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펀치] 찍히면 '가는 세상'


‘찍히면 죽는다’ 라는 제목의 우리나라 영화가 있다. 비디오 카메라로 이것 저것 찍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번 양길승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사건에서도 양 실장이 청주 나이트클럽에서 나오는 모습이 몰래 카메라에 찍혀 그는 결국 잘리고 말았다.

양길승 전 실장과 술자리를 같이 했던 사람들은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처음에는 술값이 43만원이었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얘기를 듣고 ‘청주는 참 술값이 싸구나’ 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조사 결과 실제 술값은 215만원으로 밝혀졌다.

그러면 그렇지, 아무리 나이트클럽이지만 룸에 들어가서 그것도 아가씨까지 불러놓고 마셨다는데, 술값이 43만원 나왔다고 한 건 정말 국민을 우습게 보고 한 말이다. 나이트클럽 룸에서 소주를 마셨다면 모를까, 어떻게 양주를 마셨는데 술값이 그것밖에 안 나온단 말인가. 말을 맞추려면 좀 현실성 있게 맞췄어야지 이게 뭐하는 짓인가,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그 나이트클럽의 실제 소유주가 합석을 한 상황이라 요즘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그 소유주가 수사에 영향을 미칠 청탁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에 ‘절대 그런 일이 없었다’고 오리발을 내밀었으나 확인 결과 경찰 수사와 관련, ‘억울하니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또 한가지 의문이 남는 것은 그런 접대의 자리에서 그 모시기 어려운 청와대 부속실장을 모셔놓고 2차를 안 챙겨주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조사에 의하면 나중에 아가씨가 호텔 방으로 따라갔지만 양 전 실장이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양 전 실장이 접대부의 동침을 거절하고 돌려보낸 것도 좋은 정상이라고 지적했다는데 어떤 이는 아가씨가 맘에 안 들어서 돌려보낸 것이 아니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의 진실을 밝혀 국민들의 의혹을 해소하려면 국회에서 청문회를 열어 그날 룸에서 접대부로 일한 아가씨들과 마담, 웨이터까지 모두 출석시켜 낱낱이 파헤쳤으면 한다. 사실 요직에 있다 보면 이런저런 상황에 의해 접대를 받을 기회가 많이 생긴다. 청렴결백한 공직생활을 위해 뿌리쳐 보기도 하지만 무조건 외면만 할 수 없는 것이 현실 아닌가.

그렇게 따지고 보면 지난 대선에서 고락을 같이 했던 동지들과 오랜만에 술 한잔 하러 갔다가 몰카에 걸려 이상하게 얽힌 양 전 실장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억울하고 재수 없는 경우에 해당되겠지만 권력의 핵심부인 청와대 부속실장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더 삼가고 조심했어야 된다는 것이다.

심재륜 전 고검장이 청렴결백한 검사생활을 위해 폭탄주가 먹고 싶으면 집 앞 슈퍼에서 양주와 맥주를 사서 타 마시고 귀가했다는 얘기는 공직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그리고 우리는 이번 사건을 통해 몰래 카메라의 위력을 다시 한번 확인 했다. 몰래 카메라는 그야말로 당사자 모르게 카메라를 숨겨놓고 찍는 것인데, 모 방송사의 인기프로그램에서 유명 연예인을 대상으로 몰래 카메라를 찍어 방영해 많은 웃음을 시청자에게 선사했었고 나중에는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앞 다투어 알반인을 대상으로 한 몰래 카메라를 만들어 시청률 올리기에 급급 했었다.

그러나 초상권 침해라는 비판에 휩싸여 몰래 카메라 제작 방식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TV를 통해 몰래 카메라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실생활에서 몰래 카메라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애인과의 섹스 행위를 몰래 카메라로 촬영해 애인이 헤어지자고 할 때 절대 못 떠나게 하기 위해 찍어두기도 하고, 다른 남자와 사귀는 것에 격분해 인터넷에 띄워 과감한 복수를 실행하기도 했다. 어떤 경우에는 이권 청탁을 하며 금품을 줄 때 나중에 딴소리 못하게 하기 위한 협박용으로 몰래 카메라 기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제 공직에 있는 사람들은 누가 술 한잔 사겠다고 하면 동네 슈퍼 파라솔 밑에서 마시던가 부득이하게 룸살롱이나 나이트클럽에 가게 된다면 몰래 카메라를 대비해서 완전 변장을 하고 가던가 해서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할 판이다. 어쨌든 술 맛 안 나는 세상이다.

장덕균


입력시간 : 2003-09-30 14:43


장덕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