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범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정부는 올해 4월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내놓은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지난 26일 또 다시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4월 조치에도 불구하고 전세 대출과 제2금융권 대출이 급증했던 것이다. 장마에 물이 불듯이 웬만한 엄포로는 통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그만큼 정부는 상황을 엄중히 보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정책 내용을 요약하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낮춤으로써 담보가 아니라 상환능력에 따라 대출을 허용하도록 하고 원리금 분할상환을 유도하며 제2금융권 대출규제를 강화해 풍선효과를 막겠다는 것이다.

총량에 대한 규제도 시행하는데, 정부는 내년도 가계부채 증가율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 근접한 4∼5% 대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4월에 정한 4%보다 실질적으로 1% 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금액으로는 16조 원에 해당한다. 그러나 실수요자에 대한 보호를 명분으로 전세대출은 총량 규제에서 제외했다.

우리나라 가계부채 폭증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하도 오랫동안 듣다 보니 사람들은 또 그 얘기냐는 식으로 둔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2008년 1분기 GDP 대비 69.2%이던 가계부채 비율은 올해 1분기 104.7%까지 높아져 물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더구나 무이자 대출이라고 볼 수 있는 전월세 보증금까지 포함하면 그 비율은 150%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실질적으로는 가계부채의 세계 챔피언인 것이다.

이러한 가계부채의 상당부분이 부동산 투자와 관련 깊다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하다. 주택가격이 상승하면서 가계부채 증가속도는 가속도가 붙고 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막대한 유동성이 풀리면서 그러한 추세가 급격해졌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대출금은 2015년 10.4%, 2016년에는 10.7%로 빠르게 늘어나다가 이후 8% 이하로 증가세가 낮아졌으나 지난해 다시 10.2% 급증했다. 지난해부터 집값 상승이 가팔라졌으므로 가계부채와 부동산가격 상승의 연관관계는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투자의 상당부분이 무리하게 이뤄진다는 것이다. 우선 소득은 크게 늘지 않는데 부채가 빠르게 는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200.7%로 전년 대비 12.5% 포인트 상승했다. 소득 증가의 상당부분이 코로나19로 인한 재난지원금 등 이전소득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또 이러한 부채 증가가 취약계층에 쏠려 있다는 것도 근심거리다. 지난해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1분위 계층의 처분가능 소득은 1009만 원으로 전년 대비 5.3% 늘었으나 금융부채는 1182만 원으로 19.9%나 늘어났다.

올해 2분기 전체 가계부채에서 청년층이 차지하는 비중도 26.9%에 달하며, 지난해 4분기 주택담보 대출 증가율은 20대 27.0%, 30대 9.6%로 전체 증가율 3.7%를 크게 초과하고 있다. 집값 상승에 초초해진 이들 2030세대가 대출을 일으켜 부동산 붐의 막차에 올라탔다는 것을 데이터가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강화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오히려 만시지탄의 느낌마저 있다. 2016년 이래 불이 붙은 부동산 붐은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에 기인한 바 컸다. 은행 입장에서는 수익창출이 되는 대출 증가에 망설일 이유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의 완화적 금융규제가 가계부채 증가의 수문을 터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이제 와서 수문을 닫으려고 하나 수압이 너무 높아져 댐 자체에 금이 갈 지경에 이르렀다.

이번 정부 조치의 방향은 기본적으로 옳지만 몇 가지 지적할 점이 없지 않다. 우선 전세 대출을 차주단위 DSR 규제에서 배제한 점이다. 이는 주택 실수요자가 전세대출을 일으킨다는 전제에서 결정된 조치지만 이렇게 조달된 자금이 주택투기에 사용되는 경우는 너무나 흔하다. 최근 대출 증가의 상당부분이 전세대출이라는 점이 그것을 방증한다.

정부는 은행을 압박함으로써 전세대출 한도를 임차보증금 증액 범위 내로 제한하고, 대출 신청도 잔금 지급일 이전까지만 가능하도록 한다는 양보를 얻어냈다. 그러나 다른 부문의 대출이 막힌 은행이 과연 그것을 적극적으로 집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따라서 전세대출에 대한 통제를 은행자율에 맡기지 말고 정부가 공식적인 틀에서 규제하는 것이 가계부채 및 부동산 투기 억제에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또 제2금융권에 대한 DSR 규제를 은행보다 약하게 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현재 60%인 제2금융권 DSR 규제는 50%로 낮아지지만 여전히 은행의 40%보다 높다. 따라서 자금이 절실하게 필요하나 상환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제2금융권으로 몰리며 높은 금리를 부담할 것이 뻔하다. 이는 부채의 질을 오히려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정부가 실수요자 보호를 강조하면서도 코로나19 타격을 집중적으로 받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 대한 대처를 빠뜨린 점도 우려된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은 831조 8000억 원으로 지난 1년 동안 18.8% 늘어났다. 더욱이 원리금 상환조치에 의지해 연명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내년 3월에는 이조차 중단된다고 한다. 이들에 대한 구제조치가 어떠한 형태로든 들어갔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러한 기술적인 문제를 떠나 보다 근본적으로 성장률에 집착하는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을 금할 수 없다. 가계부채 증가와 부동산 투기 붐은 애초부터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 그리고 느슨한 금융 및 부동산 규제에 기인한 바 컸다. 그 배경에는 정부가 완화적인 금융·부동산 정책을 사용해 부채를 일으키고, 이를 통해 주택건설 붐을 유도함으로써 경기를 부양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수치상으로 나타나는 성장의 과실이 과연 국민 다수에게 골고루 돌아갔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집 없는 서러움과 무거운 가계부채를 불러온 원인이 됐고 불필요하게 과다한 주택을 공급함으로써 후일 후유증을 가져올 위험을 높이고 있다. 오늘날 가계부채의 근본적인 배경에는 성장위주 정책기조가 있었음을 반성하고 과감한 정책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인호 객원기자

●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정책연구담당(상무보) ▲KT그룹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정책 전문가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