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서울교통공사 9월 총파업 예고…HMM 30일 찬반투표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국가의 기간망인 의료, 교통, 해운 산업에서 파열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과 서울교통공사는 오는 9월 총파업을 결정했다. 병원과 지하철 운영을 위해 최소 인력은 유지하겠지만 방역과 출퇴근 현장에서 업무 공백은 다소 불가피할 전망이다. HMM(옛 현대상선)은 30일 찬반투표 후 파업을 여부를 최종 결정할 계획이며 파업아 결행될 경우 심각한 물류대란이 예상된다.

보건의료노조, 코로나 장기화로 열악해진 처우 개선 요구

지난 18일 오전 대구시청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대구경북지역본부가 다음달 2일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보건의료노조는 오는 9월 2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2년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방역 주축인 의료인들이 열악한 처우에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노조는 공공의료 지원 강화와 의료인력 확충, 의료인 처우 개선 등을 정부에 요구해왔지만 정치권에서 실현되지 않은 점을 강력하게 성토하고 있다.

보건당국은 실무교섭을 통해 총파업을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이창준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지난 26일 보건의료노조와의 11차 노정 실무교섭 모두발언에서 "당국과 보건의료노조 모두 일주일 뒤 파업까지 가지 않아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한다고 생각한다“며 적극적으로 대화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보건당국은 지난 5월부터 보건의료노조측과 이른바 ‘끝장 토론’을 진행 중이지만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지난 26일 열린 11차 협의에서도 당국과 노조는 입장차만 다시 확인하는데 그쳤다. 보건의료노조는 27일 조합원 투표에서 찬성률 89.76%로 총파업을 결의했다.

보건의료노조는 국립중앙의료원과 서울아산병원 등 주요 의료 기관의 간호사, 간호조무사, 약사, 요양보호사 등이 소속된 전국적 산별 노동조합이다. 전국에 11개 지역본부와 199개 지부를 두고 있고 조합원 수는 8만여 명에 달한다. 만약 총파업이 강행된다면 필수인력은 유지되더라도 전국 공공의료현장은 코로나19 방역 업무가 사실상 마비되는 등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일선 의료인들이 격무에 시달려 ‘번아웃’(탈진) 상태에 빠졌음을 호소하며 응원이 아닌 실질적인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노조는 지난 17일 전국 135개 기관 122개 지부가 참여한 기자회견에서 "공공의료기관은 전체 의료기관의 10%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코로나19 환자의 80%의 진료를 담당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노조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 의료인력의 70%가 감염병에 따른 우울증 증세인 ‘코로나 블루’를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조사에선 전국 17개 보건소 직원 1765명 중 우울 점수가 10점 이상인 '우울 위험군'의 비율이 33.4%에 달했다. 이는 일반 국민(18.1%)과 공중보건의(15.1%) 등의 우울 위험군 비율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난 수치다.

노조는 ▲감염병전문병원 조속한 설립 ▲전국 70개 중진료권마다 1개씩 공공의료 확충 ▲공공병원 시설·장비·인력 인프라 구축 등 인프라 지원과 ▲직종별 적정인력기준 마련 및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 교대근무제 시행 ▲대리처방, 동의서, 처치·시술, 수술, 조제 등 5대 불법의료 근절 ▲의료기관 비정규직 고용 제한 ▲의사인력 확충과 공공의대 설립 등 보건의료인력 확충·처우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대한간호협회도 지난 26일 성명서를 내고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 1년 7개월이 지난 이 순간에도 간호사를 포함한 의료현장 노동자들은 코로나19에 맞서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며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노동강도는 더 심해졌고, 이제 사명감만으로 더 버틸 수 없는 노동자들의 절박한 외침을 정부와 국회가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당국에 의료진 지원을 호소했다.

구조조정 요구한 서울시에 지하철 노조원들 폭발

지난 23일 오전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에서 시민들이 열차 탑승을 위해 대기해 있다. 이날 서울교통공사 노조는 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 등 5개 도시철도 노조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사진=연합뉴스 제공)

서울 지하철 1~9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가 추석 전 주인 내달 14일 파업 국면에 돌입할 전망이다.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은 지난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사 측이 구조조정 계획 철회 등 노조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총파업은 지난 22일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81.6% 찬성률로 가결됐다. 서울 지하철이 총파업에 나서는 건 2016년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성과연봉제 반대 총파업 이후 5년 만이다.

이번 총파업은 공사가 직면한 경영난에 대해 노사가 해석 차이를 보이면서 비롯됐다. 지난 2017년 서울메트로(1~4호선)와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를 합병해 출범한 서울교통공사는 이후 2019년까지 3년 동안 매해 5000억 원대 적자를 봤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열차 이용객 감소 등 악재까지 겹치면서 당기순손실은 1조1137억 원까지 불어났다. 올해도 적자 규모가 1조6000억 원대로 추산,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영난이 심각해지자 공사는 지난 6월 전체 인력의 10%에 해당하는 직원 1539명을 감축하고 복지 축소, 임금 동결 등을 통해 적자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공사는 구조조정을 통해 자구 노력을 보이고 행정안전부로부터 공사채 발행을 승인 받겠다는 계획이다.

상급 기관인 서울시도 공사 측에 이 같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6월 서울시의회 정례회 시정질문에서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가 통합 출범한 이후 공통되는 투자나 비용은 줄이고 경영을 합리화했어야 했는데 이후 바람직한 진전이 없어 적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비용과 적자를 줄일 수 있도록 먼저 자구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노조는 정부와 서울시가 적자의 근본적 원인을 외면하고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지하철 요금이 6년째 동결되면서 운임료가 지나치게 낮게 형성돼 있는 데다 지하철 환승 할인, 노인·장애인·국가유공자 등에 제공되는 무임 수송에 따른 손실이 겹치면서 수익성이 악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공사에 따르면 서울·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 등 6개 도시 지하철 공사의 지하철 무임승차 규모는 2016~2020년 5년간 2조7700억 원에 달한다. 노조는 공익서비스에서 발생한 비용이 상당한 만큼 정부와 서울시가 재정을 지원해 손실을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 지원금이 투입되는 코레일(한국철도)과의 형평성도 문제다.

전국 6개 지방자치단체 지하철 노조들은 연대 파업 가능성도 논의하고 있어 향후 파업이 전국 지하철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노조는 지난 26일부터 전국 지하철노조와 함께 주요 역사에서 '지하철 재정위기 해결, 구조조정 중단'을 촉구하는 동시다발 1인 시위를 진행 중이다. 내달 정기국회 개원에 맞춰 국회와 서울시청 일대에서 노조 요구를 알리는 릴레이 시위와 기자회견, 도보 행진 캠페인도 벌이기로 했다.

HMM, 9월 임금 협상 불발 시 파업·집단 퇴사 가능성도

HMM 해원연합노동조합이 집단사직과 쟁의행위를 예고한 25일 서울 종로구 HMM 본사 로비에서 노조원들이 천막 설치 투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HMM은 내달 1일 임금 인상을 걸고 노사 교섭을 진행한다. 노조는 월 급여 25% 인상, 성과급 1200% 조건을 요구하고 있지만 회사측은 지나친 임금 인상은 불가하다는 입장이라 난항이 예상된다. 노조 측이 이번 협상에서 파업과 노조원 집단 사직 등 초강수까지 걸고 양자가 끝내 합의를 도출하지 못할 경우 HMM이 입을 타격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해운업계에서도 초유의 물류대란까지 번질 수 있다는 긴장감이 팽팽하다.

해운협회는 HMM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3주 동안 6800억원의 피해액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협회는 “정부당국과 금융권에도 HMM 임금협상이 원만하게 이뤄져 한진해운 사태와 같은 물류대란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깊은 배려와 관심을 가져달라”고 촉구했다.

HMM의 대주주인 산업은행도 "HMM 노사 간 임금협상과 관련해 향후 쟁의 행위에 따른 해운물류 차질 가능성 등이 제기되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2018년 이후 HMM 경쟁력 제고를 위해 대규모 공적자금이 지원된 점, 국가 경제 활성화를 위한 원활한 해운물류 지원이 필요한 상황 등을 고려해 HMM이 대표 국적 원양선사 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노사가 합심해 해결방안을 조속히 찾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지난 9년 동안 매해 적자를 기록했던 HMM은 올해 갑작스런 해운 업계 호황에 힘입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HMM은 올 2분기에 매출 2조9067억 원, 영업이익 1조3889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2분기의 매출(1조3751억 원)과 영업이익(1387억 원)에 비해 각각 2배, 10배 상승했다.

HMM 노조는 이 같은 성과를 견인한 직원들에게 더 큰 임금으로 보상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노조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 선원은 지난 5월 승선 기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면서 총 313시간을 근무할 정도로 격무에 시달렸다. HMM 직원들이 잇따라 이탈하면서 남아있는 선원들은 1년 내내 배에서 내리지 못해 가족을 만나지 못한 경우도 발생했다고 노조는 설명했다.

HMM은 지난 9년간 임단협에서 육상직은 8년, 해상직은 6년간 임금을 동결하기도 했다. 사측은 올해 임단협에서 임금 5.5% 인상 및 격려금 100% 지급을 제안했다가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이후 임금 8% 인상, 격려금 300% 등 조정안을 제시했지만 여전히 노조 요구에는 못 미쳐 갈등은 계속됐다.

지난 25일 해상 선원 317명이 집단으로 사직서를 내고 스위스 국적 해운선사 MSC로 이직할 계획도 있었으나 노사 대화 후 한차례 보류한 상태다. HMM 해원연합노동조합(해상노조)와 육상노조(사무직 노조)는 육·해상 공동투쟁위원회를 구성하고 앞으로 사측과 협상에 공동 대응할 계획이다. 파업과 관련, 해상노조는 이미 조합원 92.1% 동의를 확보한 상태며 육상노조도 30일 찬반 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