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 칼럼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26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주재로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ESG 인프라 확충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투자는 ESG 경영을 잘 하는 기업들에 투자함으로써 높은 투자 수익률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그 출발점은 기업의 ESG 성과에 대한 정확한 평가다. 즉, 누가 어떤 분야에서 잘하는지 또는 못하는지 알아야 해당 기업에 대한 투자 여부를 결정할 수 있고, 또 그 기업의 ESG 활동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engagement)할 수 있다.

기업들은 자신들의 ESG 성과를 주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형태로 공개하고 있다. 그런데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에 초점을 맞춰서 작성되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해당 기업의 ESG 성과가 수익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보고서에 많은 지속가능성 이슈들이 제시돼 있긴 하지만 이들의 재무적 중요성은 제대로 언급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국제통합보고위원회(IIRC)는 2013년에 재무 및 비재무 정보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취지의 통합보고(IR) 프레임워크를 제시했다. 통합 보고서는 ‘재무및 비재무 정보를 통합적으로 제공함으로써 기업전략, 지배구조, 비즈니스 모델, 기회 및 위협 요인 등이 어떻게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최근 통합 보고서를 발간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데, 현재 70개국 2500개가 넘는 기업이 통합 보고를 하고 있다. 투자자들, 특히 장기 투자자들은 기업들의 통합 보고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편 ESG 성과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할지 기준을 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공통 표준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고 대부분 기업들은 글로벌보고이니셔티브(GRI)가 제시한 표준을 따르고 있다.

최근에는 지속가능성 회계기준위원회(SASB)와 기후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TCFD)의 보고 기준이 투자자 관점에서 유용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이 기준들을 함께 반영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이처럼 현재로서는 강제력이 없는 다양한 표준들이 제시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공통적인 기준을 가지고 기업들을 평가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다행히도 여러 기관들이 공통 표준 제정에 나서고 있다. 우선 ESG 정보 공개 표준을 정하는 5개 기관(GRI, SASB, IIRC, CDSB, CDP)은 지난해 9월 공통 표준 제정에 합의했고 지난해 말에 보고서 초안을 공개했다.

글로벌 회계기준을 제정하고 관리하는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의 움직임 또한 주목할 만하다. IFRS 재단은 글로벌 기준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이를 추진하기 위해 국제 지속가능성 기준위원회(ISSB)를 설립할 계획을 밝혔다.

이 계획은 많은 기관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예컨대 SASB도 ISSB 설립을 지지하면서 글로벌 표준 제정을 위해 이미 공통 표준 제정 작업을 하고 있는 5개 기관과 협력할 것을 제안했다. 앞으로 이런 노력들이 구체적인 결실을 맺으면 ESG 정보의 품질이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현재 ESG 정보를 공개하고 있는 기업은 얼마나 되는가? 지난해 기준으로 전 세계 매출액 상위 250개 기업 중 96%, 52개국 상위 100개 기업씩 총 5200개 기업 중 80%가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발간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114개 기업만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발간했다.

한국이 글로벌 추세와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정보공개 의무화 여부 때문이다. 예컨대 유럽연합(EU)은 2018년부터 비재무보고 지침(NFRD)을 시행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종업원 500명 이상 상장 기업 1만 1000여 개가 지속가능경영 관련 공시를 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NFRD를 개정한 기업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을 발표했는데, 2024년부터는 공개 대상 기업이 거의 5만 개로 확대되고 공개 내용도 강화될 예정이다.

그에 비해 한국은 아직 보고서 발간이 의무화돼 있지 않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1월에 ‘기업공시제도 종합 개선방안’을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2025년부터는 일정 규모 이상 한국거래소 상장기업에 대해 ESG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고 2030년에는 모든 한국거래소 상장사를 대상으로 공개를 의무화할 예정이다.

ESG 정보는 투자자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인데, 이처럼 ‘깜깜이’ 상황을 만들어놓고 과연 ESG 투자가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활성화되기를 기대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물론 어쩌면 기업들 부담을 감안해 의무화 시점을 멀찌감치 뒤로 잡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상장기업에게 정보 공개 의무는 완화해줄 성격의 부담이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업들이 공식적인 자료를 공개해주면 개별 ESG 평가기관들로부터 몰려오는 자료 요청에 더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 부담이 도리어 줄어들 것이다. 각설하고, 2030년은 늦어도 너무 늦다.

ESG 성과 보고 체계가 갖춰지면 평가기관들은 이를 활용해 기업별로 ESG 등급을 매긴다. 그러나 ESG 정보가 표준화, 신뢰도, 정량화 등에서 한계를 안고 있다 보니 ESG 평가기관들은 제각기 서로 다른 고유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고, 따라서 같은 기업의 ESG 등급이 평가기관마다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 예로 823개 기업에 대해 5개 평가기관이 부여한 ESG 평가 점수를 사용해 두 평가 기관 간의 평가 점수 상관계수를 비교한 연구에 따르면 상관계수는 0.42~0.73 범위 값을 가졌고 평균도 0.61에 불과했다.

이처럼 평가기관에 따라 ESG 등급이 워낙 편차가 크기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이 자료를 근거로 투자 의사결정을 하기 어렵다. 그리고 평가를 받는 기업 입장에서도 ESG 성과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이처럼 평가결과가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평가항목, 평가방법, 가중치에서의 차이 때문이다. 이렇게 어떤 항목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 차이가 크다는 결과를 놓고 보면 ESG 자료가 많다는 것이 반드시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실제로 최근 한 연구는 일반적인 믿음과는 달리 ESG 정보를 많이 공개할수록 도리어 ESG 평가기관 간 더 큰 편차가 나타남을 확인했다. 이는 많은 정보를 제공하면 평가항목과 방법의 차이를 더 크게 벌릴 뿐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많은 정보보다는 공통적으로 중요한 정보를 추려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설사 세월이 지나 정보의 양과 질이 좋아지더라도 ESG 평가등급은 신용등급보다는 평가기관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 신용등급은 재무성과(value) 하나만을 보니까 사람마다 보는 시각이 비슷하지만 ESG 등급은 다양한 사회적 가치(values)를 반영하기 때문에 평가기관마다 중요하게 보는 기준이 다른 것이 당연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바람직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결과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ESG 평가기관의 투명성 제고, 독립성 확보는 반드시 필요하다.

조신 연세대 교수

● 조신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 프로필

대통령 비서실 미래전략수석, SK브로드밴드 대표, 산업통상자원 R&D전략기획단 MD,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역임했다. 파리협정(2015) 체결 시 정책결정에 참여한 인연을 계기로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기업 지배구조 관련 연구도 계속하고 있다. 저서로는 <넥스트 자본주의, ESG> 등이 있다.



조신 연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