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3대 완성차기업 위한 맞춤형 세제지원…현대차·기아도 불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5일(현지시각) 2030년 신차 친환경화 비율 50% 달성을 골자로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등 미국은 자국 내 완전한 산업 기반을 구축해 친환경차 경쟁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표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미국이 거대 노동조합을 갖춘 미국 3대 완성차기업을 위한 맞춤형 전기차 세제지원 방안을 마련 중이다. 이에 도요타 등 일본 완성차기업들을 비롯해 노조가 없는 테슬라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 민주당은 자동차 조립공장 노조가 있는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크라이슬러 모회사 스탤란티스가 생산한 전기차에 추가 세액 공제 혜택을 주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미국 민주당이 주도하는 하원 세입위원회의 세제·지출법안에 포함된 이 전기차 지원방안은 미국 현지에서 생산된 전기차를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최대 1만 2500달러 세액 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어 글로벌 완성차업계에 형평성 논란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공장에 노조가 아닌 노사협의회만 둔 현대차와 기아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비싼 하이브리드차가 주력인 日 도요타, 혼다 강력 반발

이 법안은 모든 전기차 구매자에게 기본 공제 7500달러 혜택을 부여하고 더 나아가 미국에서 제조된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는 500달러 공제를 더 얹어주는 방식이다. 특히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민주당은 노조가 결성된 미국 공장에서 만들어진 전기차에 4500달러 공제 혜택을 추가로 부여키로 했다. 이는 누가 봐도 전미자동차노조(UAW) 조직을 갖춘 GM과 포드, 스탤란티스 등 미국 3대 완성차기업에게 전적으로 유리한 내용이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 기아 등의 한국기업들은 당장 대응하고 있지 않지만 법안이 통과되면 피해를 입을 수 있어 예의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번 법안은 미국 완성차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법안이 통과되면 해외 완성차기업들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이미 일본 완성차기업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도요타와 혼다는 즉각 성명을 내고 “미국 하원의 법안 추진은 노조가 없는 미국 자동차 근로자에 대한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전기차 시장 진출이 다소 느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던 일본 완성차업계가 본격적인 전기차 경쟁에 뛰어들려는 시점이라 일본기업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요타의 경우 2030년까지 차량용 배터리 분야에 약 16조 원을 쏟아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도요타는 지난 7일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첫 전기차를 선보이며 “전고체 배터리에 대한 특성을 고려해 하이브리드 차량부터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도요타는 또 2030년 세계 시장에서 하이브리드차를 포함한 전기차를 800만 대 판매하고 그 중 200만 대를 전기차와 연료전지차(FCV)로 채우겠다는 새로운 전기차 마케팅 전략을 지난 5월 공개한 바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주력 하이브리드차는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이번 미국 3대 완성차기업을 위한 맞춤형 전기차 세제지원 방안에 일본의 거부감이 유독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직 공식적인 대응은 하고 있지 않지만 현대자동차그룹 등 한국 완성차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전기차 시장 패권 다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미 전기차 시대에 돌입하면서 주요 국가들의 자국 기업 보호 바람이 불고 있었다.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과 유럽연합도 자국 기업에 유리한 규제와 보조금 카드를 꺼내들고 있었던 상황이다.

LG·SK 등 韓 배터리업계, 수혜 대상 될까?

한국 배터리기업들 입장에서는 이번 미국 3대 완성차기업을 위한 맞춤형 전기차 세제지원 방안이 호재일 수 있다. 이 법안에 미국에서 제조된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는 500달러 공제를 더 얹어주는 내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에 위치한 배터리기업은 한국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일본기업인 파나소닉, 중국기업인 AESC 등이다. 이 중 LG에너지솔루션은 GM과 합작사 ‘얼티엄셀즈’를 설립하고 내년 1월 가동을 목표로 오하이오에 35GWh 규모 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SK이노베이션도 포드와 ‘블루오벌SK’를 설립해 2025년까지 60GWh 배터리 공장을 설립할 계획이다. 이번 법안이 통과될 경우 한국 배터리기업들이 수혜 대상으로 거론되는 이유다.

배터리업계의 한 관계자는 “배터리 시장에서 한국기업들과 숙명의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일본과 중국의 기업들은 미국 3대 완성차기업에 배터리를 납품하고 있지 않는다”면서 “물론 한국기업 합작사인 얼티엄셀즈와 블루오벌SK의 전미자동차노조 가입 여부가 변수일 수 있지만 현 상황에서 선택지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다만 한국 배터리기업들 역시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유럽 등의 완성차기업들에게 배터리를 공급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현 상황에 신중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중국 중심으로 흘러가던 전기차 배터리 수요가 올해를 기점으로 미국과 유럽 등으로 본격 확대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전기차 수요는 지난해 310만 대에서 2030년 5180만 대로 17배, 전기차 배터리 수요도 139GWh에서 3254GWh로 23배 급증할 전망이다.

하지만 각국의 자국 우선주의는 전기차 시장의 성장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 중국의 경우 이미 수년째 자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만 추가적인 보조금과 세금 혜택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외국 기업들을 차별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연합(EU) 국가들도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유럽산 전기차들에 보조금이 적용되는 방식을 택했다. 이 흐름에 영향을 받아 미국이 또 다른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 법안을 준비 중인 것이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세계 각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특별히 대응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심지어 내년 전기 승용차의 대당 국고보조금은 올해 700만 원보다 100만 원 줄어든 600만 원으로 책정됐고 전기차용 충전기 보급 사업의 경우도 완속과 초급속 충전기는 늘리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급속 충전기는 보급 목표를 1500기에서 300기로 5배 줄이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