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는 “완전 개방” 요구…결론 미루는 중기부 ‘방치’ 논란

시장을 수성하려는 기존 중고차매매업계와 시장에 진입하려는 완성차업계의 대치 구도가 장기화 국면에 돌입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완성차업계의 중고차 시장 진출 합의가 연달아 불발되고 있는 가운데 시민단체들이 중소벤처기업부의 조속한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한국수입자동차협회,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등이 참여하는 ‘중고차매매산업 발전협의회’(이하 협의회)가 완성차업계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협의해 왔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협의회를 통해 완성차업계와 중고차매매업계의 협의를 이끌어내는 데 주력해온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지난달 31일 비대면 기자간담회를 열고 진행사항을 발표했다. 을지로위원회에 따르면 협의회는 3개월에 걸쳐 6차례 실무위원회를 개최하며 큰 틀에서 ‘중고차 시장 개방’에 합의했지만 최종 합의안은 나오지 않았다. 중고차매매업계 반발로 논의가 계속해서 원점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완성차업계 쿼터 적용 놓고 세부 쟁점서 첨예한 대립

기존 업계만 중고차매매업을 할 수 있는 폐쇄적 중고차 시장 구조로 인해 일부 중고차 기업들이 허위 미끼 매물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일부 악덕 중고차업체들의 경우 아직도 침수차나 사고차의 이력을 속여 매물로 내놓거나 주행거리 조작, 불투명한 가격산정 등 후진적이고 불법적인 관행 거래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 중고차 매매업은 2013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완성차업계 진출이 제한돼 있었다. 2019년 2월 지정 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국내 완성차업계는 이미 중고차 사업 진출 의사를 밝혔고 현재 중기부 결정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기존의 영세한 중고차업체들의 반발 등으로 1년이 넘도록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지난 2월 중고차 매매업계 불참으로 ‘중고차상생협력위원회’ 발족에 실패한 후 을지로위원회는 지난 6월 협의회를 만들고 완성차업계와 중고차매매업계를 참여시켰다. 양측은 연 250만대 규모인 중고차 시장 전체 물량 10%에 한해 완성차업계가 참여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올해 3%를 시작으로 2024년 10%까지 단계적 참여율 상향을 허용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세부 쟁점에서 중고차 매매업계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중고차 매매업계는 완성차 업계가 취급할 수 있는 10% 범위를 연 250만대 기준이 아닌 사업자 거래 매물 기준인 130만대 규모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거래 대수만큼 완성차업계의 신차 판매권도 내놓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협의회는 정해진 기한인 3개월 내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을지로위원회는 협의 기간을 약 2주까지 추가 부여키로 했다”며 “소비자 후생 문제를 생각해서라도 중고차 시장 개방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기 때문에 중고차업계는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합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고차매매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치권이나 정부에서는 중고차 시장의 전면개방을 전제로 완성차업계의 시장진입 규모에 일정 비율을 적용하는 쿼터제를 두자는 중재안을 지속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며 “업계 구조상 완성차업계가 시장에 진입하면 쿼터제 여부와 상관없이 알짜매물을 완성차업체들이 독식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기존 영세업체들은 이겨낼 수가 없다”고 반발했다.

소비자 피해 줄이려면 불신 깊은 ‘레몬마켓’ 개선 필수

문제는 기존 중고차매매업계의 요구와 달리 중고차 시장 개방을 촉구하는 각계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중고차 시장에서 국산 브랜드와 수입 브랜드와의 형평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수입차 브랜드 인증 중고차 매장은 101개다. 메르세데스-벤츠가 23개, BMW가 20개, MINI가 14개, 아우디 11개 등 국내에 진출한 대부분의 수입차 브랜드가 인증 중고차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자동차위원회는 지난 2일 공식 성명서를 통해 “각 업계 합의와 중기부 결정이 지연되면서 중고차 시장 혼란이 가중돼 결과적으로 소비자 피해가 증폭되고 있다”면서 “특히 중기부는 심의 기한을 넘기면서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해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 중고차 시장은 정보 비대칭으로 질 낮은 물건이 많이 유통되는 대표적인 ‘레몬마켓’이며 소비자 신뢰가 정상적인 상태라고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미 국내에서는 중고차 관련 사기가 만연하고 피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는 ‘자동차10년타기시민연합’ 등 6개 시민단체가 연합한 ‘교통연대’가 출범한 배경이다. 교통연대는 최근 “중고차 시장 개방 논의를 소비자 관점에서 풀어가고 기존 후진적인 중고차 시장의 거래 관행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중고차 시장 전면 개방을 촉구하는 ‘범시민 온라인 서명 운동’을 개시하기도 했다.

기존 중고차업계는 중고차 매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달라고 중기부에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동반성장위원회는 중고차 매매업종이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기에는 산업 규모가 크고 소비자 후생 차원에서도 부적합하다는 판단을 중기부에 전달한 바 있다.

중기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 입장에서는 민간심의위원회 결정을 존중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이미 심의 절차를 진행했어야 했지만 그대로 진행했을 경우 결정에 따라 기존 업계에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소상공인 보호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부처로서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민간심의위원회를 열면 부적격 판단이 나올 수밖에 없어 이를 미루고 있다는 말이다.

시장을 수성하려는 기존 중고차매매업계와 시장에 진입하려는 완성차업계의 대치 구도에서 기존 중고차매매업계에 소비자가 반발하는 구도까지 더해져 이제 중기부는 권한과 역할을 충분히 발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일각에서는 중기부의 이런 행보가 신중함이 아닌 방치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