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 301… 라이언 킹 달굴벌서 포효

[스포츠 프리즘] 이승엽 세계 최연소 300홈런 신기록
300, 301… 라이언 킹 달굴벌서 포효

‘라이언 킹’ 이승엽(27ㆍ삼성)이 고향 달구벌에서 포효하면서 세계 최연소(26년 10개월 4일) 300홈런 기록을 갈아 치웠다.

이승엽은 6월22일 대구구장서 열린 SK와의 경기에서 8회 말 1사후 주자없는 가운데 스미스_정대현에 이어 3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김원형의 구속 139㎞ 초구 직구를 걷어올려, 개인통산 300홈런 대기록을 쏘아올렸다.

메이저리그의 알렉스 로드리게스(텍사스 레인저스ㆍ 27세 8개월6일)와 일본 프로야구의 왕정치(67년 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ㆍ 27세 3개월11일)를 따돌리고 최연소 300홈런 고지에 등정하는 순간이었다.

300홈런으로 달구어진 이승엽의 방망이는 9회 말 마지막 공격에서 한차례 더 불을 뿜었다. 이승엽은 4-4로 팽팽히 맞선 주자만루상황에서 구원투수 조웅천의 싱커를 통타, 생애 8번째 그랜드 슬램을 터트리며 팀 승리를 이끌어 자신의 300홈런을 자축했다.

이승엽의 만루홈런은 개인통산 8호로 개인 최다 만루홈런과 타이. SK 김기태와 기아 신동주가 각각 8개의 만루홈런을 때리고 있다.

1995년 5월2일 해태와의 광주원정경기에서 1호 아치를 그린 후 8년 1개월 20일, 1,075경기만에 300홈런 대기록을 터트린 이승엽은 2000년 장종훈(35ㆍ한화)이 1,565경기만에 300홈런을 달성한 것보다 무려 490경기를 앞당기는 가공할 페이스를 보여주고 있다.

4월5일 대구구장 개막전에서 연타석 홈런포를 가동하며 신기록 달성의 첫 걸음을 뗀 이승엽은 올 시즌 63경기에서 33개의 아치를 그려, 경기당 0.52개의 홈런페이스를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라 정규리그 133경기 모두 끝마쳤을 땐 69개의 홈런을 기대할 수 있어 99년 자신이 세운 한국최다 홈런(54개)기록 경신은 물론, 왕정치가 세운 아시아 최다홈런(55개)기록도 ‘가볍게’ 갈아 치울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올 시즌 33개의 홈런 가운데 23개를 대구 홈에서 걷어올린 이승엽은 잠실구장에서 단 1개의 홈런과 인연을 맺지 못해 ‘홈 구장 홈런 편식증’이란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승엽의 대구구장 홈런비율도 전체적으로 60%(180개)에 달할 정도. 하지만 홈런 비거리는 평균 117.58㎙에 달해 이 정도면 메이저리그 담장도 충분히 넘길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승엽 홈런괴력은 어디서 나오나

세계 프로야구사에 기념비적인 금자탑을 우뚝 세운 이승엽의 홈런 비결은 무엇일까?

키183㎝, 몸무게 85㎏인 이승엽은 프로야구 선수 평균(1m81.9㎝, 83.3㎏)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승엽의 홈런비결은 체격에 있지 않다. 이승엽이 홈런을 터트릴 수 있는 가장 큰 비결은 바로 유연한 몸 때문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많은 야구 전문가들은 이승엽의 강한 손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괴력은 국내 최강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빠르고 부드러운 허리와 강한 손목, 든든한 하체에서 나오는 안정감 등이 조화를 이뤘기에 아치를 그린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볼을 끝까지 보고 타격하는 포착 능력과 실투를 놓치지 않고 백발백중 홈런으로 연결하는 영리함까지 겸비했다는 분석이다.

같은 왼손타자 출신인 삼성 박흥식 타격코치는 “승엽이는 공을 쳐내는 임팩트 순간에 힘을 집중하는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 났다”고 말했다.

이승엽의 홈런 방망이는 34인치, 930g. 비교적 무거운 편이다. 그런 그가 스윙스피드의 손해를 보면서도 무겁고 긴 배트를 사용하는 이유는 자신의 힘을 최대한 방망이에 실어보내기 위함이다.

이승엽은 1996년 백인천 감독과 박코치를 만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야구에 눈을 뜨게 된다. 데뷔 첫해에 홈런 13개, 타율 2할8푼5리로 스타트를 끊은 이승엽은 96년 타율이 3할대로 치솟았고 97년엔 32개의 홈런을 쏘아 올린 데 이어 99년에는 시즌 최다인 54개의 아치를 그리며 한국 프로야구의 홈런사를 새로 썼다.


물 오른 ‘부챗살 타법’

올 시즌 이승엽의 홈런 분포도를 보면 좌우 중월이 골고루 섞여 나타난다. 95년 투수로 프로에 입문, 그 해 타자로 변신한 이승엽은 지금까지 161개(우월, 우중월)대 139개(좌월, 좌중월, 중월)로 부챗살 타법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슬러거들이 바깥쪽 공까지 무리하게 당겨치는 데 급급했던 반면 이승엽은 거의 절반에 가까운 139개를 왼쪽이나 좌중간으로 밀어서 넘기는 ‘스프레이 타법’을 구사했다는 반증이다.

이승엽에 가장 많은 홈런을 상납한 투수는 누구일까. 기아 최상덕이 가장많은 7홈런을 허용했고, 현재 방송 MC로 맹활약 중인 강병규가 2위 (6개)에 올랐다. 또 한화와 SK시절 각각 4, 5개의 홈런을 얻어맞은 노장진과 오상민은 삼성 유니폼을 입고 난 뒤 비로소 ‘이승엽 공포’에서 벗어났다.

정삼흠 윤학길 조계현 구대성(이상 1개) 정명원 진필중(이상 2개) 김용수(3개) 염종석 이대진 정민태(이상ㆍ4개) 송진우 정민철 주형광(이상 5개) 등 각 팀의 에이스급 투수들도 예외없이 이승엽의 매운 방망이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팀별로는 롯데(48개) LG(44개) SK(43개)순.

좌타자 이승엽은 당연히 우월 홈런(119개)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1회 첫 타석에서 친 홈런이 64개(21.3%)로 전체의 5분의 1을 넘었다. 이밖에 통산 최다 연타석 홈런(18개), 최다 연속경기 홈런(6경기, 99년 7월19일~25일), 최연소 100홈런(22세8개월18일), 시즌 최연소, 최소경기 40홈런 등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홈런외에도 각종 방망이 기록을 그가 깨거나 갖고 있다. 5월29일 SK전에서 최연소, 최소경기 800득점을 달성했고 시즌 최다득점(128득점), 시즌 최다루타(356루타), 시즌 최다출루(281회, 이상 99년), 시즌 최다타점(126타점) 도 그의 것이다.


이승엽의 다음 행보는

이승엽의 올 시즌 목표는 일단 자신의 최다홈런기록과 아시아 최다홈런 신기록 돌파다. 이승엽은 경기 후 가진 인터뷰에서 “이제 남은 것은 한국기록과 아시아 신기록이다. 300홈런을 채웠으니 좀더 편안하게 경기할 수 있을 것 같다. 99년보다 빨리 40홈런을 기록하고 싶다. 그 다음은 50홈런. 50홈런을 달성한 뒤 아시아 신기록에 도전하겠다. 이대로라면 60홈런까지는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97시즌부터 지난해까지 7년 연속 30홈런이상을 터뜨린 이승엽은 특히 향후 15년간 선수생활을 계속한다고 가정했을 때 최소 750개 이상의 홈런을 터트릴 수 있다.

이승엽은 이제 전설적인 슬러거 행크 아론이 보유하고 있는 빅리그 최다홈런(755개)과 왕정치가 1959~80년까지 22년간 선수생활을 통해 토해낸 868홈런 기록경신을 향해 줄달음질 칠 태세다.

이승엽은 또 올 시즌을 끝으로 국내 생활을 접고 메이저리그로 향하겠다고 말했다. 올 시즌이 끝나면 FA(자유계약선수)가 되는 이승엽이 올해 초부터 빅리그 진출을 공언해 왔고 삼성 구단에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기 때문에 그의 미국 진출은 이제 시간 문제가 됐다.

그는 올해 초 미국 플로리다 스프링캠프를 다녀온 뒤 “빅리그 무대에 선다면 마이너리그 생활도 각오하고 있다”고 밝혀 단계적으로 빅리그 진출을 준비할 뜻을 비추기도 했다.

투수출신… 백인천 감독 만나며 타격에 눈 떠
   

이승엽이 투수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이승엽은 경북고 2년 때인 93년 제48회 청룡기 고교 야구대회에 출전, 4경기에 등판, 혼자서 3승을 거두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어 ‘우수 투수상’까지 받았다.

고교 졸업 후 95년 1월 삼성에도 투수로 프로에 입문했으나 고교 때 입은 왼팔꿈치 부상으로 더 이상 공을 던지기 어렵게 되자 박흥식 타격코치가 타자전향을 권했다. 이때 이승엽이 내건 조건이 “딱 1년만 하겠습니다”였다.

95, 96년 10개 안팎의 홈런을 기록한 이승엽은 97년 백인천 감독(현 롯데)을 만나면서 홈런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타격시 왼발을 드는 ‘외다리 타법’을 앞세워 타자전향 3년 만에 홈런왕에 등극한 이승엽은 99년 프로 최초 50홈런을 돌파, ‘국민타자’라는 애칭을 얻었다.

최형철 기자


입력시간 : 2003-10-02 16:10


최형철 기자 hccho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