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원 벌려다 300만원 벌금’… 불법 범죄 가담자로 처벌받기도

서울의 한 주택가에 붙은 카드대출 안내 스티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장서윤 기자]청년들을 울리는 소액 불법 대출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계속되면서 가계대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자 정부가 가계부채 관리대책 에 나선 가운데 소액 불법 대출 업자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주로 청년층을 대상으로 적게는 수만 원에서 수백만 원대의 소액 불법 대출을 알선하는 범죄는 돈을 빌린 사람이 살인적인 이자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물론 잠재적 범죄자가 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소액을 벌려다 자칫 빚과 범죄의 수렁으로 빠져들 수 있는 법의 사각지대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액 불법 대출은 이른바 ‘내구제 대출’이라는 형태로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내구제 대출은 ‘나를 구제하는 대출’의 줄임말이다. 대출을 원하는 사람이 신용카드, 휴대전화, 노트북, 자동차 등을 할부로 사 대부업자에게 넘기면 대부업자가 물건을 팔아 수수료를 챙기고 판매 금액의 일정 부분을 현금으로 돌려주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같은 대출의 실상을 알고 보면 사실상 연이자가 수천 %에 달하는 폭리이거나 돈을 빌리는 사람의 명의가 대포폰 개통 등에 사용되는 등 의도치 않게 범죄에 가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선불 유심 개통, 렌털 가전 구매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지난 4일 내구제 대출과 관련된 최근 2년간 판결문 40건을 분석해 발표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내구제 대출은 소액 자금이 필요한 사람이 선불 유심(USIM), 휴대전화 등을 본인 명의로 개통하거나, 가전제품을 렌탈해 업자에게 제공하고 건당 정해진 금액을 수취하는 형식이 가장 많았다. 이렇게 개통된 유심 등은 범죄에 사용되고, 렌탈된 가전제품은 판매용으로 둔갑해 팔린다.

선불유심의 경우 건당 2만 원에서 3만 원을 받고, 가전제품의 경우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30만 원에서 100만 원 가량을 받게 된다. 업자는 선불유심의 경우 15만 원 가량에 다른 업자에게 되팔고, 가전제품은 렌탈 제품임을 속이고 인터넷 등을 통해 시세보다 저렴하게 재판매해 이익을 취하는 방식이다. 내구제 대출은 선불 유심뿐 아니라 휴대전화o가구 등에 이르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 문제는 업자뿐 아니라 대출을 받은 사람도 처벌 대상이 된다. 앞서 언급한 40건의 판결 중 18건이 대출자에 대한 판결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13건이 선불유심을 제공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는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에 해당한다. 이들에 대한 가장 가벼운 처벌도 벌금 300만 원에 달했다. 소액 자금을 마련하려다가 수백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하는 셈이다.

또 다른 사례로 대부업자들이 휴대전화를 개통하고 기기를 넘기면 일부를 현금으로 주겠다는 방식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휴대전화를 개통하고 업자에게 기기를 주면 한 기기당 수십만 원을 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수백만 원에 달하는 단말기 할부금과 통신요금 등을 모두 대출자에게 부담시켜 소액을 벌려다 10배가 넘는 금액을 떠안게 되는 경우도 있다.

취약한 청년층이 피해자…20대 이하 범행 5년간 10배 증가

내구제 대출은 주로 청년들이 받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5년간 20대 이하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범행 건수는 10배 가량 늘었다. 지난해 말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이 적발된 사건 중 30세 이하 사건은 2350건으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많았다. 이는 5년 전(237건)과 비교해 10배 가량 증가한 수치다.

청년 경제문제 해결을 위해 설립된 광주청년드림은행에 따르면 2020년 전체 내담자 377명 중 34명이 내구제 대출 피해자였는데 이중 경찰에 신고한 경우는 2명에 불과하다. 공범으로 낙인 찍힐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또 장 의원이 분석한 내구제 대출자 판결문 18건 중 사선 변호인을 선임한 사건이 1건에 불과했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내구제 대출이 취약계층을 상대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소액 자금 조달조차 어려운 청년이나 취약계층이 내구제 대출의 덫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는 내구제 대출이 ‘대출’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유심과 같은 실물 거래를 수반하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대부업법 등으로 처벌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법원에 따르면 이들 사건 대부분은 사기나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에 해당한다. 그러다 보니 금융감독원 불법 사금융이나 불법 금융 광고 신고과정에서도 관련 통계를 확인하기 어렵다. 내구제 대출은 점점 늘고 있는데 정작 실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정확한 파악이 잘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장 의원은 “당장 관련 통계를 취합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소액 자금이 필요한 취약계층에게 충분한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특히 정부는 2년 전 청년 희망 사다리 강화방안을 내놓고 청년 햇살론을 출시하기도 했는데 어째서 내구제 대출 등이 횡행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장서윤 기자 ciel@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