체결 시 정책결정에 참여한 인연을 계기로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기업 지배구조 관련 연구도 계속하고 있다. 저서로는 <넥스트 자본주의, ESG> 등이 있다.



조신 연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