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반도체·배터리업계, 새로운 국면에 당황

지난 1일 부산항 신선대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올해 1~10월 한국 누적 수출이 역대 최단기에 5000억 달러를 돌파하며 지난해 연간 기록을 넘어섰다. 산업통상자원부 통계 자료에 따르면 특히 지난달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4.0% 증가한 555억 5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월 수출액으로 역시 반도체와 이차전지(배터리)가 수출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다만 지난달 D램 가격이 10% 가까이 하락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의 수익성에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다. 이른바 ‘반도체의 겨울’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삼원계 배터리에 주력하던 배터리 기업들도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가격이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전기차에 새로 탑재하거나 적용을 확대하려는 완성차 기업들이 늘고 있어서다.

D램 가격 하락…‘피크 아웃’에 대비하는 반도체업계

여전히 반도체가 한국 수출을 이끌고 있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은 111억 7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8.8% 증가하며 전체 수출을 떠받쳤다. 역대 10월 중 두 번째로 큰 규모로 10월 누계 연간 실적은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그럼에도 D램 가격이 하락 국면에 진입하면서 전 세계 D램 시장 점유율 1, 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의 실적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31일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달 PC용 D램 범용제품 고정거래가격의 평균값은 3.71달러로 전월(4.10달러)보다 무려 9.51% 하락했다. 2019년 7월11.18%가 하락한 이후 최대 낙폭이다.

고정거래가격은 반도체 기업이 대형 컴퓨터 기업에 대량 납품할 때 적용되는 고정된 가격을 말한다. 올해 내내 상승세를 타던 PC용 D램 가격이 하락한 것은 지난해 10월 8.95%가 하락한 이후 1년 만이다. 특히 지난달 D램 가격이 급락한 것은 공급망 병목 현상에 따른 수급 차질을 우려한 PC 기업들이 물량을 미리 확보해 재고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반도체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반도체업계와 증권가에서는 D램 가격이 올해 4분기부터 하락할 것이라는 관측이 꾸준히 나왔다”며 “물론 D램 가격 하락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업계는 수익성 확보를 위한 원가 절감 등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향후 메모리 시황 변동에 유연하게 대응키 위해 반도체 재고 수준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시장 불확실성이 높아진 만큼 재고를 줄이고 업황 변화에 대응해 제품 포트폴리오는 빠르게 재구성하겠다는 전략이다. 또 원가를 줄여 수익성을 키우려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일단 삼성전자는 연결기준으로 매출 73조 원, 영업이익 15조 8000억 원의 올해 3분기 잠정 실적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9.0%, 영업이익은 27.9% 증가했다. SK하이닉스도 올해 3분기에 창사 이래 분기 기준 최대 매출을 달성하고 2018년 4분기 이후 2년 반 만에 4조 원대 분기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처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3분기 실적에는 문제가 없지만 4분기 D램 시황의 ‘피크 아웃’(peak out, 경기가 정점을 찍고 하강)에 대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불확실성에 대응해 반도체 원가 경쟁력을 더 높인다는 방침이다. SK하이닉스 역시 당분간 D램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다고 진단해 수익성 중심의 경영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테슬라 이어 벤츠도 LFP 배터리 채택…‘K-배터리’ 3사 당혹

반도체만큼은 아니더라도 신성장 품목으로 주목받고 있는 배터리 수출 역시 주요국의 환경규제 강화, 충전 인프라 등의 여건이 갖춰지고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이 세계적으로 확대되면서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미국 수출의 높은 성장세를 바탕으로 지난달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4% 증가하며 6억 9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전기차 대중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먼저 LG에너지솔루션의 올해 3분기 매출액은 전년보다 28% 늘어난 4조 274억 원이다. 삼성과 SK의 배터리 사업을 합친 것보다 규모가 크다.

삼성SDI의 배터리 사업을 포함하는 ‘에너지 및 기타’ 사업 매출액은 2조 7409억 원이고 SK이노베이션에서 자회사로 분리한 SK온의 경우 중국 신규 공장 가동 효과로 매출액이 전년보다 68%나 증가한 8168억 원을 기록했다.

이렇게 잘 나가는 국내 배터리 3사는 LFP 배터리로 인한 고민에 빠졌다. 일단 테슬라가 3분기 투자 설명 자료에서 표준 범위의 주행거리 모델에 사용하는 배터리를 기존 삼원계 배터리에서 LFP 배터리로 교체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메르세데스 벤츠가 엔트리급 모델에 사용되는 배터리를 저렴한 LFP 배터리로 교체할 방침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벤츠 ‘EQA’와 ‘EQB’ 등에 2024∼2025년부터 LFP 배터리를 탑재할 것으로 보인다.

LFP 배터리는 국내 배터리 3사가 주력하는 삼원계 배터리보다 주행거리가 짧은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니켈·코발트 등 상대적으로 고가인 금속이 필요하지 않아 비용이 저렴하고 열 안정성 면에서 유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컨설팅업체 로스킬에 따르면 LFP 배터리는 세계 최대 배터리 제조기업인 중국 CATL과 BYD 등이 생산 중이며 실제로 전체 생산량의 95% 정도가 중국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배터리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대다수 자동차 기업들은 주행 성능을 높일 수 있는 NCM(니켈·코발트·망간) 등 삼원계 배터리에 의지하고 있다”면서도 “최근 니켈과 코발트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고 니켈의 화재 위험성 문제 등으로 인해 LFP 배터리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에 국내 배터리 3사의 대응이 엇갈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향후 LFP 배터리가 대세로 자리를 잡을지 여전히 의문인 상황에서 코발트를 줄인 하이니켈 배터리 공급이 본격화되면 삼원계 배터리도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단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LFP 배터리 개발에 착수했고 삼성SDI는 코발트 프리(Free) 배터리를 개발하는 등 배터리 원가를 낮추는 다른 방안을 검토 중이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