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원식 회장 변심…“처음부터 팔 생각 없었다” 꼼수 논란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지난 5월 4일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최근 자사 유제품 불가리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는 발표로 빚어진 논란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며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지난 1일 사모펀드 운영사인 한앤컴퍼니(한앤코)에 대한 주식 매매 계약을 해제한다고 통보했다. 홍 회장 일가가 보유한 남양유업 지분 53%와 경영권을 3107억 원에 넘기기로 밝혔던 약속을 깨고 새로운 인수희망자를 찾겠다고 밝혔다. 한앤코는 즉각 반발하며 “매도 계약은 아직 유효하다”고 맞섰다. 홍 회장이 타 사업자에게 주식을 매매할 수 없도록 가처분 신청을 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홍 회장과 한앤코는 계약 파기의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고 있다. 홍 회장은 매도인이 일방적으로 불평등한 계약이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한앤코는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홍 회장은 적어도 소송이 끝나기 까지 남양유업에서 회장직을 유지할 수 있을 전망이다. 내부 직원과 소비자,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반감 여론이 들끓으면서 불매운동 가능성도 다시 거론되고 있다.

홍 회장, 애초부터 물러날 생각 없었나

업계 안팎에선 홍 회장이 매각에 앞서 보인 행동을 통해 이번 매각이 성사되지 않을 것을 예상한 시선이 적지 않았다. 홍 회장은 지난 7월 30일 임시 주주총회를 전날 돌연 연기하면서 이날 예정됐던 남양유업의 경영권 이전 절차를 회피했다.

회사에서 물러나겠다던 약속은 어겼다. 남양유업이 공시한 반기 보고서를 보면 홍 회장은 상근 회장직을 유지하면서 올해 상반기 보수로 8억800만 원을 받았다. 가족들은 측근으로 다시 불러들였다. 회사 돈으로 고급 외제차를 빌려 횡령 의혹으로 지난 4월 해임됐던 장남 홍진석 상무는 한 달 만에 전략기획 담당 상무로 복귀했다. 차남 홍범석 외식사업본부장은 지난 5월 미등기 임원으로 승진했다.

매각 추진이 원점으로 돌아오자 남양유업의 흑역사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흑역사는 지난 2013년 남양유업 본사 직원이 대리점 직원에게 폭언하며 갑질을 일삼은 사실이 언론을 통해 드러나 불매운동이 일면서 시작됐다. 외조카 황하나를 둘러싼 불미스런 사건도 세간의 화제가 됐다. 지난해는 홍 회장이 업계 경쟁사를 비방하는 글을 온라인에 올렸다가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여기에 더해 올해 ‘불가리스 사태’는 홍 회장의 퇴진 여론으로까지 비화됐다. 남양유업은 지난 4월 개최한 포럼에서 자사 요구르트 제품 불가리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를 77.78%의 저감하는 효과가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가 과장광고 논란에 직면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 발표가 동물시험이나 임상시험 등을 거치지 않고 이뤄진데다 남양유업이 언론사 30곳에 '불가리스, 감기 인플루엔자(H1N1) 및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항바이러스 효과 확인 등'의 문구를 담은 홍보지를 배포한 것을 확인하고 경찰에 고발했다. 홍 회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 모든 것에 책임을 지고자 남양유업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 자식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며 눈물로 사임 의사를 밝혔었다.

홍 회장은 한앤코가 부도덕한 기업이며 매매 계약 당시 약정을 이행하지 않았으므로 매각을 파기했다고 밝혔다. 홍 회장은 지난 1일 입장문에서 “한앤코 측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계약 이행만을 강행하기 위해 비밀유지의무 사항들도 위배하고 홍 회장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 등을 통해 기본적인 신뢰 관계마저 무너뜨렸다”며 “특히 거래종결 전부터 인사에 개입하는 등 남양유업의 주인 행세를 하고 부당하게 경영에 간섭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경영권 매각 약속을 지키려는 저의 각오는 변함없이 매우 확고하다”면서 한앤코와의 법적 분쟁이 정리된 후 재매각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홍 회장이 매각가격에 대한 불만을 가졌을 것으로 보는 해석이 많다. 매도계약 당시 설정한 가격인 3107억 원은 남양유업의 서울 강남 본사 건물과 세종공장 등 주요 부동산의 순장부가액인 3693억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헐값이기 때문이다.

홍 회장이 매각 의사를 발표한 후 주가가 급등한 것도 계약파기를 부추긴 원인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남양유업 주식은 지난 5월 초 주당 36만원 대에 거래됐으나 홍 회장이 한앤코와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폭등하면서 두 달 후인 7월 1일에는 81만 원까지 뛰었다.

홍 회장은 한앤코에 가격 재협상 등 사항들을 선결조건으로 요구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앤코는 지난 1일 홍 회장 입장문을 반박하는 글에서 “본 계약 발표 후 홍 회장 측에서 가격 재협상 등 당사가 수용하기 곤란한 사항들을 ‘부탁’이라며 한 바가 있다”며 “그런데 8월 중순 이후에는 돌연 무리한 요구들을 거래종결의 ‘선결 조건’이라고 새롭게 내세우기 시작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노조, 소비자 등 성토 목소리 높아져…주가는 계속 하락

이런 가운데 불가리스 사태로 식약처에 고발당했던 남양유업 임직원들은 검찰에 송치됐다. 지난 2일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를 받는 남양유업의 이광범 전 대표이사와 박종수 항바이러스면역연구소장, 본부장급 직원 2명 등 4명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거듭 입장을 번복하는 홍 회장에 대해 회사 내외부에서도 성토하는 목소리는 거세다. 남양유업 노동조합은 지난달 26일 입장문에서 "회사를 위기에 빠트리고 대책도 마련하지 않으며 책임을 지지 않는 오너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남양유업 구성원 전체가 위기"라며 "회사 이미지와 가치는 바닥을 치는 것을 넘어 회생불가한 수준"이라고 반발했다. 이어 "회사를 개인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직원들을 한낱 도구로 생각하는 파렴치한 행태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한편 증권시장에서는 남양유업이 오너리스크를 해소할 기회를 다시 놓친 것으로 해석, 주가가 매각 해제 발표 후 3일 연속 약세를 보이고 있다. 남양유업의 주가는 이틀 만에 10.79% 하락한 후 3일에는 40만 원대까지 떨어졌다. 주식 관련 웹페이지나 커뮤니티 등에선 “경영진이 약속이나 도덕을 저버리고 눈 앞의 이익만 생각한다” “사퇴 기자회견의 눈물은 쇼였나 불매운동 재개해야” 등 누리꾼들의 야유가 쏟아지고 있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