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들의 불안과 희망이 담긴 인천

[영화 되돌리기] 고양이를 부탁해
소녀들의 불안과 희망이 담긴 인천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는 2001년 조폭영화의 광풍이 몰아닥쳤을 때 개봉, 2주만에 막을 내렸다. 하지만 ‘예술영화를 살리기 위한 와라나고(와이키키 브라더스, 라이방, 나비, 고양이를 부탁해)운동’을 통해서 가까스로 재개봉되기도 했다. 사실 이 영화는 ‘예술영화’라는 무겁고 모호한 타이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생기발랄함과 구체적인 현장감이 가장 큰 미덕이다.

영화를 실감나게 즐기기 위해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영화 속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인천으로 가 보자. 서울의 증권회사에 취업한 혜주, 아버지가 운영하는 맥반석 찜질방에서 아르바이트하는 태희, 텍스타일 디자이너가 꿈이지만 조부모와 어렵게 사는 지영, 차이나타운에서 액세서리를 파는 쌍둥이 화교 비류와 온조, 이들은 여고 시절의 풋풋한 추억과 팍팍한 사회 현실에 두 발을 걸치고 선 채 불안하게 전진하고 있다. 그런데 영화 속 인천이라는 곳 역시 서울에 편입되기 위한 욕망과 옛 모습을 기억하고 싶은 희망이 착종돼 불안한 모습이다.

우선 인천역을 나와 처음 마주하는 것은 중국의 전통 대문인 ‘패루’다. 언덕 위로 말로만 듣던 차이나타운이 펼쳐지는데 매스컴의 손때만 많이 묻고 지역시장으로서의 기능은 상실한 듯 무기력한 모습이다. 영화 속에서 비류와 온조가 방문하는 할아버지 댁이 바로 이 중국인 거리에 있다. 지금은 한창 관광지로 개발 중에 있어 기대했던 만큼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는 없다.

다시 인천역으로 돌아와 월미도행 버스를 탄다. 아이들이 서울에 가기 위해서 함께 모인 곳이 월미도이다. 무던히도 바람이 많이 불던 날, 아이들은 얄궂은 불량식품처럼 조야하게 만들어진 월미랜드 놀이동산을 뒤로하고 서울 동대문의 패션타운을 찾아간다.

수안보에서 와이키키 해변가를 꿈꾸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처럼, 싸구려 라이방(Rayban) 선글라스를 끼고 자신들의 적나라한 삼류 현실을 직면하고 싶지 않은 영화 라이방의 ‘운짱’들처럼 이들에게도 현실은 언제나 뒤로하고 싶은 곳이다. 혜주는 결국 인천을 뜬다.

인천은 주인공들이 어디론가 떠나기 위한 하나의 관문이면서 동시에 외국인들에게는 서울로 들어오기 위한 관문이다. 태희가 찜질방 전단지를 나눠주는 곳은 인천항 국제여객선 터미널이다. 이 곳에서 출발하는 여객은 대부분이 중국행으로 터미널 안에 중국어 간판이 눈에 띈다. 보따리 장사들과 같이 온 다른 외국인들은 남동공단 등지로 흘러 들어간다. 태희가 월미도에서 만나는 미얀마 외국인들이 공단 노동자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한때 만수공단에서 일을 한 지영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지금은 운행이 되지 않는 협궤 철로가 보인다. 협궤열차는 태평양 전쟁때 인천항을 통해 소금과 곡물을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1995년 철거 전까지 인천과 수원을 잇는 교통로 구실을 해왔다. 지금은 철로만 횡뎅그레 남아있어 집으로 고단한 발길을 옮기는 지영의 뒷모습을 더욱 처량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산업화의 거점 도시면서 서울의 관문으로서 존재하는 인천은 주인공들처럼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혼돈스럽게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영화는 인천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고 있다. 한강 둔치에서 매끈한 유람선을 바라보는 것보다 만석부두에서 아기자기한 목선을 바라보는 정겨운 지방색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꼭 한번 볼 만 하다.

입력시간 : 2003-10-02 18:14


주간한국