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까지 요소수 ‘긴급수급조정조치’ 시행…물류대란은 피해갈 듯

정부가 지난 11일 군으로부터 확보한 요소수를 무역항을 오가는 화물 차량에 공급키로 한 가운데 전남 광양시 광양항 인근의 한 주유소에서 요소수를 판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정부가 지난 11일 품귀 현상을 겪는 요소수를 올해 연말까지 주유소에서만 구매할 수 있도록 ‘긴급수급조정조치’를 시행키로 했다. 지난해 마스크 대란 때와 유사한 형태의 수급제한 조치로 화물차는 30리터, 승용차는 10리터만 구매할 수 있다. 요소수를 재판매하는 것도 금지된다. 다만 건설 현장과 대형운수업체 등과 직접 공급계약을 맺어 판매하는 경우는 예외다.

긍정적인 소식도 있다. 호주에서 긴급 공수한 요소수 2만 7000리터(약 27톤)가 지난 11일 국내에 반입됐다. 또 같은 날 군에서 비축하고 있던 요소수 445톤 중 약 47%에 해당하는 210톤이 한시적 대여 방식으로 민간에 순차적으로 풀렸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과 계약한 요소 1만 8700톤(요소수 석 달 치 정도 물량)도 곧 국내로 들어온다.

청와대 경제수석 교체…요소수 사태 문책성?

요소수 사태는 일단 중국 정부의 긴급한 행보에 기인한다. 극심한 전력난에 직면한 중국 정부가 지난달 15일 ‘요소 수출 검사’를 의무화하고 사실상 수출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다만 같은 달 11일 중국 정부가 이 검사를 예고한 상태였고 한국 정부는 늦어도 수출 검사가 시행됐을 때 국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검토에 들어갔어야 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또 출입 화물과 택배 화물 관련 기업들이 가입해 있는 한국통합물류협회는 최근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에 낸 의견서에서 “요소수 품귀가 지속돼 11월 예정된 화물연대의 운송거부와 맞물리면 역대 최악의 물류대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화물연대가 파업에 돌입하면 조합원들의 참여율에 따라 물류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한국 전체 물류에서 화물차 운송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기준 92.6%에 달한다. 특히 컨테이너 차량의 화물연대 비중이 높아 수출입 기업들의 어려움이 예상된다.

충분히 예견된 사태였음에도 정부의 늦장 대응은 결국 청와대까지 불똥이 튀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일 새 청와대 경제수석에 박원주 전 특허청장을 내정했다. 임기를 얼마 남기지 않고 청와대의 경제수장을 교체한 것은 이례적이다. 청와대는 이번 인사가 안일환 전 경제수석이 사의를 밝힌 데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안 전 수석이 청와대 내 ‘요소수 대응 태스크포스(TF)’ 팀장이었다는 점을 들어 요소수 관련 대응 미흡에 따른 문책성 교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측은 전임 안 수석이 건강상의 이유로 이미 추석 전에 사의를 표했다는 입장이다. 당초 국정감사 이후 사의를 수용하려다 최근 요소수 사태가 터지면서 정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결국 사표를 수리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요소수 사태뿐만 아니라 최근 반도체 등 글로벌 공급망 문제가 주요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산업부 출신인 박 수석이 발탁됐을 가능성이 높다.

“주유소 가도 요소수가 없다”…현장에는 혼란만 가중

그나마 지난 11일 호주에서 긴급 공수한 요소수가 국내에 반입됐고 군 비축분 요소수도 민간에 풀렸다. 게다가 중국 세관에 묶여 있던 요소도 곧 국내에 반입될 것으로 보여 일단 요소수 수급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물론 산업계에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화물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이 이미 중국과 계약했던 요소가 들어오게 된 것일 뿐 중국이 요소 수출 재개를 허용한 것이 아닌데다 수입선 다변화 조치도 아직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며 “약간의 시간을 벌었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정부의 긴급수급조정조치 시행으로 요소수 판매처로 지정된 주유소업계가 요소수를 구하지 못해 현장에서 혼란만 빚어지고 있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지난 11일 오전 정부 발표 이후 요소수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주유소로 몰려들고 있는데 주유소에 요소수가 부족해 항의하는 사태가 이어졌다. 또한 분통이 터진 소비자가 요소수를 구비하지 못한 주유소를 매점매석 의심업소로 신고하는 등 상당한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한국주유소협회는 지난 11일 보도자료를 통해 “긴급수급조정조치로 주유소를 요소수 판매처로 일원화한다는 이야기를 당일에 처음 들었다”며 “정작 주유소가 판매할 요소수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소비자가 어느 주유소를 가더라도 요소수를 살 수 있도록 정부가 판매물량 조절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주에서 긴급 공수한 요소수 2만 7000리터가 지난 11일 국내에 반입됐다. 전날 현지로 급파된 공군의 다목적 공중급유 수송기인 ‘시그너스’(KC-330)가 이날 오후 5시 25분께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민관 합작으로 호주 요소수 계약 성사

당장 요소수 수급에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된 것은 지난 11일 호주에서 긴급 공수한 요소수 2만 7000리터 덕분이다. 호주에서 반입한 이 요소수는 현대글로비스 호주법인이 2019년부터 거래하던 호주 최대 요소수 생산기업을 통해 조달한 것이다.

산업부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중국발 요소수 품귀 사태가 벌어진 직후인 지난 3일 해외에서 요소·요소수를 수소문하고 나섰다. 그 과정에서 현대글로비스 호주법인이 호주 요소수 생산기업과 거래 관계인 것을 파악하고 ‘민관 합작’으로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 요소수는 모두 차량용이며 구급차에 우선 공급된다. 물류, 수송 등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분야에도 투입된다.

산업부에 따르면 이번 긴급 공급으로 구급차 운행은 최소 향후 2개월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에 공수된 요소수 물량이 많지 않은 데다 수송에 사용된 공군의 다목적 공중급유 수송기인 ‘시그너스’(KC-330)의 호주 왕복 항공유가 시세 기준 1억 원대에 달해 ‘비효율 논란’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11일 정례브리핑에서 “비효율적이라는 데는 동의를 할 수 없는 입장”이라면서 “국가재난 시 군 수송기를 투입하는 것이 가능하고 교통·물류대란이 우려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 군은 군 수송기 투입을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경제적 가치로 국가 재난 상황을 평가하는 것에 우려를 표한 것이다.

같은 날 민간에 풀리는 군 비축분도 순차적으로 절차를 밟고 있다. 이 비축분은 부산·인천·광양·평택·울산 등 전국 5개 주요 항만 인근 32개 주유소에 공급해 수출입 컨테이너 화물차 등이 사용하게 된다. 국방부는 향후 사태가 진정되면 계약 기업으로부터 현물로 돌려받을 계획이다.

당장 숨통은 트였지만…중국 수출제한 조치는 여전히 유지

정부가 긴급수급조정조치를 시행하면서 연말까지는 요소·요소수 수급난이 완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마스크 대란 때 이 조치가 처음 시행돼 공급 안정화에 기여한 만큼 이번에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 정부 측 설명이다.

지난해 약 4개월간 보건용 마스크와 손소독제 수출이 제한되고 생산량의 일정 비율을 공적 판매처에 공급하도록 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진 바 있다. 이 조치가 효과를 발휘하면서 마스크 품귀 현상 완화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번 중국발 요소수 사태의 경우 중국의 요소 수출 재개 등 근원적인 공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최근 “한국의 어려움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적극적 해결 의지를 청와대에 전한 바 있다. 또 싱 대사는 지난 11일 요소수 품귀 문제와 관련해 “한국의 어려움을 매우 중시하고 한국과 잘 협력해서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거듭 밝히기도 했다.

싱 대사는 이날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이재명 대선후보를 예방하고 “요소수 조정은 특정 국가를 겨냥한 것이 아니고 사실 우리 내부도 많이 부족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중국이 한국에 요소 수출을 일부 허용한 것은 중국 내 석탄과 요소 가격이 다소 안정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는 중국이 한국에 대한 정치·외교적 고려를 한 것으로도 해석되고 있다. 당초 중국은 미·중 갈등의 연장선에 있는 호주와의 외교 갈등으로 호주산 석탄을 수입 금지했고 이로 인한 전력난 여파가 요소수 수출 제한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한·중 간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장 요소수 품귀 현상이 완전히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면서 “중국이 이번에 수출 제한 조치를 한 것은 한·중 간 정치·외교적 이슈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닌 중국 내 수급 상황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중국의 미국과 호주와의 외교 갈등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중국에 집중돼 있는 요소수 의존도에 대해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등의 면밀한 정부 관리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무총리실에 따르면 실제로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요소의 국내 생산을 유도하고 요소수를 대체할 수 있는 촉매 개발도 추진할 계획이다.

환경부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요소 수입량은 83만 5000톤이었다. 이 중 농업용은 46만 5000톤(55.5%), 산업용은 29만 톤(34.7%), 자동차용은 8만 톤(9.8%)이었다. 예를 들어 한국 기업들이 중국과 계약한 요소 물량 1만 8700톤이 국내에 반입되면 국내 소요량의 최대 석 달치를 확보하는 셈이다.

요소수의 요소 함량은 약 30%로 국내 반입 1만 8700톤의 요소는 요소수 5만 6100톤을 생산할 수 있는 물량이다. 국내 자동차가 1개월간 사용하는 요소수 기준 2만 4000톤~2만 7000톤에 해당하는 물량이기 때문에 호주에서 긴급 공수한 요소수까지 감안하면 당장 물류대란 등 최악의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중국 정부가 꽤 오래 전부터 요소수 수급과 관련한 언급을 하고 있었다”며 “그렇지 않더라도 중국 석탄이 부족하면 중국으로부터 다량 수입되는 요소수가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도 계속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주 실장은 그럼에도 “이러한 유형의 수급 문제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해결이 될 수밖에 없고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물류대란, 산업중단 등의 최악의 상황으로 번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면서 “일단 요소수 부족으로 화물이 멈추지는 않을 것이고 요소수 가격이 조금 올라가는 정도로는 물가 영향도 크지 않다”고 전망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