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펀치] 남자끼리 놀면 동성애자?


이삼일 전이던가. 아는 분이 저녁때 술이나 한잔 하자고 연락이 왔다. 나는 사뭇 비장하고 애통한 마음으로 무겁게 입을 열었다.“말씀은 고마운데요 제가 지금 집안에 상(喪)을 당해서요. 술은 다음에 하지요.”

깜짝 놀란 그분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서 말까지 더듬었다. “난 소식을 못들었는데. 도대체 누가….” “장국영(張國榮)이 죽었거든요. 같은 장씨라….”

그제서야 나의 농담을 알아챈 그분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분이나 나나 개인적인 친분이 없음에도 장국영의 죽음에 남다른 충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어디 비단 몇몇 사람의 충격 뿐일까.

대한민국 사람치고 장국영이 등장하는 영화를 한 두 편 보지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웅본색에서 주윤발의 강한 남성성과는 확연히 다른 수줍고 부드러운 미소로 여자들을 설레게 만들었던 꽃미남 1세대였다. 하지만 제비족같이 반반한 인물로 얼굴값을 하는 배우라는 인식에서 확연히 벗어나게 해주었던 영화는 뭐니뭐니 해도 패왕별희와 해피 투게더였다.

두 영화에서 동성 남자를 사랑하는 역할로 괴로워하고 번민하며 상처받는 연기를 한 장국영은 연기를 잘한다던지 표현력이 뛰어나다던지 하는 구태의연한 수식어보다 더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지극히 예민하고 나약하며 금세라도 무너져버릴 듯이 흔들리는 눈빛을 보면서 살아있음도 또 다른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그런 감정을 일깨워준 감성적인 연기자였다.

그토록이나 뛰어난 연기의 감성이 이상하게 절절하고 막연하게 위태위태 하더니 ‘나의 숨겨진 본질은 바로 이거였어’ 하듯이 투신자살해 버렸다. 장국영의 투신에는 오랬동안 관계를 지속해왔던 동성 애인으로부터 실연을 당했다는 사실도 큰 몫을 차지한다.

그의 죽음에 충격을 받으면서도 정작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에는 별다른 반감을 느끼지 못하고 무의식중에 세뇌를 당한 듯이 ‘그래,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거야. 그럴 줄 알았어’ 하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도 그의 여성성같은 예민한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우리 연예계에도 누가 누가 동성애자다 하는 공공연한 소문이 떠돈다. 실제로 소문이 무성했던 홍석천은 더 이상 비겁해지는게 싫어서 당당하게 커밍 아웃을 했는데 결과는 만신창이가 됐다. 연예계에서 추방당하다시피 하고 사람들로부터는 온갖 손가락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보수적이고 유교 이념이 아직까지 깊게 남아있는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성에 대해서 지극히 자유롭다는 미국이나 다른 서구의 나라들에서도 동성애자들은 껄끄러운 존재이다. 우리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동성애자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이나 멸시는 여전하다.

말도 많은 연예계에서 동성애자라는 소문은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동성애자로 의심받고 있는 연예인A를 둘러싸고 이태원의 게이바에서 봤다는 둥, 우리나라에서는 말이 나니까 해외에서 동성애를 즐기고 왔다는 둥의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돌았었다.

“걔 동성애자가 틀림없어. 영화관에서 남자랑 영화를 보더라니까.” “야, 같이 극장에 갔다고 다 동성애자냐.” 그러자 후배녀석은 고개를 저으며 심각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남자끼리 손잡고 영화를 보지는 않죠.” 말문이 막히면서도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얘기를 했고 녀석은 계속 맞다고 우겨댔다. 우리끼리 한참동안 설전을 벌이는데 옆에 있던 또 다른 후배 녀석이 소리를 꽥 질렀다.

“걔 동성애자 맞어. ” “정말? 니가 어떻게 알어?” “어저께 나랑 한번 했어.” “…”

미치겠다, 그게 농담일까 진실일까….

장덕균


입력시간 : 2003-09-30 14:22


장덕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