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미국 테일러市에 신규 파운드리 라인 투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2일(현지시각)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를 만났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미국 출장 일정이 미국 신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라인 입지를 최종 선정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삼성전자가 미국 내 신규 파운드리 반도체 생산라인 건설 부지로 텍사스주 테일러시를 최종 선정한 것이다. 테일러시에 세워지는 신규 라인은 내년 상반기에 착공해 2024년 하반기 목표로 가동될 예정이다.

건설·설비 등 예상 투자 규모는 170억 달러(약 20조 원)에 달한다. 이는 삼성전자 미국 투자 중 역대 최대 규모다. 이번 신규 라인에는 첨단 파운드리 공정이 적용될 예정으로 5G, HPC(High Performance Computing, 고성능 컴퓨팅), 인공지능(AI) 등 다양한 분야의 첨단 시스템 반도체가 생산될 예정이다.

이재용, 입지 선정 앞서 백악관 핵심 참모 등 만나

삼성전자는 지난 23일(현지시각) 미국 텍사스 주지사 관저에서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그렉 애벗 텍사스 주지사, 존 코닌 상원의원 등 관계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입지 선정 사실을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입지 선정으로 전 세계 시스템 반도체 고객사에게 첨단 미세 공정 서비스를 원활하게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미국 내 제2 파운드리 공장 건설 방침을 밝힌 후 최종 입지를 결정하지 못하다가 이 부회장의 이번 미국 출장을 계기로 매듭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또 삼성전자가 이번에 새 공장 부지를 확정하면서 한동안 멈췄던 대규모 투자·인수합병(M&A)도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부회장은 최종 입지 선정에 앞서 워싱턴D.C에서 백악관 핵심 참모와 연방의회 의원들을 잇달아 만나 글로벌 공급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삼성의 역할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 부회장이 만난 백악관 핵심 참모는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 보좌관과 브라이언 디스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으로 알려졌다.

반도체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그동안 시스템반도체 육성을 직접 이끌어온 만큼 이번에도 직접 나선 것”이라며 “삼성전자가 2030년까지 대만 TSMC를 넘어 파운드리 시장에서도 세계 1위에 올라서겠다는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도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고 퀄컴, 구글, 테슬라 등의 핵심 고객사가 있는 미국 공장 증설이라는 점에서 특히 기대감이 높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삼성전자는 기존 오스틴 생산라인과의 시너지, 반도체 생태계와 인프라 공급 안정성, 지방 정부와의 협력, 지역사회 발전 등 여러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테일러시를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테일러시에 마련되는 약 496만㎡(약 150만 평) 규모의 신규 부지는 오스틴 사업장과 불과 25㎞ 떨어진 곳에 위치해 기존 사업장 인근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용수와 전력 등 반도체 생산라인 운영에 필요한 인프라도 우수하다. 또 텍사스 지역에는 다양한 IT 기업들과 유수 대학들이 있어 파운드리 고객사와 우수 인재 확보에도 많은 이점이 있다. 이 외에도 테일러시 교육구 정기 기부, 학생들 현장 인턴십 제도 등 인재 양성을 통한 지역사회와 동반성장 효과도 기대된다.

삼성전자가 미국 내 신규 파운드리 반도체 생산라인 건설 부지로 텍사스주 테일러시를 최종 선정하고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첫 줄 왼쪽부터 존 코닌 상원의원, 그랙 애벗 텍사스 주지사,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삼성전자 제공)
평택 3라인과 함께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 기여

테일러시에 들어서는 신규 라인은 평택 3라인과 함께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 달성을 위한 핵심 생산기지 역할을 할 전망이다. 이번 라인 건설로 ‘기흥/화성-평택-오스틴/테일러’를 잇는 삼성전자의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생산 체계가 강화될 전망이다.

또한 테일러시 신규 라인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와 함께 장기적으로 다양한 신규 첨단 시스템 반도체 수요에 대한 대응 능력을 확대해 4차 산업혁명 가속화 등 차세대 IT 산업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고객사 수요에 대한 보다 신속한 대응은 물론 신규 고객사 확보에도 유리하다.

김 대표이사 부회장은 텍사스 주지사 관저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올해는 삼성전자 반도체가 미국에 진출한 지 25주년이 되는 해로, 이번 테일러시 신규 반도체 라인 투자 확정은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초석이 될 것”이라며 “신규 라인을 통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는 물론 일자리 창출, 인재양성 등 지역사회 발전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부회장과 삼성전자의 과감한 행보에 대해 “삼성전자의 투자 결정이 지난 8월 이 부회장이 가석방된 지 3개월여 만에 나왔다”며 “한국 법무부가 이 부회장 가석방을 결정할 당시 반도체와 백신 역할론 등 경제적 효과를 강조한 데 대해 삼성이 화답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미국 출장을 마친 뒤 지난 24일 오후 서울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했다. 이 부회장은 이번 출장 중 미국 정부와 의회의 고위 관계자 외에도 미국 대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났다. 지난 20일 워싱턴주에서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를, 22일 실리콘밸리에서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를 연달아 만난 것이다.

이 부회장은 특히 DS미주총괄과 삼성리서치아메리카에서 삼성 연구원들을 만나 “추격이나 뒤따라오는 기업과 격차 벌리기만으로는 거대한 전환기를 헤쳐 나갈 수 없다”면서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를 개척해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가자”고 당부하기도 했다.

미국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이 부회장은 투자 결정에 의미를 두면서도 세계 반도체 시장의 치열한 경쟁을 직접 진두지휘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테일러시 투자로 경쟁사인 TSMC는 물론 파운드리 시장 재진출을 선언한 인텔 등 글로벌 반도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