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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객원기자 칼럼] 테이퍼링, 유동성 파티는 끝났다

  •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 (사진 AP=연합뉴스 제공)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잭슨홀 연설에서 연내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을 시작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언급했다. 그를 뒤이어 다수의 연준 의원들이 비슷한 톤으로 맞장구를 치면서 연내 테이퍼링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지난 10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테이퍼링 시점은 오는 11월이 유력하다고 한다. 현재 매월 국채 800억 달러, 모기지 채권 400억 달러어치를 사들이고 있는데 이를 각각 100억 달러, 50억 달러씩 줄이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한다고 한다.

그동안 연준은 물가보다는 고용에 중점을 두면서 실업률이 3.5%에 이르지 않으면 통화긴축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견지해왔다. 그러나 지난 8월 현재 실업률은 5.2%이며 비농업일자리는 23만 5000개로 예측치인 75만 개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기긴축을 언급함으로써 중대한 기조 변화를 보인 것이다.

연준이 긴축일정을 당긴 배경에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 지난달 미국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년 동월에 비해 8.3% 올라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올해 초 1.6%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변화가 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생산자물가지수 급등은 원자재가격 상승, 그리고 기업 공급망 병목 현상에 기인한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과 일부 자연재해가 맞물려 원자재 공급이 원활하지 않고 이것이 생산비용을 끌어올리는 것이 원인이다. 하지만 풀려 나온 유동성이 원자재 시장에 몰려들어 가격을 끌어올리는 투기적 요인도 적지 않다.

기업은 비용상승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기 때문에 생산자물가지수 급등은 소비자물가지수(CPI) 급등으로 이어진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5.3% 올라 몇 달째 5% 대 인상률을 이어가고 있다. 연준이 아무리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고 우기더라도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은 인플레이션은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은 유럽도 마찬가지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9일 열린 통화정책회의에서 팬데믹긴급매입프로그램(PEPP)의 채권 매입 속도를 올해 4분기부터 늦추기로 했다. 이것 역시 이례적이다. ECB는 그동안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2%로 올리면서까지 채권 매입량을 늘리겠다고 공언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달 유로존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로 목표치를 크게 넘어섰고 독일의 경우는 28년 만에 최고치인 3.9%에 이르렀다. 그동안 유로존이 고질적인 디플레이션 압력에 시달려왔음을 생각할 때 놀라운 변화인 것이다. 비록 라가르드 ECB 총재가 테이퍼링을 강력히 부인했음에도 이것은 명백한 테이퍼링 신호인 것이다.

미국 3분기 경제성장률은 5.8%로 추정되고 있는데 겉보기에는 괜찮지만 지난해의 큰 감소폭을 생각하면 충분히 회복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 노동시장 상황이 여의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통화당국이 긴축을 고려할 정도로 인플레 압력이 심각하다.

문제는 자산시장일 것이다. 낮은 금리와 풍부한 유동성 덕분에 자산시장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급등을 거듭했다. 올해 들어 50차례나 신고가를 경신하며 상승하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그저 그런 미국 기업의 실적을 감안할 때 유동성의 힘 때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주식시장 시가총액을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버핏지수’는 올해 1분기 기준 318%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바 있다. 대체로 경제성장률과 장기국채성장률은 비슷한 수치를 기록하는 경향이 있는데 미국 잠재성장률이 3.9%임을 감안할 때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은 1.3%로 너무 낮다. 채권가격이 너무 높은 것이다. 저점 대비 2배 가까이 상승한 부동산은 말할 것도 없다.

자산가격 상승은 ‘자산효과’를 일으킨다. 실제로 부자가 됐거나 또는 부유해졌다고 느낌으로써 씀씀이가 늘어나는 것이다. 소비가 국내총생산의 70%를 차지하는 미국의 경우 자산효과가 오늘날 경제를 이끌어가는 기관차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통화긴축은 유동성을 줄임으로써 자산가격 하락을 가져올 위험이 크다. 이에 따라 미국 실물경제도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큰 것이다. 연준의 테이퍼링은 미국 달러가치를 지키기 위해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미국의 테이퍼링은 우리에게 어떤 효과를 가져올까. 2013년 5월 당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테이퍼링을 언급하자 경제는 큰 충격에 빠졌고 신흥국에서 자금이 빠져나오면서 이들 시장의 주가와 통화가치가 폭락하는 ‘긴축발작’이 일어났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해외에 풀려나간 달러가 회수되면서 달러강세가 나타나고 신흥국 주가와 통화가치가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다만 한국은 4586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고와 기조적인 경상수지흑자 때문에 심각한 위기에 빠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러나 외국인은 지난달에 국내 상장주식 7조 8160억 원을 순매도하면서 넉 달 연속 그러한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경제가 수출호조를 보이고 회복추세임에도 지속적인 매도세를 취하고 있다면 테이퍼링에 따른 국내 자산가격 및 원화가치 하락에 대비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6일 기준금리를 인상한 데 이어 금융위원회는 대출규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 테이퍼링에 앞서 선제적인 통화긴축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시장금리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번 달 초 대형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2.80~4.30%로 상한이 4%를 돌파했다.

우리나라는 가계대출 잔액이 1800조 원을 넘을 만큼 규모도 크지만 대부분이 변동금리라는 것도 문제점이다. 지난 6월 기준으로 변동금리 대출비율은 72.7%에 이르며 은행의 신규가계 대출 중 변동금리대출 비중이 무려 81.5%에 이르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낮은 금리를 주어진 현상으로 받아들이며 도취된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한은 총재는 추가적인 금리인상을 예고하고 있고 한국금융연구원에서도 내년 상반기까지 기준금리가 1.25%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총량적인 경제호조에도 불구하고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을 위시한 내수는 매우 어렵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이자보상배율 100% 미만인 기업 비중은 34.5%로 늘어나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태도를 견지하기 어렵다. 오히려 선진국 테이퍼링과 우리나라 금리인상이 가져올 자산시장 하락과 부채 문제 노출에 대비하는 것이 긴급하고도 중요하다. 바야흐로 유동성 파티는 끝나고 자산시장의 겨울이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끊임없이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야 할 것이다.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

●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정책연구담당(상무보) ▲KT그룹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정책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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