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미의 홀인원] 비오는 날의 골프


장마철이다. 하루 걸러 비가 내린다. 그래도 골프를 중단할 수는 없는 노릇. 어렵게 부킹을 해서 단단히 벼르고 있는데 전날 밤부터 비가 오면 화도 나고 걱정도 된다.

물론 유독 비오는 날 골프 치기를 좋아하는 아마 골퍼들도 의외로 많다. 골프 보다도 촉촉이 젖은 잔디와 꽃잎, 고즈넉한 하늘, 따뜻한 우동 국물이 좋아 우중 골프를 사랑한다고 한다. 이처럼 너무나 골프에 빠지다 보면 천재지변까지도 사랑과 이해로 감싸안는 것 같다.

그러나 다수의 골퍼는 비 오는 게 싫다. 그래도 어떡하랴. 기왕 필드에 나온 이상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않으면 라운딩은 계속해햐 한다. 우중 골프는 프로에게도 곤혹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몇 가지 사항만 유의하면 더 재미있는 골프를 할 수 있다.

일단 갑자기 비가 오면 몸의 근육은 수축된다. 자연스럽게 스윙 궤도가 줄어들고 당연히 비거리는 반클럽 정도가 짧아진다. 이럴 때는 일단 한 클럽을 길게 잡아야 한다. 대신 클럽을 조금 짧게 잡으며 된다. 잔디가 물을 먹으면 클럽이 잘 빠져 나오지 않는다. 이럴 때는 평소의 3분의 2 정도의 스윙으로만 리듬에 맞춰 스윙해야 한다. 그래야 클럽이 잔디에 감기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클럽이 물먹은 잔디에 감기면 공이 원래 탄도대로 뜨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거리를 만회하려고 스윙시 힘을 주게 된다. 골프에서 과도한 힘의 남용은 결국 스윙 템포를 흐트려 뜨려 그날 골프를 완전히 망치게 만든다.

아마 골퍼들이 우중 골프를 한 뒤에는 온 몸이 잔디와 흙으로 뒤범벅이 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것은 스윙 때 몸에 쓸데 없는 힘이 들어가 엄청나게 잔디와 땅을 팠다는 증거다. 체력은 체력대로 다 소진하고 스코어는 망치는 전형적인 케이스다.

이럴 때 힘을 줘서 잔디를 이기려고 하지말고 ‘공 뒤에서 클럽헤드가 지나간다’ 라는 생각으로 공을 쳐야 한다. 그래야 공이 원래 탄도대로 떠서 나간다. 이렇게 해서 한번 공이 가볍게 날아가는 것을 경험해보면 수중전에서도 자신감이 붙을 것이다.

드라이버를 칠 때는 비가 오나 안 오나 별 관계가 없다. 드라이버를 칠 때는 공은 잔디 위에 항상 떠있기 때문에 자신 있게 때려도 공의 구질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린 주위에서는 절대 런닝 어프로치를 하면 안 된다. 우중 골프 때는 가능한 공이 구르지 말고 떠있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

단 하나 수중 전에서 명심해야 할 것은 그립이다. 비가 오면 그립이 물을 흡수하기 때문에 스윙 시 미끄러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생크나 뒷땅이 자주 나오는 이유도 사실은 그립 때문이다. 따라서 가급적 장갑과 그립이 물에 젖지 않도록 자주 수건으로 닦아줘야 한다. 우중 골프에서 스윙 시에만 장갑을 끼고 평소에는 주머니나 백에 넣어 두는 것이 좋다. 가급적 장갑을 여러 개 준비해 자주 갈아 끼는 것도 방법이다.

또 하나 주의해야 할 것은 스탠스다. 비가 오면 잔디가 미끌미끌 해져서 스탠스가 불안해져 볼을 정확히 가격하기가 힘들어 진다. 더구나 최근에는 골프장에서 쇠징 신발 착용을 금하고 있어 미끄러지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평소 보다 중심을 하체에 두고 가볍게 스윙 한다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아이언 샷을 할 때 절대 때리면 안 된다

우중 골프의 장점도 있다. 비가 와 그린이 젖으면 아이언샷을 하기가 더욱 수월해진다. 볼이 구르지 않기 때문에 핀을 직접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린에 올린 다음에는 퍼트에서 애를 먹게 되지만 핀을 직접 공략한다는 점은 아마추어에게는 적잖은 기쁨이다.

최경주 프로는 인터뷰 중 “비오는 날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언샷의 임팩트” 라고 했다. 이는 아이언 샷만 잔디에 감기지만 않으면 큰 부담이 안된다는 뜻이다.

목표 없는 수중 전은 말 그대로 ‘비 맞는 날’에 불과하다. 기왕이면 기억에도 남고 자신감도 넘치는 수중전에 나서 보자.

박나미


입력시간 : 2003-09-30 15:16


박나미 nami86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