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뒤집어쓸 애먼 안전관리자들 반발 “오너 보험용 직책에 불과”

(사진=유투이미지 제공)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내년 1월 27일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건설, 제조 등 현장의 안전·보건관리자 집단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이 현장의 안전 관리를 저해하는 악법이 될 것으로 우려한다. 산업재해 발생 시 안전·보건관리자들이 사업주 대신 처벌을 받는 이른바 ‘총알받이’ 신세로 전락할 거라고 보고 있다. 이들은 현장을 모르는 국회의원들과 행정가들이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원인을 좀체 파악하지 못한 채 단순 징벌적 법을 양산한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한다.
안전·보건담당이사는 합법적인 오너의 방패막이?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가 사망하거나 2명 이상 중상, 1년 이내 3명 이상 급성중독 등 피해가 작업장에서 발생할 경우, 사업주나 대표이사, 안전·보건관리 이사 등을 벌금 또는 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동안 산업재해를 관리감독하는 법으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있었지만 중대재해처벌법에는 중간관리자 처벌에 그쳤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윗선에 책임을 묻는 조항이 포함된 점이 다르다. 보호대상은 사업장의 정규직, 비정규직 근로자 외에 하도급 노동자나 일반시민으로 넓혔다.
재계에서는 도급을 준 원청 기업의 대표이사까지 처벌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노동계에서는 중소기업의 다수를 차지하는 5인 이하 사업장이 법의 테두리에서 빠졌다는 이유로 이 법을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안전·보건관리 직무의 종사자들이 우려하는 대목은 따로 있다.
이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안전총괄이사는 현장 안전에 기여하기보다는 사업주를 대신해 감옥에 가는 역할로 전락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직원 10명 규모 중소건설사의 안전담당 이사인 A씨는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후 내 역할은 고작 사고 발생 시 오너 대신 벌금을 내거나 감옥 가는 게 전부일 것 같다. 사실상 대신 희생하는 ‘오너 보험용 직책’이다. 직종 전환을 고민 중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나는 대기업에서 20년 동안 안전관리책임자로 경력을 쌓고 현재 회사에 왔는데 명함만 ‘이사’지 실제 권한은 아무것도 없는 ‘바지 임원’이더라. 현장소장에게 안전 지침을 내릴 수도 없고 내가 운용할 수 있는 예산도 없다”며 “안전관리 매뉴얼과 운영안을 내가 만들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회사 홍보용일뿐, 실제 현장에선 쓰지도 않는다”라고 토로했다.
안전담당이사의 처우를 놓고 ‘희생양’ ‘총알받이’ 등 자조적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산업재해 발생 시 받을 처벌은 무거워진 반면 현장을 통제할 권한은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건설, 제조 등 사업장이 안전·보건관리 직군의 관리책임자를 고용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일선 현장에 1~2명 정도 존재하는 안전·보건관리자들은 현장소장 등 관리감독자에게 안전 지도·조언을 하는 역할이다. 근로자들에게 안전모 착용 등 준칙을 지키라고 ‘잔소리’를 하는 것도 이들의 업무다.
하지만 현장에서 안전·보건관리자의 잔소리는 무시되기 일쑤다. 발주처에서 작업 기한을 빠듯하게 주면 안전 원칙을 지키면서 작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재해는 사업주나 근로자의 잘못된 행동이 원인인데 애꿎은 안전·보건관리자가 처벌을 받고 있다고 토로한다. 안전·보건관리자들이 작업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기도 한다. 필수 안전 장비를 보급하는 것도 이들의 업무지만 사업주로부터 “예산이 없다”며 핀잔을 듣기 일쑤다. 툭하면 주변에서 잡일을 맡겨 본업에 집중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경기도 소재 공장에서 안전관리자로 근무하고 있는 B씨는 “사고가 터지면 사장은 ‘너 뭐했냐’며 내게 따지지만 차마 ‘사장님께 안전 장비가 필요하다고 전에 말씀 드렸는데 돈이 든다며 거부하지 않았냐’고 따질 수는 없다”라며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매년 터지는 사고를 뒷수습하는 것 뿐이다”라고 했다.
사후처벌로 현장 안전 담보 못해…독립적 관리자 지위 필요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이 공개한 ‘2021년 9월 말 산재발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1~9월까지 산재사고 사망자는 678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60명)보다 18명(2.7%) 더 늘었다. 중대재해처벌법 도입으로 안전담당 경영책임자를 채용하는 기업이 늘고 있지만 이처럼 안전 지침이 무시되는 일선 분위기에서 실제 현장 안전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특히 건설업계에선 중대재해처벌법은 어디까지나 ‘사후 처벌’에 대한 법이며, 안전관리 프로세스 개선을 위한 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전·보건관리자가 회사의 눈치 보지 않고 본업에 충실 할 수 있도록 건설사로부터 독립시키지 않는 이상 희생양 처지를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부길 한국안전보건기술원 공동대표는 “현장 최고 책임자인 관리소장은 공기 내에 준공해 이익을 내는 게 최우선 과제인 사람들이다. 안전·보건관리자들은 대부분 계약직이고 어디까지나 부하직원 중 한 명인데, 아무리 원칙을 지키라고 얘기한들 마감과 예산에 따라 무시되기 일쑤다”라며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산업재해가 터지기 전에 정부가 현장 관리를 강화하는 제도가 필요한 건데, 정작 중대재해처벌법은 발생 후 처벌에 그칠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문제 때문에 중대재해법이 안전담당이사를 처벌하는 것이 안전관리 직무를 기피하게 만든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따른 인력 공백은 오히려 안전 관리 서비스의 질적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산안법의 경우 안전관리자를 처벌하는 일이 늘어나자 업계에서 안전관리자 직무를 기피하는 폐단으로 이어졌다. 결국 1993년 당시 노동부 장관이 검찰총장에게 “안전관리자가 처벌받지 않도록 해달라”고 공문을 보냈고 안전관리자가 사고를 이유로 처벌받는 사례는 근절됐다.
정작 규제 대상인 기업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을 계기로 현장 안전 지침을 개선하기보다는 경영상의 ‘꼼수’로 빠져나가려는 시도로 지탄을 받고 있다. 올해 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김상수 한림건설 회장, 최은상 요진건설산업 부회장, 태기전 한신공영 부회장 등 오너들은 잇따라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 전문경영인을 세웠다. 전문경영인 선임 자체가 잘못은 아니지만 중대재해 발생 시 처벌을 피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마침 대한건설협회는 ‘대표자’에 국한됐던 법인 회원의 조건을 ‘대표자 또는 등기이사 중 1인’으로 변경해 이들 오너들은 회원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 도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추가 제도 개선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단순 처벌보다는 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총수가 국민참여재판 등에서 ‘안전에 보다 적극적인 투자를 하겠다’고 약속하고 그 이행을 감시하는 ‘플리바게닝’과 같은 시스템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했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