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펀치] '복'날은 보신탕 먹는 날


초등학교 2학년인 내 딸내미의 절대 소원은 마당이 딸린 저택으로 이사를 하는 것이다. 푸른 잔디가 깔린 넓직한 마당이 있는 하얀 2층집에서 살고싶다는 딸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전형적인 공주과 소녀의 소망쯤으로 여겨질 만도 하지만 딸의 목적은 전혀 다른데 있다. 딸이 그림같은 저택으로 이사를 하고자 하는 목적은 오로지 하나,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이유다.

언제부터인가 딸은 강아지를 기르고 싶다고 하루가 멀다하고 노래를 불러댔다. ‘강아지, 강아지’를 부르짖으며 바닥에서 몸부림을 치는가 하면, 누워있는 내 몸 위에 찰싹 달라붙어서는 가짜 눈물까지 글썽이며 징징거렸다. 우리가 아파트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강아지를 키울 수 없다고 설명을 해주었지만 다른 이웃들이 많이 키우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궁색한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을 것 같다.

기관지가 약해서 털이 날리는 짐승을 절대로 키울 수 없다는 말에 눈물을 머금고 한발 물러서는 현명함을 보이는 것 같더니 이것도 불과 3일을 넘기지 못했다. 엄마에게 기관지가 튼튼해지는 고등학생이 되면 강아지를 키우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모양이지만 그건 세월의 무상함과 강아지에 대한 애정이 남자 친구에 대한 관심으로 쏠림으로써 자연히 해결되리라는 지 엄마의 간교한 계산에 의한 사기극이라는걸 절대로 모를 것이다.

요즘 딸은 자신이 강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자신이 강아지를 키우고싶다는 소망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시위라도 하는지 난리도 아니다. 강아지를 키우는 친구가 있으면 그 집에 가서 집에 올 생각은 안하고 강아지가 지 친구인양 오랜 시간 놀다오고는 한다.

그리고 인터넷을 뒤져서 각종 강아지 사진들을 컬러복사해서는(덕분에 그 비싼 잉크를 요 꼬맹이가 다 날려버렸다.) 수첩에 붙여놓고 들여다보며 수많은 종들의 이름을 줄줄이 읊어댄다. 그뿐인가, 장래 희망도 선생님에서 수의사로 바뀌었다. “공짜로 강아지들을 실컷 만질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잖아.”

아하, 이렇듯 강아지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진 내 딸이 얼마 전 보신탕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복날이라고 몸보신도 할 겸 보신탕을 먹으러 갔었다. 우리나라에서 몸보신 음식은 개고기 밖에 없는지 보신탕집은 길게 늘어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번호표를 받고 오래 기다린 끝에 자리를 배정받고 앉았다.

이미 우리가 먹으러 온 음식이 개고기라는 것을 충분히 설명하고 애완용과 식용견의 차이점에 대해서 알려주긴 했지만 강아지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딸이 과연 먹을지 걱정이 됐는데 이건 완전히 기우였다.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수육 한점을 입에 댄 딸은 잠시 후 눈을 반짝반짝 빛내더니 그 조그만 입을 쉴새없이 움직이며 어른이 젓가락 대기가 망설여질 정도로 맛있게 먹어댔다.

그뿐이랴, 돌아오는 길에 요크셔테리어를 보더니 ‘너무 이쁘다, 근데 먹을건 조금 밖에 없네’ 하는 것이 아닌가. 장차 내 딸이 자신의 소망대로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서 강아지를 키운다면 아마도 예쁘게 생긴 애완견 이외에 살집 좋고 튼실한 식용견도 따로 키우자고 나설지도 모를 일이다.

다음날 방송국에 갔더니 개그맨 A가 투덜거렸다. “요즘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야. 날짜 가는 줄도 모른다니까. 너무 바빠서 올해는 복날에 보신탕은 커녕 삼계탕 한 그릇도 못 먹었네. 어제가 말복이었다며? 삼복을 그냥 보내버렸네. 그래도 복날에 뜨거운 보신탕 한 그릇씩은 먹어줘야 든든하고 그런건데….”

“야, 아직 복날 다 안지났어.” 내 말에 A가 뜨악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소리예요? 초복, 중복, 말복 다 지났잖아요. 삼복이 다 갔는데.” “삼복이라니, 오복이지. 초복, 중복, 말복, 그리고 8.15 광복, 9.28 서울 수복 이렇게 해서 오복이야. 야 올해 마지막 남은 서울 수복날 보신탕 한번 먹자. ”

장덕균


입력시간 : 2003-09-30 14:44


장덕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