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승인 과정서 운항 축소될까 우려…깐깐한 EU 통과도 가시밭길

12일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주기장에 합병을 앞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항공기가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주간한국 장서윤 기자]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승인 여부를 2월 초 최종 결정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앞서 이들 두 기업의 결합에 대해 ‘조건부 승인’ 의견을 제시했던 공정위가 최종적으로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되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내달 초 전원회의를 통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승인 여부를 심의한다.

공정위는 지난달 29일 조건부 승인과 시정조치 내용 등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대한항공·아시아나 측에 보냈다. 이에 대한항공은 21일 공정위에 조건부 승인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해당 의견서는 내부 검토를 거쳐 전원회의 일정을 확정하게 된다. 전원회의는 설 연휴 이후 내달 9일께 개최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공정위 조건부 승인, 사실상 항공 운항 축소 방침

공정위의 심사보고서는 운수권 재배분, 시간당 공항 비행기 이착륙 횟수(슬롯) 반납 등을 이행하는 조건으로 양사의 기업결합을 승인하기로 잠정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이는 사실상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운항을 축소하고, 신규 항공사의 진출을 허용하는 방안이다.

운수권은 다른 나라 공항에서 항공사가 운항할 수 있는 권리로 정부가 운항횟수와 운항기종 등 일정 기준에 따라 배분한다. 슬롯(slot)은 항공사가 공항에서 일정 시간대를 정해 항공기를 운항할 수 있도록 배정된 시간이다.

공정위는 두 대형 항공사간 합병이 독과점과 경쟁 제한성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며 이 같은 조건을 제시했다. 합병 후 점유율(국내 기준)이 100%에 달하는 노선에서 일부 슬롯 반납을 제시한 것이다. 이 조건대로라면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과 중복 운항하던 노선을 반납해야 한다. 반납 대상이 되는 노선에는 이른바 ‘알짜 노선’으로 알려진 인천-미국 LA·뉴욕·시애틀·프랑스 파리·스페인 바르셀로나 등이 포함돼 있다.

정위 이어 해외 7개국 심사도 앞둬…EU 통과할 지 장담 못 해

합병을 추진중인 대한항공으로서는 큰 고민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공정위가 제시한 조건부 승인을 받아들이면 애초 기대했던 합병 효과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있다. 그렇다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합병이 아예 무산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대한항공이 제출한 의견서에는 이런 조건부 승인이 부당하다는 내용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은 향후 열릴 공정위 전원회의를 통해 입장을 충실히 소명한다는 방침이다.

공정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항공수요 감소로 시정조치를 길게 제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공정위가 조건부 승인 결론을 내리더라도 바로 시정조치안을 확정하지 않고, 해외 경쟁당국 심사 상황에 따라 추가 회의를 열어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기업결합은 공정위 외에도 미국·유럽연합(EU)·중국·일본·영국·싱가포르·호주 등 해외 경쟁 당국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현재 이들 7개국이 심사를 진행 중에 있다. 글로벌 기업결합의 특성상 경쟁 당국 가운데 한 곳이라도 승인을 거부하면 합병은 무산된다. 특히 EU 경쟁 당국의 대형 항공사 간 기업결합 심사 통과는 녹록지 않다. 지난해 캐나다 1·3위 항공사인 에어캐나다와 에어트랜셋의 합병도 EU의 부정적 반응으로 자진 철회됐다. 스페인 1·3위 항공사인 IAG와 에어유로파 인수를 불허한 바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대한항공이 자진 철회하는 강수를 둘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우선 국내에서 공정위의 승인 과정에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이어서 공정위의 결정 전까지는 별다른 철회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몽골 이어 스위스와 항공 운수권 확대 합의 ‘지원사격’

이에 정부도 대한항공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최근 정부는 스위스와 항공 운수권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공정위가 제시한 항공사 독점성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는 합의이기도 하다. 지난 19일 국토교통부는 스위스 연방 민간항공청과 한-스위스 간 항공회담을 개최해 지정항공사 수 제한을 폐지하고 2024년부터 운항 횟수를 양 국가별 주 6회로 확대하는 합의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1976년 11월 항공협정을 체결한 이후 약 45년 동안 한-스위스 노선은 양국 각 1개의 항공사만 운항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 합의를 통해 단독운항 중인 대한항공 이외에 새로운 항공사의 진입이 가능해졌다. 이에 국내 항공사들이 스위스 신규취항이 가능해지고 양측 간 운항도 늘어날 전망이다.

이번 합의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과정에서 독점성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공정위가 제시한 운수권 재배분에 따르면 잔여 운수권이 있어 신규 항공사가 진입 가능할 경우 대한항공의 운수권을 회수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국토부는 지난 8월초 몽골과의 항공 회담에서도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만 운항 중인 몽골 노선 운항을 확대한 바 있다.



장서윤 기자 ciel@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