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칼럼

최근 국내에서는 ‘ESG 경영 제대로 하기’가 주목받고 있다. (사진=유토이미지 제공)
사업하는 사람들을 입버릇처럼 ‘업자’라고 부르는 관료들이나 학자들을 심심찮게 만난다. 필자 역시도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불쾌하다. 그러나 이들로부터 ‘업자’로 불리기까지 사업가들의 잘못은 과연 없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에도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업자득이란 얘기다. 한국 기업 야사를 들춰보면 ‘왜 사업가는 업자로 전락했는가’라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흑역사적 무용담들이 차고도 넘친다.

즉 이제껏 국내에서 크게 사업을 일으킨 사람들 중 상당수는 페어플레이를 통해 특정 사업권을 따내거나, 특정 섹터나 분야를 일궜다기보다는 힘 있는 고위 관료나 정치권에 줄대고 로비하고 모종의 뒷거래를 통해 성장해온 경우가 꽤 많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상당수 학자들은 심사, 자문, 연구 및 기고활동 등으로 정부나 여론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들 스스로 기업들의 로비나 관리의 대상으로 존재감을 부각시켜 왔다. 물론 우리나라 전통의 사농공상 문화가 학자들에게 과도한 영향력을 부여해 줬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런 배경 하에서 정경유착, 학자와 기업 간 공생구조가 만들어졌다고도 보여 진다.

필자가 직접 만났던 사업가 중에서도 이런 술수에 능한 분들이 꽤 있었다. 지속가능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대단한 성공 신화를 쌓아 올리기도 했었다. 한때 우리나라 휴대폰 산업의 기린아로 불렸던 P모 회장은 상상을 초월하는 타고난 친화력과 언변으로 상대의 혼을 빼고 마음을 얻었다. 모 제약업체 회장 역시 그와 한번 와인 몇 잔 마시며 시간을 보내면 마음을 빼앗기기 십상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주범 중 하나였던 H철강의 J회장 역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상대에게 접근해 돈과 접대로 상대를 무너뜨린 수완가 중 수완가였다. 이분과 한 시간만 같이 있으면 십중팔구의 사람들이 설득당했다고 한다. 그 밖에 자살로 삶을 마감했던 K기업 S회장, 병사했던 T실업 P회장 등 대한민국에는 접대와 로비력으로 한때 일가를 이뤘던 수많은 사업가들이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사업가를 ‘업자’ 혹은 ‘장사치’의 지위에서, 특정한 업을 일으키는 명실상부한 ‘기업가’(entrepreneur)의 지위로 상향시킬 방법은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그것이 국내에서도 최근 주목받고 있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제대로 하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찍이 기업의 역사가 오랜 유럽국가에게서도 17, 18세기 기업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비등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버는 노예무역업자나 굴뚝청소 소년들에 대한 아동노동 연루자들, 주로 유대인들이었던 고리대금업자들이 비난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당시 유럽사회에서는 기업윤리와 기업의 사회적 책무라는 원리를 바탕으로 사업의 본질을 재규정하려는 노력들도 치열하게 일어났다. 대표적으로 감리교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존 웨슬리(1703~1791)를 꼽을 수 있다.

그는 그의 유명한 설교집 ‘돈의 사용법’에서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돈을 마음껏 벌라. 돈 버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니다. 그렇지만 네 양심을 속이지 말고, 네 이웃의 건강과 재산을 부당하게 빼앗지 말고, 또한 이 땅(환경)을 훼손하지 말고 벌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한편 독일의 경제 사회학자였던 막스 베버(1864~1920) 역시 서구 자본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켰던 인물이다. 그는 저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는 개신교의 윤리성 및 합리성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가가 배금주의적 이익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도덕적 합리적 경영을 통한 이익 추구를 해야 하고 그것이 곧 기독교 사상과 연결된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서구 사회에서는 자본주의 진화의 변곡점마다 여러 사상가들이 등장해 경영의 새로운 가치관 및 경영철학을 제시하며 자본주의 성숙의 안내자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지난 70여 년 동안 한국사회에서는 17, 18세기 유럽사회가 이미 경험했었던 자본주의 성숙과 심화의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한국경제와 기업들이 고도성장을 이룩해 왔지만 그 규모에 걸맞은 적절한 진화 및 교정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떼돈’(Big Money)을 예찬하는 배금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지금도 수많은 기업가들은 열심히 고위 관료와 학자들이나 영향력 있는 인사들에 줄을 대고, 그들을 관리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방식이 사업 수완인 것처럼 스스로 착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관료와 학자들은 오만해지고 예의를 잃고(spoiled), 그만큼 사업가들 스스로는 ‘업자’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희망은 없는 것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희망은 여전히 있다. 필자는 최근에 부는 ESG 경영 열풍에 일말의 희망을 갖고 있다. ESG 경영이란 과거의 한국자본주의를 보다 진화된 성숙한 자본주의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인 까닭이다.

‘빅 머니로부터, 가치가 담겨 있는 굿 머니로의 대전환!’ 이것이 지금 한국에서 바람이 불고 있는 ESG 경영인 것이다. 18세기 존 웨슬리의 외침이, 19, 20세기 막스 베버의 일갈이 21세기 한국 자본주의 현장에 메아리치고 복원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러할 때 한국의 사업가들은 ‘업자’에서 ‘기업가’로 스스로 신분상승(?)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프로필

KAIST 경영대학원 대우교수와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과 (사)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6년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 고객사에 ESG 분석과 운용 전략을 자문하는 ESG 전문 리서치 회사 ㈜서스틴베스트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형 사회책임투자> 등이 있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