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 전반에 퍼진 ‘핀셋 마케팅’, 이제는 대세

20대 여성이 GS25에서 과일향 전통주를 고르고 있다. (사진=GS리테일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기업들이 최근 특정 소비층을 적극 공략하는 ‘핀셋 마케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나만을 위한 취향 저격 아이템’을 소비자가 강력히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고급 자동차나 명품 브랜드 제품 마케팅에서 오래전부터 등장한 마케팅 기법이기는 하다. 하지만 최근 유통업계 전반적으로 특정 소비자 취향에 맞춰 판매하는 마케팅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특히 ▲가치소비 확산에 따른 ‘환경 제품’ ▲반려동물 1500만 시대를 겨냥한 ‘펫펨족(펫+패밀리) 제품’ ▲MZ세대(밀레니얼+Z세대) 트렌드에 어울리는 ‘펀(Fun) 제품’ 등으로 소비자 취향을 좀 더 세부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 같은 국내의 핀셋 마케팅은 소비 문화가 다른 해외 소비층을 공략하는데도 다양하고 유용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스몰 브랜드 파편화로 이어져 시장 다양화 기대

유통업계는 타 산업에 비해 유행에 더 민감하고 시대를 관통하는 트렌드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산업군이다. 최근 들어 이러한 유통업계의 방향성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기존 유통업계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 중심으로 소비자를 공략했다면 이제는 사회적인 개인화 분위기로 인해 좀 더 세분화된 제품을 내놓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특히 1인 가구의 증가는 이 추세를 더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가구추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체 가구 중 약 30.2%가 1인 가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추세는 지속적으로 늘어나 2047년에는 전체 가구 중 약 40%를 1인 가구가 차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김연희 보스턴컨설팅그룹 유통부문대표는 “앞으로 국내 유통 브랜드의 파편화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미 전 세계 소비재 산업이 소형 브랜드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에는 대형 브랜드 중심으로 대중성을 광범위하게 담기 위해 주력했지만 최근에는 MZ세대의 개인화로 스몰 브랜드가 고성장하고 있어 특히 고객 세분화, 메시지 세분화, 채널 세분화가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렇게 각 개인에 맞춰지는 취향 저격 마케팅 방식이 시장의 축소를 초래하거나 기존 유통 생태계를 무너지게 만드는 원인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유통업계 현장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추세를 반기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오히려 더 다양한 시장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존 고가 시장의 핀셋 마케팅은 정말 특정 개인을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 그 이상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반면 유통업계의 핀셋 마케팅은 구체적인 소비층이 정해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홍보에 대한 비용 절감은 물론 신상품을 만들어내는 데도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유통기업들이 고객 취향과 시장 흐름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누구에게나 기회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라면서 “민감한 시장 흐름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특정 소비층이 정해졌다 해도 무조건 제대로 된 아이템을 소비자에게 제시한다는 보장도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취향에 맞는 전통주 인기몰이로 구독서비스까지 등장

취향이 확실한 애주가들도 핀셋 마케팅의 공략 대상 중 하나다. 최근 전통주 전문 판매점을 비롯해 전통주 바와 갤러리, 심지어 전통주 구독 서비스까지 등장하면서 전통주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MZ세대 사이에서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MZ세대는 기존 와인을 비롯해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는 과실주와 여러 가지 맛을 담은 전통주를 즐겨 찾고 있다.

맥주와 소주, 그리고 유명 제조사의 막걸리로 대변되던 주류 문화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특히 MZ세대 중심으로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기기 위해 술을 찾는다”는 주류 문화가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 이 같은 주류업계의 추세에 따라 관련 유통가도 이 흐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젊은 층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신상품 전통주의 판매가 호조를 보이고 있는 것은 접근성이 가장 좋은 편의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GS리테일에 따르면 GS25의 지난해 전통주 매출(일반 막걸리 제외)이 전년 동기 대비 30.5% 증가했다. 2019년 전통주 매출이 전년 대비 14.1% 증가한 것에 이어 지난해 증가 폭이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GS리테일은 최근 선보인 전통주들이 MZ세대 취향에 맞춰져 기존 스테디셀러 전통주들의 인기를 뛰어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GS25는 전통주 카테고리의 성장세에 주목해 맥주에만 적용하던 4캔에 만원 주류 행사에 전통주를 포함시켜 ‘전통주 살리기 프로젝트’에 돌입하는 한편 다양한 전통주 상품을 점차 확대키로 했다.

GS리테일 관계자는 “MZ세대를 중심으로 과일향 등이 가미된 맛있는 술을 즐기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며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 홈파티 때 특별한 주류를 즐기는 문화가 전통주를 통해 확산되고 있는 만큼 당사는 전국 오프라인 네트워크를 활용해 전통주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주류 문화의 변화는 결국 전통주의 구독서비스까지 탄생시켰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구독경제 시장 규모는 2016년 25조9000억원에서 지난해 40조1000억원으로 54.8% 늘었다. 이렇게 급성장하는 시장에 전통주업계가 본격적으로 가세하고 있는 것이다.

배상면주가는 홈술 문화에 착안해 주류 판매 플랫폼 ‘홈술닷컴’을 열고 정기구독 상품을 선보였다. 온라인에서 구매 가능한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정기구독자 수가 매월 10% 이상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배상면주가 와인류 제품은 ‘인싸술’이라는 애칭과 함께 MZ세대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주봉석 한국전통민속주협회 사무국장은 “젊은 층이 기존에 쉽게 구매할 수 있었던 술을 외면하고 있다”며 “심지어 기존 유명 막걸리보다도 처음 보는 전통주나 지역 특산주를 찾기 위해 발품을 팔기 시작했는데 평범하지 않고 독특한 전통주, 좋은 원료와 지역의 문화를 담은 가치 있는 전통주를 선호하는 문화가 MZ세대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10월 코카-콜라는 전 세계 최초로 컨투어병 디자인을 적용한 무라벨 페트(PET) 제품 ‘코카-콜라 컨투어 라벨프리’를 한국에 출시했다. 환경을 대하는 한국 소비자의 높은 관심을 겨냥한 제품이다. (사진=코카-콜라 제공)
독특한 이색 입맛부터 반려동물 입맛까지 챙긴다

식품업계는 소비자의 ‘이색 입맛’을 공략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맵부심(매운 것을 참고 잘 먹는 것을 과시하는 것)과 레트로 입맛 등을 자극해 소비자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특히 SPC삼립과 농심켈로그가 다양한 이색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SPC삼립은 최근 매운맛을 선호하는 소비자를 위해 매콤한 고추장과 부드러운 생크림을 더한 ‘로제호빵’, 미국 내슈빌 지역 핫치킨을 모티브로 한 고추 맛을 내는 ‘내슈빌 호빵’, 농심의 매콤한 비빔면 ‘배홍동’ 소스를 활용한 ‘배홍동 호빵’ 등을 출시했다. 모두 맵부심을 자극하는 아이템들이다.

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유행하는 ‘민초단(민트 초코맛을 선호하는 사람들) 트렌드’에 걸맞은 ‘민트초코 호빵’, ‘할머니 입맛’을 반영한 해표 협업 ‘들기름 매콤왕 호빵’과 ‘참기름 부추왕 호빵’ 등도 있다.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 2000년대 추억의 캐릭터 ‘홀맨’을 활용한 ‘꿀씨앗 호빵’과 ‘단호박치즈호빵’, ‘구름소다 호빵’ 3종도 선보였다.

농심켈로그는 신제품 첵스 팥맛 한정 판매에 돌입했다. 첵스 팥맛은 전북 고창에서 생산되는 국내산 팥 100%를 사용해 팥맛의 풍미를 그대로 구현했다. 여기에 새알심을 연상시키는 하얀 마시멜로우를 넣어 마치 어릴 적 할머니가 손수 만들어 주던 달콤하고 진한 단팥죽과 같은 추억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제품을 내놓았다.

이러한 이색 입맛 외에도 반려동물의 수가 증가하며 이들을 가족처럼 여기는 ‘펫펨족’(펫+패밀리)을 겨냥한 마케팅도 주목받고 있다. 현재 국내 반려동물 인구는 약 1500만으로 추산되고 있는데다 앞으로 이 시장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커피빈은 국내 카페 프랜차이즈 최초로 펫 회원제 서비스를 출시했다.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반려동물의 생년월일과 성별, 견종·묘종을 입력하면 ‘펫민번호’(펫+주민등록번호)가 담긴 ‘펫플카드’가 발급된다. 이 계정으로 반려동물 관련 상품을 구매할 경우 해당 카드에 스탬프가 적립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현재 해당 서비스는 5개점에서 시범 운영되고 있다.

CU도 반려동물 전용 보양식 ‘정성 가득 한그릇 3종(삼계탕, 오리탕, 북어탕)’을 출시했다. 닭가슴살, 인삼, 당근 등을 사용해 사람이 섭취해도 무리가 없다는 것이 CU 측 설명이다. 파우치 형태의 패키지에 담아 원하는 양만큼 제공한 뒤 남은 내용물을 보관할 수 있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 ‘광군제’ 겨냥한 맞춤형 마케팅 큰 호응 얻기도

국내 유통업계의 차별화된 유통 환경, 색다른 문화 공유 등의 현상은 전 세계 소비자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운 해외 영업 환경 속에서도 일명 ‘K-시리즈’로 불리는 국내 상품들이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해외 각국의 문화를 반영한 마케팅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이러한 면모는 중국 최대 쇼핑 행사 ‘광군제’(光棍節)에서도 잘 드러났다. 사실 이번 광군제는 중국 글로벌 공급망 대란 등으로 전반적인 성장률이 주춤했다. 그럼에도 한국 기업들은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차 문화를 고려한 제품이나 중국인이 좋아하는 붉은색을 넣은 제품 등으로 중국 소비자 취향을 제대로 공략했다는 분석이다.

락앤락은 이번 광군제에서 매출 약 103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22.7% 증가한 금액이다. 락앤락이 중국의 젊은 층을 겨냥해 선보인 ‘실루엣 텀블러’는 중국에서만 판매하는 중국향 제품으로 음료용기 전체 매출의 약 44%를 차지했다. 중국인들이 차를 즐겨 마신다는 점에 착안해 기능적인 면을 세심하게 고려했고 다양한 색깔과 용량의 제품을 선보였다.

이랜드는 중국에 진출한 국내 패션 기업 최초로 광군제에서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매출 약 800억원과 비교해 30% 이상 성장했다. 이랜드는 틱톡을 활용해 중국 내 이커머스 채널 다각화를 시도했다. 중국 온라인 시장의 가장 큰 화두였던 라이브커머스 확대에 대응키 위해 올해 초 자체적으로 ‘라이브커머스 TFT’를 만들어 대응하기도 했다.

이 밖에 삼양식품은 광군제에서 약 11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번 기록은 지난해 85억원 매출 대비 2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삼양식품의 불닭브랜드는 수입 라면, 수입 인스턴트 식품 등 주요 판매 랭킹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중국인의 입맛을 분석한 지속적인 마케팅 활동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