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자담보대출을 주택 자금으로 활용…허위 사업자에 90%까지 대출

(사진=유투이미지 제공)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허위로 꾸민 사업자 지위를 악용해 대출을 받는 식의 편법 사금융이 주택시장에서 횡행하고 있다. 자영업자가 사업자금을 융통할 때 이용하던 ‘개인사업자 주택담보대출’(이하 사업자담보대출)이 실상 전세금 반환이나 주택 매매 자금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엄연히 불법이지만 가계 주택담보대출이 잠기면서 가뭄에 물을 구하듯 전세금 등 주택 자금 융통이 어려워진 주택 실수요자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제2~3금융권 회사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에 손쉽게 대출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이점을 누리고 있다.
주부가 사업자로 둔갑…사업자 대출로 전세금 낸다
최근 <주간한국>은 2금융권 금융기관인 A사의 일부 지점에서 전세금 반환 등 본래 용도 외 목적으로 사업자담보대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대출은 A사와 위탁 계약을 맺은 대출 상담사의 알선을 통해 이뤄진다. 보통 대출 상담사는 희망 고객을 찾아 대출 상품과 지점을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번 사례의 경우 직장인이나 주부 등을 개인사업자로 등록시키고 상담사와 연줄이 있는 지점에 연결해 사업자담보대출을 받게 도와준 것이다.
지역, 보유 주택 수 등 조건에 따라 주택담보비율(LTV)이 제한되는 가계 대출과 달리 사업자담보대출은 주택 가격의 9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점을 악용한 사례다. 이처럼 최근 지역 농협과 신협, 캐피털, 보험사나 대부업체 등 2~3금융권 일각에서 대출 상담사의 도움을 받아 고객들을 불법 사금융으로 이끄는 사례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1금융권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대출이 막힌 실수요자들을 타깃으로 편법적인 주택담보대출에 눈을 돌린 것이다.
네이버 부동산 카페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대출 문의 게시글마다 사업자담보대출을 소개하는 영업성 댓글이 치열하게 올라온다. 부동산 공인중개사가 고객에게 불법 대출 방법을 귀띔하거나 상담사를 소개시켜 주기도 한다. 사업자대출을 통해 주택 자금을 융통하는 편법은 이미 중개업계에서 흔한 방식이 됐다.
대출 상담사들은 금융회사와 대출자 양쪽으로부터 수당을 받는다. 금융회사는 성사된 대출 실적에 수수료를 내고, 대출자는 대출 심사를 넘길 수 있게 도와준 대가를 지불한다. 일반 직장인, 학생, 주부 등을 개인 사업자로 꾸며주고 수십만 원의 수수료를 받고 있는 것이다.
금융회사는 대출금의 실제 사용 목적을 확인하고 주택 목적이 적발되면 환수 조치할 수 있다. 이에 대비해 ‘페이퍼 컴퍼니’ 등 사업 용도를 입증할 수 있는 가짜 자료와 서류를 대출 상담사가 불법적으로 제공한다.
1금융권 가계 대출만 잡으면 장땡? 근시안적 금융정책 보완 필요
최근 시중은행이 본격적으로 대출 제한에 나서면서 이 같은 편법 대출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 가계부채 증가세를 멈추라는 금융당국의 요구에 따라 최근 은행들은 마이너스 통장을 포함해 신용대출 한도를 줄였다. 반면 전세값은 계속 오름세를 보여 현금이 부족한 세입자 등 실수요자 입장에선 이중고에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됐다.
현재 사업자담보대출을 받는 경우는 보통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반환할 때 자금으로 활용하거나 토지나 상가를 구입하는 경우다. 또 집을 팔고 부족한 자금을 편법 대출로 채워 이사를 가는 사례도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최근 가계대출 규제가 강화되고 내년 1월부터 총 대출 2억 원 이상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강화될 예정이라 사업자대출을 통해 대출총액을 늘리려는 틈새수요가 있다”면서 “대개 주담대보다 금리가 높고 추가금리 인상 움직임도 있는 만큼 금융권에서도 부실대출이 되지 않도록 사업자대출에 대한 여신관리가 필요해 보인다”고 진단했다.
한국은행이 지난 10일 발표한 ‘2021년 10월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가계대출 잔액은 1057조9000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 9월 가계대출 잔액보다 5조2000억 원 늘어났지만 증가폭은 전월 증가액인 6조4000억 원보다 8000억 원가량 감소했다. 한국은행은 최근 대출규제가 가계대출 증가세를 다소 경감시키는데 효과를 본 것으로 해석했다.
금융당국은 대출을 제한해 부동산 시장의 유동성을 차단하면 장기적으로 집값 하락 국면으로 전환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같은 기간 기업대출은 무려 10조3000억 원 급증하며 10월 증가액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중 2조6000억 원이 개인사업자대출 증가분이다.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이 확보한 4개 저축은행(상상인, 상상인플러스, 애큐온, 예가람)의 개인사업자 주택담보 대출 잔액은 지난 7월 말 기준 1조9107억 원에 달했다. 이는 2019년 말(5587억원)에 비해 3.4배가 늘어난 것이다.
특별한 경기 개선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자대출이 급증한 원인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앞선 사례처럼 가계대출 수요가 편법적 수단을 통해 사업자대출로 이동한 결과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3금융권의 불법 대출로 나타난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대출자 입장에선 신용등급 하락이 불가피한 데다 적발되면 대출금을 토해내야 한다. 또한 상환이 어려워질 경우 집이 경매에 넘어갈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1금융권에서 밀려 2금융~3금융권에서 융통하게 되면 같은 돈을 대출해도 이자 비용이 높기 때문에 이전보다 고위험 채무로 악화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사회 공익적으로도 부작용이 크다. 소상공인 대출자금이 고갈되기 때문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양질의 1금융권 대출이 막히면서 일종의 풍선효과로 실수요자들이 금융 사각지대로 밀려나고 있는데 이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라며 “가계대출 억제나 집값 안정을 위해 대출 규제는 필요하지만 대부업이나 불법 자금으로 빠지는 부작용을 방지하는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1금융권 규제가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는 유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불법 대출은 금융감독원 등 관계당국의 애매한 기준 때문에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 개인사업자 대출은 1억 원, 법인 대출은 5억 원 초과 시 시중은행에서 사용처 증빙을 하게 돼 있지만 제2금융권은 사후 관리가 비교적 느슨하기 때문이다.
당국은 용도 외 대출 유용에 대한 점검 준칙에 따라 금융권과 함께 점검하고 있지만 금융회사의 이상 접수 신고가 들어올 경우에만 조사에 착수하기 때문에 시장을 직접 조사하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신고가 들어오는 등 계기가 있을 경우 우회 대출 등 사례를 확인하지만 금감원이 먼저 은행에 불법 사례를 요구하는 식의 조사는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