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미의 홀인원] "이제 아빠는 비키세요"


“경기 도중 부모들에게 절대 경기에 관련된 조언이나 코치를 받지 말라.”, “일부 한국 선수들이 경기 내내 따라 다니는 아버지나 어머니에게서 클럽 선택 , 샷의 겨냥 방향 , 퍼팅 라인 등에 대한 조언을 받는다는 제보가 지금까지 수백 건이 접수됐다.”, “더 이상 이런 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달라.”

LPGA의 관계자의 말은 당부가 아닌 경고로 들렸다. AJGA , LPGA 등 미국의 골프계는 완전 ‘리틀 한국 골프계’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 혜성같이 튀어나오는 여자 주니어도 수두룩하다. 위성미는 물론이고, 위성미에 버금가는, 체구도 자그마한 한국 주니어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유독 한국의 아빠가 극성을 보이는 것은 우리들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실제 지금까지 골프를 잘 치는 선수의 부모 치고 극성스럽지 않은 부모는 없었다. 부모가 선수 못지 않게 애를 쓰는 데 어찌 성적이 잘 나오지 않겠는가. “잘하는 선수는 이렇게 연습 한다” 처럼 “잘하는 부모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이다.

LPGA 에서 활동하는 우리 선수들로서는 이 같은 경고가 기분이 나쁠 수 밖에 없다. “성적이 좋으니까 시샘어린 질투를 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또 그런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제 현실을 냉정히 보자. 대회 도중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들이 실제로 적지 않았다. LPGA는 한국 무대와는 다르다. 한국의 아빠들이 그 곳에서도 한국에서처럼 했기에 그런 지적이 나온 것이다.

우리 선수들을 위해서도 이 기회에 이 같은 행태를 고쳐서 나쁠 것이 없다. 언제까지 아빠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지 않는가. 이는 홀로서기 길을 다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혼자하는 투어 생활이 힘이 들지만 거기서 얻는 지혜나 슬기로움을 더 찾았으면 좋겠다.

보라, 세계 톱랭커로 우뚝 선 박세리, 박지은 선수는 이미 골프아빠 멤버에서 제외되지 않았는가. 두 선수는 벌써 홀로서기에 성공한 것이다. 당연히 아니카 소렌스탐이나 캐리 웹 등도 다 혼자 다닌다. 물론 스폰서가 대동해 스케줄은 관리해주지만 부모가 따라다니며 돌봐주진 않는다.

우리 선수들의 아빠들도 이젠 한국 골프계가 많이 발전한 만큼 성숙한 ‘골프 아빠’ 가 됐으면 좋겠다. 대회 마다 쫓아다니며 샷이 잘못 될때마다 악악 거리며 뒤를 따라다니는 아빠가 아닌,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골프를 사랑할수 있는 이유를 알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바로 성숙한 아빠의 길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비춰봐도 필자는 이번 일이 참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 필자 또한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부모가 10년을 넘게 따라다녔다. 싫다 싫다 하면서도 때론 부모가 없으면 경기가 웬지 잘 안 풀릴 때가 있었다. 또한 골프 하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어 때로는 부모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을 때도 있었다. 나도 모르게 부모가 따라다니는 것이 습관이 되는 것이다. 당시에는 물론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느꼈다. 하지만 지나고 나니 이는 오히려 마이너스 작용이 더 많았던 것 같다.

한편 이번 일은 아마 골퍼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아마 골퍼 역시 라운딩할 때 캐디에게 의존을 많이 한다. 어쩌면 캐디가 우리 여자 선수들의 아빠와 비슷한 역할일수 있는데, 가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주니어 아빠들의 이미지가 아마 골퍼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박나미


입력시간 : 2003-09-30 15:18


박나미 nami86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